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조안 폰테인)의 극중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2시간을 넘게 영화가 진행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아, 잠깐! 여주인공 이름이 뭐였지? 레베카? 아닌데...'

히치콕이 만든 미국에서의 첫작품 <레베카> 1940년 제작 영국 최고의 저택을 소유한 드 윈터 가문의 '맥심'과 결혼한 '나'와 우리 둘 사이에 존재하는 실체없는 존재 '레베카'. 맨들리저택에서 벌어지는 '레베카'와 '맥심'의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나며 본격적인 서스펜스 스릴러가 나를 사로잡는다.

▲ 히치콕이 만든 미국에서의 첫작품 <레베카> 1940년 제작 영국 최고의 저택을 소유한 드 윈터 가문의 '맥심'과 결혼한 '나'와 우리 둘 사이에 존재하는 실체없는 존재 '레베카'. 맨들리저택에서 벌어지는 '레베카'와 '맥심'의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나며 본격적인 서스펜스 스릴러가 나를 사로잡는다. ⓒ 데이빗 O. 셀즈닉

<레베카> 그녀는 남자 주인공인 맥심의 전 부인이다. 아마 그녀는 히치콕의 영화상 최고의 맥거핀이 될 것이다. 맨들리 저택의 집사와 하녀, 청소부, 심지어 정신이상 부랑아까지도 이름을 부르는데 정작 여주인공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니.

뿐만 아니다. 맥심의 전 부인이자 영화의 제목인 <레베카>는 이미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대화에서만 언급되기만 하는데도,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레베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관객을 사로잡아 버린다. '레베카'는 이 영화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이 영화에서도 히치콕은 그 특유의 능글맞은 장난기를 멈출 줄 모른다.

레베카는 누구?

영화는 여주인공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관객은 시간이 지나면서 은연중에 여주인공을 '나'로 인식하게 되고 그녀에게 이름이 부여되지 않은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한다. 그녀는 갑부인 맥심과 결혼을 하고 영국에서 가장 큰 저택인 '맨들리'로 들어간다. 그러면서 영화는 '레베카'의 저주와 맞닥뜨리기 시작한다.

레베카는 '나'의 남편인 맥심의 전 부인이었다. 그녀는 비가 오는 날 자신의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배가 전복되어 사망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맥심의 얼굴은 항상 죽은 부인을 그리워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감독은 영화의 흑백화면을 적절히 사용하여 빛과 어둠의 교차를 배치하면서 맥심의 페이소스가 빛을 발하게 한다.

맨들리저택의 주인인 남편 '맥심 드 윈터'와 '나' 항상 근심과 두려움에 가득한 그의 얼굴은 흑백의 화면의 교차로 짙은 페이소스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의 고통은 전 부인이었던 '레베카'의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에 관련된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맨들리저택을 휘감고 있는 레베카의 그림자이다.

▲ 맨들리저택의 주인인 남편 '맥심 드 윈터'와 '나' 항상 근심과 두려움에 가득한 그의 얼굴은 흑백의 화면의 교차로 짙은 페이소스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의 고통은 전 부인이었던 '레베카'의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에 관련된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맨들리저택을 휘감고 있는 레베카의 그림자이다. ⓒ 데이빗 O. 셀즈닉


짙은 어둠 속에서 보일 듯 말 듯한 실루엣이 다가오며 서서히 밝아지는 인물의 등장은, 사실 별것 아닌 장면인데도 상당한 무게로 관객을 짓누른다. 맨들리의 대저택을 비추는 카메라 역시 불안과 공포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무언가 커다란 비밀이 숨어 있는 스릴러로서의 암시를 제대로 보여준다.

맨들리 저택에서 느끼는 공포

맨들리 저택은 영국에서 가장 큰 저택으로 정문에서 차를 타고 5분여를 들어가야 건물이 나온다. 레베카가 살아 있을 때는 무도회라든지 파티도 자주 열어 영국 사교계의 명소가 되었지만, 레베카가 죽은 현재는 남아 있는 하인들만 집을 지키고 있다.

'나'는 맥심과 결혼한 후 맨들리에 들어오며 상당한 심리적 위축감을 겪게 된다. 집안의 모든 하인들은 새로운 여주인에게 깍듯하고 예의바르지만, 은연중에 전 부인 '레베카'와 비교를 하며 상류층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나'에게 '품위 있고 세련되었던 레베카'와 같은 행동을 요구한다.

특히, 틈만 나면 '나'의 뒤에서 섬뜩하게 서 있는 댄버스 부인(레베카의 하녀이자 현재 맨들리 저택의 살림담당)의 얼굴이 압권이다. 흡사 고딕 호러에서나 나올 듯한 표정은 이 영화를 통틀어 존재 자체만으로도 공포를 안겨주는 대상이다.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가 맥심과 결혼하면서 그녀를 따라온 하녀였다. 그녀는 '나'에게 레베카의 지적인 말투와 사교적인 스타일, 품위 있는 자태를 자랑스레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그녀가 사용하던 방을 살아있을 때처럼 손거울과 빗, 베개, 이불 등 모든 것을 매일 관리하고 있다.

공포는 댄버스 부인으로부터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매일 같이 그녀의 방을 정리하며 그녀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사사건건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나'를 맨들리의 안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이다. '나'와 남편인 '맥심' 사이에는 언제나 레베카와 댄버스 부인이 가로막고 있어 신혼생활이 버겁기만하다.

댄버스 부인은 '내'가 레베카만큼 지적이지 못하고 상류층의 품위를 지니지 못한 것을 무의식중에 드러내며 맨들리에서 떠날 것은 종용한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무도회를 열도록 설득하고 '나'는 댄버스부인의 도움으로 가장무도회의 드레스를 입고 남편인 맥심 앞에 나서는데…….

댄버스부인과 '나' 마치 레베카에 빙의되어 있는 듯한 댄버스부인은 '나'에게 공포 그 자체이며 내 존재마저 없애버리는 맨들리저택의 진정한 주인이다.

▲ 댄버스부인과 '나' 마치 레베카에 빙의되어 있는 듯한 댄버스부인은 '나'에게 공포 그 자체이며 내 존재마저 없애버리는 맨들리저택의 진정한 주인이다. ⓒ 데이빗 O. 셀즈닉


맥심은 '나'의 드레스를 보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지며 무척 화를 냈다. 그 드레스는 과거 가장 무도회에서 레베카가 입었던 옷이었던 것이다. 맥심은 고통스로운 표정으로 아무 옷이나 갈아입으라 소리친다. 이내 '나'는 댄버스부인이 꾸민 일임을 알게 되고 방에서 흐느끼던 도중, 댄버스부인으로부터 조롱 섞인 비하와 함께 투신하여 자살할 것을 요구받는다.

탁월한 히치콕식의 반전!

그러나 영화는 이 부분부터 급격한 변화를 맞는다. 레베카가 타고 있던 요트가 발견되고 잠수부가 그녀의 시신마저 찾아냄으로써 모든 사건이 긴박하게 흘러간다. 맥심은 과거 레베카의 시신을 확인하고 납골당에 두었지만, 지금 또 그녀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추리소설을 방불케 하는 두뇌싸움과 법정스릴러의 면모까지 갖추며 종반부로 갈수록 관객들은 숨막히는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레베카의 죽음을 놓고 벌이는 법정 공방 맥심은 레베카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계약관계로 맺어진 결혼생활에 절망을 하였다. 거기다가 그녀의 불륜에 이어 다른 남자의 아이까지 갖게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충동적으로 그녀를 살해한다. 그리고 보트에 태워 바다에 수장시킨다. 그러나 결과는?

▲ 레베카의 죽음을 놓고 벌이는 법정 공방 맥심은 레베카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계약관계로 맺어진 결혼생활에 절망을 하였다. 거기다가 그녀의 불륜에 이어 다른 남자의 아이까지 갖게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충동적으로 그녀를 살해한다. 그리고 보트에 태워 바다에 수장시킨다. 그러나 결과는? ⓒ 데이빗 O. 셀즈닉


맥심은 항상 그를 짓누르고 있던 두려움과 고통을 '나'에게 털어 놓는다. 그리고 레베카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 그리고 끝까지 맥심을 저주하며 자신의 죽음까지도 복수에 이용했던 레베카의 음모가 공개된다. 게다가 댄버스 부인의 레베카를 향한 과도한 집착과 믿음은 맨들리 저택에 불을 지르게 되고 자신은 그 안에서 죽음을 맞는다.

<레베카>만의 독특함

영화 <레베카>는 중반까지 유사 멜로의 형태를 취하다 중반을 넘어가며 묘한 기류를 가지고 서스펜스의 텐션이 제대로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종반에 가서는 두뇌를 심하게 돌려야 이해가 될 정도로 추리소설과 법정심리가 이어진다. 피고인인 맥심의 변론과 증인들의 진술 그리고 새롭게 드러나는 진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결말을 모를 정도로 심장을 압박한다.

레베카는 이름이 없는 여주인공 '나'를 대신하여 영화를 장악한다. '나'의 존재감은 영화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다. 그저 운좋게 부잣집 남자와 결혼한, 눈물 많은 남성 의존적인 나약한 존재이다. 반면 죽은 레베카는 자신감 넘치는 자태와 사교성이 풍부하며 교양이 가득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평소 여성을 비하한다는 비판을 받던 히치콕은 <레베카>에서도 남성에 비해 전혀 지적이지 않고, 수동적인 여주인공역을 만들어낸다. 때무인지 <레베카>의 여배우 '조안 폰테인'은 순애보적이며 지나치게 남성에 의지하는, 그리고 모든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수동적인 관객에 그치고 만다.

영화는 죽은 자와 산 자의 대결 구도로 만들어졌다. 살아 있는 여배우(나)에 비해 죽은 여배우(레베카)는 남성중심주의적인 사회에 대해 반항심을 드러내며 결연히 복수의 칼날을 드리우는 역할을 맡는다. 거기에 댄버스 부인이 합세하고 맥심의 근심어린 표정은 스토리의 깊이를 더해준다.

히치콕의 여타 영화 <사이코>, <현기증>, <로프>, <이창> 등을 통해 보는 것처럼 그는 인간심리의 변화에 상당히 초점을 두고 있다. 무의식의 세계라든지 관음증, 다중인격, 트라우마로 인한 현실 세계의 부적응 등을 영화의 주요한 주제로 삼고 있다. <레베카> 역시 그냥 흥미 위주로 넘어가기에는 아까운 부분들이 많다.

맨들리저택의 주인인 '맥심'의 두려움과 공포는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댄버스 부인이 그토록 죽은 레베카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녀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 레베카가 남편인 맥심에게 치밀한 복수를 계획하기까지의 심리적 변화 등은 관객들로 하여금 정신의학 관련 책들을 한번쯤 넘기게 만든다.

70년이 넘은 영화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쫀득쫀득해지는 서스펜스는 현대의 어느 스릴러물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리고 요즘 관객들이 그리 좋아하는 반전 장치도 너무 극적이어서, 1990년대 말 반전 영화의 대명사가 된 <식스 센스>보다 더 깊은 긴장감을 선사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본인의 블로그에 중복 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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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히치콕 맥거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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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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