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프로농구 우승팀들의 대부분은 포지션별로 빈틈없는 강력한 베스트5와 이를 받쳐줄 쏠쏠한 백업멤버가 존재했다. 장기레이스인 정규리그는 물론 7전 4선승제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살아남으려면 타팀들을 압도하는 확실한 밸런스가 필요했기 때문. 어느 한군데라도 구멍이 생기면 강력한 경쟁팀들을 제압하기 힘들었다.

그런 면에서 허재 감독의 전주 KCC는 조금은 특이한 경우다. 허 감독 취임 이후의 KCC는 완벽한 밸런스를 갖춰본 경우가 거의 없다. 특히 추승균(은퇴·190cm)이 노쇠화 기미를 보인 이후의 3번 포지션은 꾸준한 구멍이었다. 상대팀들은 끊임없이 이러한 KCC의 약점을 공략했고 팬들 역시 3번 갈증에 속을 끓여야 했다. 외국인 선수들 역시 찰스 민랜드 이후 리그 최상급 용병의 보유는 KCC와는 먼 이야기였다. 백업층도 두텁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 감독은 두차례나 우승을 일궈내며 명가를 자존심을 지켜나갔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강점으로 약점을 덮어버리는 농구 스타일이 있었다. 하승진(29·221cm)의 존재는 기량이 다소 떨어지는 외국인 선수 마저 수준급 활약을 하게 만들어줬고 그의 느린 기동력 및 포워드진의 구멍은 이른바 '들개 군단'으로 불린 신명호-강병현-임재현 등 엄청난 활동량을 가진 가드들이 끊임없이 뛰어다니며 메워줬다.

한창 때의 신명호-강병현이 앞선에서 압박하면 상대 가드진은 공을 운반하는 것 조차 어려웠고 이틈을 타 백코트가 느린 하승진 등이 자리를 잡았다. 신명호-강병현 중 한사람이 지치거나 컨디션이 안좋게 되면 임재현이 짧고 굵은 활약으로 빈틈을 막아줬다. 허 감독의 KCC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스타일의 농구였다.

하지만 올시즌은 다르다. 하승진이 돌아왔지만 그를 살려줄 패턴이 전무하다. 당초 계획은 정통포인트가드 김태술(30·180cm)이 현란한 패싱능력으로 게임을 조율하고 1-2번에서 모두 리그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김민구(23·191cm)가 함께 앞선을 책임지며 골밑의 하승진과 호흡을 맞추는 '빅3'전략이 골자였다. 하지만 김민구가 불의의 사고로 이탈해버리며 이같은 시나리오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김태술과 하승진 사이를 받쳐주는 선수가 전무하다보니 밸런스는 엉망이 되어버렸고 두선수에게 기대했던 파괴력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럴 경우 강력한 외국인 선수에게라도 기대 볼수 있지만 타일러 윌커슨(26·202cm)-드션 심스(26·203cm) 조합으로는 역부족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KCC팬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김민구 이탈로 전력에 치명타가 온 것은 인정하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비한 '플랜 B'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김민구가 정상적으로 있었어도 김태술-하승진은 잔부상이 많은 스타일인지라 뒤를 받쳐주는 백업보강은 반드시 필요했다. 이들 3명만 가지고 우승에 도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좋든 싫든 KCC는 김태술-하승진에 의존해야한다. 그렇다면 이 두 개의 무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두 선수의 부상-체력문제를 항시 염두에 두고 가장 지척에서 받쳐주는 백업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이는 김민구가 그대로 있었어도 마찬가지인 문제였다.

하지만 시즌 전부터 팬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쏟아져나온 이같은 지적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가드-빅맨진이 나쁘지 않은 타팀들도 새로운 자원들을 끊임없이 보강하려 노력할 때 KCC가 한 것은 KGC에서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은 노장 김일두를 데려온 것밖에 없다. 명목상 하승진의 백업이라고는 하지만 현재의 김일두는 예전 기량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이며 잘나가던 시절에도 3.5번 스타일의 포워드로 백업 빅맨은 불가능한 선수였다.

외려 김태술 백업으로 최상의 조건을 갖춘 임재현을 오리온스로 보내버리고 외곽슛과 포워드 수비에서 쏠쏠한 활약을 해준 이한권을 은퇴시키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만 보였다. 현재 김태술을 제외한 KCC가드진중 임재현급 기량을 갖춘 선수는 전무하며 이한권 정도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포워드도 정민수뿐이다.

백업은 커녕 주전 구성도 힘들어 식스맨으로 활용할 때 제대로 된 위력을 보여줄 김지후-정민수에게 과부하가 걸리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쓴웃음이 지어질 상황이다. 전력보강은 커녕 있는 전력마저 버렸다 할 수 있다.

외국인선수 역시 골밑에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빅맨 스타일이 꼭 필요했다. 비단 하승진의 골밑부담을 덜어주는 것뿐 아니라 주전 1번 김태술의 특기인 스크린 플레이를 살려줘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KCC 외국인선수들은 하승진에게 수비가 몰렸을 때 미들슛을 날리는 것 빼고는 변변한 역할이 없다. 외려 수비에서 구멍을 드러내며 국내선수들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형편이다.

밸런스는 물론이거니와 강점도 살리지 못하는 KCC의 현재 모습에 팬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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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KCC 유이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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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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