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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금 좀 신청하려고 하는데요."
"사업계획서와 관련 서류 제출해 주세요."
"네?"

지방에서 공부를 했던 나는 2000년도 대학 3년을 휴학하고 무작정 서울에 상경했다. 먼저 졸업한 여자 친구가 그립기도 했지만 그 친구의 직업에서 찾은 사업 아이템에 대한 조바심 때문이기도 했다.

겨울방학 동안 서점과 인터넷 등을 뒤지며 사업성 분석을 마친 나는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하고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대학교를 휴학한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신용보증기금. 당시에는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 방안에 따라 IT관련 사업 창업지원이 한창일 때다.

"그런 게 필요하나요?"
"(황당한 웃음)"

쉽게 받을 줄 알았던 창업자금은 그리 쉽지 않았다. 사업계획서는 물론 결혼을 안 했다는 이유로 보증인을 요구했고 사무실 현장 답사까지 마친 후에야 겨우 일부 자금을 받을 수 있었다.

#1 서울 한복판 신규 오피스텔 입성, 월세와의 전쟁 시작

창업자금을 가까스로 받은 나는 서울 한복판 신규 오피스텔에 입주했다.
 창업자금을 가까스로 받은 나는 서울 한복판 신규 오피스텔에 입주했다.
ⓒ 이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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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금을 가까스로 받은 나는 마포 한복판에 있는 지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신규 오피스텔에 월세로 입주했다. 당시 월세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 50만 원. 지금 생각하면 답답할 노릇이지만 당시의 생각은 달랐다.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고 접속자 수만 많아지면 광고는 자연스럽게 들어 올 거라 생각한 것이다.

오피스텔에는 달랑 책상 2개와 컴퓨터 1대를 두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함께 사업을 시작한 여자 친구가 홈페이지 제작 업무를 담당했다. 여자 친구는 디자인 회사에 다녔지만 홈페이지 제작은 또 다른 일.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책을 보면서 한 달여에 걸쳐 가까스로 만든 사이트는 누가 봐도 허접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완성된 사이트에 나는 글을 쓰고 내용을 채워갔다.

하지만 수익이 없는 상태에서 월 50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게다가 웬 관리비가 평당 나온단 말인가. 월세와 관리비, 기타 공과금을 합하면 월 80만 원이 넘는 돈이 지출됐다. 사이트를 열고 2~3달이 지났지만 수익은 단 한 푼도 생기지 않았다. 지출되는 돈은 고스란히 사무실 보증금을 내고 남은 얼마 되지 않는 창업자금에서 충당해야 했다.

그렇게 사업을 시작한 지 6개월여가 지나자 사무실 임대료마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급기야는 현금서비스로 받은 금액을 갚지 못해 결제일이 돌아오면 다른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사업을 포기할 순 없었다. 6개월 만에 우리 사이트의 게시판은 연일 방문자들의 글이 폭주했고 심지어는 방문자들끼리 난상 토론까지 벌어졌다. 당연히 해당 분야에서의 사이트 지명도는 상승했다. 학계는 물론 업계에서까지 유명세를 탔다.

한번은 대학 친구들이 휴학하고 복학을 하지 않는 내가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을 본 그들은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작지만 깨끗하고 좋은 시설의 오피스텔에 번듯한 양복을 입고 여자 친구와 함께 일하는 모습이 졸업 후 직장을 구해야 하는 그들로서는 부러운 모양이었다. 심지어 자기 자리 하나 만들 수 없느냐는 녀석도 있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월세는 물론 관리비까지 밀려갔다. 월세는 주인이 보증금에서 충당한다고 해서 독촉은 없었지만 관리비 밀리는 것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점심을 직접 해서 먹는 우리에게 음식 냄새 난다고 관리 사무실에서 항의 전화가 걸려올 정도였다. 주방시설이 다 갖춰진 오피스텔에서 음식 해먹는 것 가지고 항의를 하다니, 가서 따지고 싶어도 그럴 수조차 없었다.

#2 보증금마저 날리고 후배 사무실에 얹히는 신세로 전락 

사업을 시작한 후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자 결국 오피스텔을 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보증금에서 밀린 월세를 제하고 그나마 남은 돈으로 관리비를 충당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매달 정기적으로 나가는 돈이라는 것이 그렇게 빨리 돌아오고 부담이 가는 것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일과 씨름하다 여자 친구가 퇴근하고 밤이 되면 혼자 깡 소주를 마시며 자신을 달랬다. 사업을 그만두고 학교 복학이나 할까도 생각했지만 꽤 높아진 사이트의 지명도가 아쉬워 쉽게 놓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비싼 월세와 관리비를 내면서 오피스텔에 계속 머물 수는 더더욱 없었다. 결국 뒤늦게 사업을 시작한 학교 후배의 사무실에 컴퓨터만 가지고 들어가야 했다. 후배는 늦게 시작하긴 했지만 집이 여유가 있어 사무실이 꽤 넓었다.

하지만 오피스텔을 뺐기에 숙소가 필요했다. 급한대로 여자 친구의 집 근처 고시원을 잡았다. 구로에 있는 후배 사무실은 지하철로 1시간 가량 걸렸지만 선택의 길은 없었다. 후배 회사는 서너 명의 직원들과 함께 점심도 직접 해먹기에 식사 시간이 되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도시락을 싸가기도 그렇고, 둘만 나가서 먹기도 그렇고 말이다.

그렇게 한 달여 얹혀있는 동안 가장 먼저 했던 것이 홈페이지 개편, 1년여 기간 여자 친구는 놀라울 정도로 홈페이지 제작 실력이 늘었다. 정확히 말하면 미술을 전공해서 색감 연출이 뛰어났다.

개편 후 얘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생각하지도 않게 한 회사에서 홈페이지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전문 분야에서 방문자는 최고라고 자부했지만 광고 수익은 기껏 월 20~30만 원.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에 우리는 새로운 아이템을 발견한 것이다. 3주 정도에 걸쳐 첫 홈페이지 제작을 성공리에 끝내고 우리는 사업시작 후 처음으로 200만 원이 넘는 돈을 만져봤다. 벅차고도 슬펐다. 

#3 초라하지만 우리만의 사무실을 다시 갖다

기뻐할 여유도 없이 우리는 그 수익금을 들고 사무실을 구하러 다녔다. 후배가 고맙기도 했지만 선배로서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여자 친구 때문에라도 하루빨리 나오고 싶었다. 사무실다운 사무실은 바라지도 않았다. 책상 두 개만 들어갈 수 있다면 어디든 괜찮았다. 그러던 중 종로구 신설동에 보증금 없이 두 달 월세를 선불로 내는 사무실을 찾을 수 있었다. 건물은 낡고 사무실은 넓지 않았지만 다시 우리만의 사무실이 생겼다는 것에 우리는 만족했다. 아니 좋았다.

우리는 사이트에 홈페이지 제작 의뢰 코너를 별도로 만들고 본격적으로 홈페이지 제작을 시작했다. 제작 완료 후 3개월간 무료로 배너광고를 넣어준다는 말에 의뢰건수는 예상보다 많았다. 우리 사이트는 전문 분야의 소식을 전하는 정보 사이트였다. 사업 시작 후 1년 6개월여가 되어서야 월세 중압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큰 수익이 나지는 않았다. 여자 친구 혼자서 한 달에 만들 수 있는 홈페이지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메인 사이트를 전담해야 했고 직원을 구하자니 월급은 물론 사무실이 작아서 부담이 됐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후배 사무실에서 나와 우리만의 사무실을 얻어 좋았던 그 기분은 다 어디로 가고 사무실이 불만스럽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이 지긋한 중년의 남성이 갑자기 방문했다. 혼자서 빌딩 관련 사이트를 운영하던 그 분은 지금 사무실에서 내는 월세만 본인한테 주고 자신의 사무실을 쓰라는 것이다. 자신은 사장실만 쓰겠다고. 대신 자신의 사이트를 만들어 달라는 조건이었다.

우리는 성북구에 있는 그 분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2층 전 층을 사용하는 사무실로 사장실을 제외한다고 해도 꽤 넓은 평수다. 며칠의 고심 끝에 우리는 그 분의 사무실로 들어가기로 했다. 마포구, 구로구, 종로구에 이어 성북구까지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곳 사무실 생활은 생각과는 달랐다. 성북구로 옮긴 후 우리는 직원도 채용해서 모두 5명이 일을 했다. 사장실을 차지하고 있던 사무실 주인은 내가 외근하고 없으면 우리 직원들을 자신의 직원인 양 부리는 것은 물론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사장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혼자 계시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여자 친구와 직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을 한다는 것이다. 급기야 그만두겠다는 직원까지 나왔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나는 사무실 주인에게 얘기를 했지만 자신은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얘기했으니 조금 나아지겠지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여자 친구가 불만을 터트렸다. 일에 관련해서 웬만해서는 불만을 토로하지 않던 그녀가 씩씩거리며 도저히 일을 못해 먹겠단다.

이유인 즉, 만들어주기로 한 사이트가 한 개가 아니고 여러 개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단순 사이트가 아닌 프로그래머가 있어야 하는 복잡한 사이트를 말이다. 그것도 오늘 말 다르고 내일 말이 달라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안 나는 사무실을 주인을 만나봤다. 하지만 말 그대로 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알고 보니 사무실 주인은 건물주가 아니었다. 본인 회사명과 건물 이름이 같아서 우리가 착각한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보증금을 내는 조건이 아니었기에 그것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그 분 역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었고 처음에 비해 조금씩 성장하는 우리를 보니 조급해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디자이너 2명과 내가 독학으로 익힌 프로그램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온 우리로서는 그 분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4. 회 한 접시가 천만 원?

생각없이 사준 회 한 접시는 너무나 큰 보상으로 돌아왔다.
 생각없이 사준 회 한 접시는 너무나 큰 보상으로 돌아왔다.
ⓒ 이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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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사무실로 옮긴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우리는 또 사무실을 옮겨야 했다. 이건 뭐 남들이 보면 유령회사라고 할 만 했다. 성북구로 옮겨 돈도 모으지 못한 상태에서의 이사였다. 그냥 전에 있던 사무실에 있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없는 돈으로 사무실을 알아보던 중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지내니? 사무실 옮겼다며?"
"응, 옮겼는데 또 옮겨야 할 거 같아."

홈페이지 제작을 시작하면서 사무실에 한번 찾아왔던 대학 동기였다. 당시 그 친구는 입사한 회사가 잘못돼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동기가 반가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비싸지 않은 회와 술을 사준 적이 있었다.

"뭐가 잘 안 돼? 너 계좌번호 불러봐."
"뭐하게?"
"한 천 만원 보내 줄 테니 사무실 얻는 데 보태 써라."

내용인 즉 전에 같이 일하던 회사의 사장이 부동산 분양 일을 하게 됐는데 큰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어려울 때 같이 있어줬던 친구도 꽤 많은 돈을 벌게 된 것이란다.

"그런데 왜 나한테 그 큰 돈을?"
"내가 없어보니까 있을 때 백 만 원 주는 사람보다 없을 때 만 원 주는 사람이 더 고맙더라. 없는 형편에 그때 네가 사준 회 한 접시는 고마움 그 이상이었다."

"뭘 그렇게까지?"
"너 하는 사업이 외적으로 보이는 것도 있잖아. 사람도 자주 찾아오고 하니까 작게라도 사장실이나 회의실이라도 만들어서 따로 만나야 사업하는데 유리해."

이 무슨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와서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 같이 한 것뿐인데 천 만 원이라니! 고맙고도 미안했다. 지금도 적은 돈이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더욱 큰 돈이었다. 그 친구는 다음 날 어김없이 돈을 송금했고 우리는 성북구에 이어 마지막으로 은평구로 이사했다. 공용사무실 외에 자그마한 사무실도 얻어 사장실 겸 회의실도 마련했다.

이사 후 사업은 더 나아졌다. 홈페이지 제작은 가격은 낮아지고 업체가 많아져 오래하지 않았지만 전문 분야 쇼핑몰에서 채용 사이트, 전문 검색서비스까지 진출했다. 모두 수익과 연관이 있는 사업들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2년간에 걸친 서울 월세 방랑기는 비로소 끝을 맺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짧지만 참으로 길고 힘든 시기였다. 마포구에서 시작해 은평구에 이르기까지의 험난한 역경,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 만나게 되는 소중한 인연과 고마움들. 이 글을 통해 몇 년 동안 20대의 꽃 같은 나이에 함께 고생해 온 여자 친구와 직원들 그리고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태그:#나는 세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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