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곳은 일반 영리회사가 아닌, '중간지원기관(사회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민관이 협력하는 기관)'이라 불리는 다소 생소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어딜 가나 쉬운 일이 없겠지만 이 계통에서 일하려면 스스로 방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야근이며 특근을 해도 보상이 없기에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곤 한다. 만약 결혼을 한 여자라면 집안일과 회사일 모두를 소화하는 슈퍼우먼이 될 각오가 없다면 살아 남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일하는 곳은 여자보다 남자가 많다. 올해 초 만들어진 지역 내 여성 활동가 모임에서 2012년 제1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초청작 <3·11 여기에 살아>라는 영화를 보았다(여성활동가 모임에서 주최하였지만 남성들도 볼 수 있게 해 소수의 인원이 참석하였다).

▲ 3.11 여기에 살아 ⓒ 2011년 3월 11일 일본 대지진 이후 여성 생존자들의 삶을 조명

▲ ▲ 3.11 여기에 살아 ⓒ 2011년 3월 11일 일본 대지진 이후 여성 생존자들의 삶을 조명 ⓒ 가샤코코


이 영화의 감독인 '가샤 코코(GASHA Kyoko)'는 2001년 로이터통신에 입사하면서 뉴욕으로 이주하였는데 그 해 일어난 9·11테러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했다. 지난 2009년 <엄마의 길, 딸의 선택>을 완성했으며 <3·11 여기에 살아>는 두 번째 작품으로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 대지진 이후 여성 생존자들의 삶을 조명하는 인터뷰 형식의 다큐멘터리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여 이웃 주민과 소통없이 지내는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니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해 내가 살던 집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고 같은 동네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안부를 묻던 이웃 주민이 죽어가는 것을 본 사람들. 영화는 사고 이후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지 않고 오히려 이 곳에서 삶의 새로운 지향점들을 설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을 조명하였다.

노인복지시설에서 일하던 여성이 대지진으로 일터가 사라졌지만, 지역 내 다른 노인복지시설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음에 감사해한다. 그러면서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사람들에 안타까워 한다.

그녀는 소통의 매개체로 '체조' 모임을 매주 1회 시작하였고 노인들은 점차 일상생활에 활기를 찾아가는 모습을 비추었다. 이런 작은 시도는 이 지역 노인들이 힘든 상황에 절망하지 말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희망적이라는 마음가짐을 갖는데 도움을 준 것이다.

또 다른 여성은 대지진 이후의 처참했던 당시를 떠올린다. 1인 당 70cm 봉투를 나누어 주었는데, 그 안에 넣을 만한 물품이 없어 포기하고 맨 몸으로 20인승 미니버스에 탑승하여 지역을 빠져나온다. 이후 한 달 만에 집이라고 해서 내려주었는데 집은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지역에 속출하면서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여성들이 모였다. 이 여성들은 수건으로 코끼리 모양을 만들어 전시 및 판매를 하였다. 코끼리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지지말자'란 뜻. 자연재해에 그리고 여성들이 마을을 구하는 데 있어 약해지지 말자는 스스로의 다짐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어떤가. 20여년을 안양시민으로 살아오면서 지역사회(마을)에 기여하고 있는 점은 무엇인가? 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다만 안양시 시정현장평가단으로 활동하면서 안양시가 추진하는 사업의 진척 정도와 시민 만족도, 잘하고 있는 점, 미흡한 점을 평가하여 시민의 눈높이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안양시민으로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고 지금도 이 연장선상에서 내 직업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2012년부터 '마을 만들기' 열풍이 불면서 주민의 필요에 따라 주민이 계획하고 주민이 직접 만드는 마을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를 개소했다. 마을을 활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주민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펼칠 기회의 장으로써 마을을 돌아보게 하는 기능을 한다.

<3·11 여기에 살아> 영화를 보기 전에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여성들이 구했다고 하여 거창하게 생각하였다. 영화를 보고 나니 그보다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작은 실천이 마을을 바꾼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다. 재난 앞에 스스로를 그리고 타인을 위로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영화이다. 더 나아가 마을이 지구를 구한다는 사명을 가진 여성이라면 더욱 강추 한다.

그래서 지금도 그 자리에서 조급해 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앞으로 10년 동안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을 계속해서 기록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도 쭉 지켜보아야겠다.

여성 지진 일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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