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 문득 스쳐지나 듯 흐르는 음악에 마음이 온통 사로잡힐 때가 있다. 혹은 막을 내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울려 퍼지는 이름 모를 곡에 감동이 더욱 커지는 순간도 있다. 이렇게 음악은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한다.

음악, 구성, 줄거리 모두 갖췄다

어떤 영화는 삽입곡으로 더 많이 회자 되는 경우도 있다. 또 영화적 요소보다 음악에 더욱 무게를 두고 만들어진 작품도 있다. 영상미와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은 시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면서 더욱 깊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비긴 어게인

비긴 어게인 ⓒ 판씨네마

지난 8월에 개봉한 영화 <비긴 어게인>도 그런 영화다. 이 영화는 음악을 위해 인생을 바치는 뮤지션과 프로듀서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남자친구인 데이브(애덤 리바인)와 함께 사랑하며 음악적 영향을 주고받던 관계다. 꿈을 이루고자 둘은 영국에서 뉴욕으로 오게 되는데, 보컬인 데이브의 노래가 영화 음악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레타는 갑자기 바빠진 그와 달리 평안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문득 자신과 멀어진 애인을 보며 서글픈 마음에 뉴욕을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다 길거리 공연을 하며 지내는 친구 스티브(제임스 코든)의 권유로 클럽에서 자신의 자작곡을 부르게 된다.

우연히 클럽에서 술을 마시던 댄(마크 러팔로)이 그녀의 노래를 듣고 앨범 제작을 제의한다. 댄은 잘나가던 음반 프로듀서로, 인디 힙합씬의 스타를 여럿 발굴하며 한 때 천재적 제작자로 불리던 인물이다. 그러나 몇년 간 부진한 실적과 방만한 태도로 자신이 공동 창업했던 기획사에서 해고되기에 이른다.

마룬파이브의 애덤 리바인 출연

 영화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 데이브 역할을 맡은 애덤 리바인은 유명그룹 '마룬5'의 보컬이다. 그는 탁월한 노래실력과 함께 자연스러운 연기력도 선보인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 데이브 역할을 맡은 애덤 리바인은 유명그룹 '마룬5'의 보컬이다. 그는 탁월한 노래실력과 함께 자연스러운 연기력도 선보인다. ⓒ 판씨네마(주)


결국 댄과 그레타, 두 사람은 열악한 상황에서 음반을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완성해야 하기에 길거리에서 녹음하기로 결정하고, 도시가 만들어내는 소음마저도 음악의 한 부분으로 만드는 실력을 뽐낸다. 지하철 열차가 오가는 소리, 사이렌, 차의 경적소리까지 더해져 완성된 음악은 나름 멋진 조합으로 탄생한다.

영화의 핵심적 매력 요소인 음악이 관객의 귀를 즐겁게 한다. 뜻밖의 노래 실력을 보여준 키이라 나이틀리 뿐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에 녹아든 밴드의 연주도 관객석을 들썩이게 할만큼 흥겹다. 유명 그룹 '마룬파이브(Maroon5)'의 보컬인 애덤 리바인의 노래 실력은 더 할 나위없이 좋다. 연기도 자연스럽다.

뉴욕을 배경으로 여기저기서 공연을 펼치는 그레타와 댄은 '길거리 녹음'을 컨셉으로 앨범을 만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이야기 또한 음악만큼이나 흥미롭다. 가족과 연인, 혹은 개인의 문제로 고뇌하는 등장 인물들의 모습은 단순히 '곁들여진'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의 중심축으로 굳건히 이어진다. 음악과 더불어 감독이 직접 쓴 각본도 영화의 묘미인 셈이다.

결국 '꿈을 좇는 이의 성공기'가 스크린에 한껏 투영되는 동안, 관객은 감정 이입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다. 울려퍼진 노래들은 마치 공연장에 직접 찾아온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현장감을 안겨준다. 도심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심정을 담은 가사와, 영화의 분위기에 맞춰 감정을 자극하는 멜로디는 앨범을 영화로 옮겨놓은 듯하다.

완성도 높은 음악과 줄거리... 음악영화의 진화

<비긴 어게인>은 한국에서 다양성 영화로 분류된 영화다. 입소문을 타면서 한달 만에 2만 관객을 돌파하는 중이다. 적은 상영관에도 불구하고 이런 반응을 얻은 것은 고무적이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탄탄한 음악이 뒷받침되어 만들어진 결과다. 사실 다양성 영화로 분류되기엔 출연배우들의 명성과 투입된 제작비가 어지간한 한국의 흥행작과 견줄만 하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미덕이라면, 음악에 중점을 둔 영화라도 무게중심이 한 쪽으로 쏠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음악에만 신경을 기울이느라 줄거리나 연출이 부족한, 흔히 이런 장르에서 흔히 드러나는 허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내용이 매끄럽게 진행되면서도, 줄거리의 이해와 등장인물의 성격을 차분히 끌어가는 구성도 돋보인다.

이야기를 각 캐릭터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방식으로 조금씩 겹치게 되풀이하는 것은, 마치 테이프를 되감으며 음악의 다양한 포인트를 되짚어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덕분에 주인공의 심경 변화와 내용의 흐름이 관객에게 더욱 잘 와 닿는다.

과거에도 음악 영화로 유명한 작품들이 여럿 있었다. 같은 감독인 존 카니가 연출한 <원스(2007)>나 커스틴 쉐리단 감독의 <어거스트 러쉬(2007)>도 감성적인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긴 어게인>이 보여주는 높은 완성도의 줄거리와 음악을 보면, 같은 장르의 기존 작품들보다 한층 진화된 음악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청명한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 이런 영화로 잔잔한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독서만큼 마음의 양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 앨범제작자 댄(마크 러팔로, 오른쪽)은 작곡가 겸 가수인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왼쪽)를 만나서 '길거리 녹음' 컨셉의 앨범을 만들기로 한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 앨범제작자 댄(마크 러팔로, 오른쪽)은 작곡가 겸 가수인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왼쪽)를 만나서 '길거리 녹음' 컨셉의 앨범을 만들기로 한다. ⓒ 판씨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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