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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오마이뉴스> 기자 중 가장 먼저 진도에 도착해 약 한 달을 머물렀습니다. 이후 대부분 기자들이 현장을 떠났고, 계절이 두 번 바뀌어 9월이 됐지만, 세월호 침몰사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우연히 진도에 머무는 동안 찍었던 사진을 다시 더듬었습니다. 당시 흘려보냈던 사진 중 몇몇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다시 꺼낸 그날'의 사진엔 반성, 후회, 분노 그리고 아픔이 담겨 있었습니다. 9월 첫날, 저는 다시 진도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사진을 한 장씩 꺼내려고 합니다. '기억은 곧 존재'라고 믿습니다. 사진기자도 아닌 제가 그날의 사진을 다시 꺼내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잘' 기억하고 싶을 뿐입니다. - 기자 말

20일 오전 1시 실종자 가족들은 "다시 대통령을 만나겠다"며 거리로 나섰다. 대통령이 다녀간지 3일만이었다. 계획된 거리행진이 아었던 까닭에 어떤 아빠는 슬리퍼를, 어떤 엄마는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기도 했고, 바람도 세찼다. 사진은 기자의 차 사이드미러에 비친 어느 실종자 가족의 모습이다. 사이드미러에 비친 여성 실종자 가족은 결국 더 걷지 못했다. 차창을 내려 차에 타길 권유했다. 그는 답 대신, 차로 발길을 옮기는 데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썼다.
▲ 거리행진 나선 세월호 희생자 가족 20일 오전 1시 실종자 가족들은 "다시 대통령을 만나겠다"며 거리로 나섰다. 대통령이 다녀간지 3일만이었다. 계획된 거리행진이 아었던 까닭에 어떤 아빠는 슬리퍼를, 어떤 엄마는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기도 했고, 바람도 세찼다. 사진은 기자의 차 사이드미러에 비친 어느 실종자 가족의 모습이다. 사이드미러에 비친 여성 실종자 가족은 결국 더 걷지 못했다. 차창을 내려 차에 타길 권유했다. 그는 답 대신, 차로 발길을 옮기는 데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썼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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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다음날인 17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를 찾았지만(관련기사 : 대통령 "위로의 말 전한다" 가족들 "보여주기 식이냐"), 실종자 수색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구조 작업은 더뎠고, 시간이 지날수록 실종자는 희생자로 바뀌었다. 진도군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은 오열로 가득찼다.

급기야 실종자 가족들은 "다시 대통령을 만나겠다"며 거리로 나섰다. 대통령이 다녀간 지 3일만이었다.

20일 오전 1시 실종자 가족들은 두 다리에 의지해 체육관을 출발했다. 계획된 거리행진이 아니었던 까닭에 어떤 아빠는 슬리퍼를, 어떤 엄마는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기도 했고, 바람도 세찼다.

숙소에서 잠에 빠져있던 기자는 오전 3시 이 소식을 들었다. 곧바로 사진기자와 함께 차를 몰아 실종자 가족을 쫓았다. 오전 4시 행렬의 꽁무니가 보였다. 사진기자는 차에서 내려 행렬에 합류했고, 기자는 행렬 뒤에서 조심스레 차를 몰았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미 세 시간을 걸은 상황. 실종자 가족 한 명, 두 명이 행렬에서 떨어져 나갔다.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기자가 운전하던 차 뒤까지 쳐져 힘겨운 발걸음을 이어갔다. 위 사진은 기자의 차 사이드미러에 비친 어느 실종자 가족의 모습이다.

사이드미러에 비친 여성 실종자 가족은 결국 더 걷지 못했다. 차창을 내려 차에 타길 권유했다. 그는 대답 대신, 차로 발길을 옮기는 데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썼다.

"어디쯤이에요? 다시 걸어야 하는데…."

차에 쓰러져 한참 말을 않던 그가 말을 건넸다. 기자는 "차에서 내리지 말고, 쉬세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뒤 차에서 내려 다시 발걸음을 내딛었다.

'책임자가 회피한 책임'까지 떠안은 피해자

이른바 '해피아'만 떠올려도 세월호 침몰사고는 국가의 책임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선령 제한이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돼 세월호가 출항할 수 있었던 이유 ▲ 복원성 검사·고박·과적 등 안전 관련 공무를 민간에 위탁할 수 있었던 까닭 ▲ 세월호를 증·개축 할 수 있었던 명목 등은 정부가 마피아와 다르지 않음을 증명한다. 사고 초기 대응의 허술함과 자신있게 내놓지 못하는 '대통령의 7시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사고 이후부터 지금껏, 희생자 가족들은 '내 가족을 살려달라', '사고의 진상규명을 원한다'고 요구해야만 했다. 책임있는 자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는 피해 구제는 물론, 책임있는 자의 책임까지 떠안은 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월호 가족'이 거리로 내몰리는 건 여전하다

[다시 꺼낸 그날 ③] 안전행정부 장관의 행보와 대통령의 7시간
[다시 꺼낸 그날 ②] 세월호가 교통사고? 맞다, 국가가 저지른 교통사고
[다시 꺼낸 그날 ①] '내 자식은 살아있겠지...' 어찌 그날을 잊을까


태그:#세월호,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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