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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국방위의 안전기획부 국정감사에서 김덕 안기부장이 선서를 하고 있다. 1993.10.18
 국회 국방위의 안전기획부 국정감사에서 김덕 안기부장이 선서를 하고 있다. 199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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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은 집권 초기 개혁성향의 정치학 교수를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기용했다. 군 출신이나 법조인을 기용하던 관행에 비추어 뜻밖의 인선이었다. 김덕 안기부장(93. 2 ~ 94. 12)은 정·재계 인사를 불법도청해 온 미림(美林)팀을 해체하고, 수집요원들의 기관 출입과 정치 동향정보 수집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직원들이 '비노출 간접활동' 지시를 어겼을 경우 조직에서 보호해 주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안기부 내부에서 잔뼈가 굵은 국내담당 1차장과 YS의 직계인사인 기조실장의 입장은 김 부장과 달랐다. 이들은 안기부법이 정치행위를 금하고 있어도 모든 정보는 결국 정치로 귀착되고 선거로 평가받으므로 정치동향을 수집하지 않는 것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일하지 않는 직원은 인사조치하겠다며 직원들의 정치동향 정보수집을 독려했다. 가장 확실한 수집 방법은 '미감(미행감시) 활동'과 '현장 도청'이었다.

제1회 지방선거를 1년 앞두고 '여론조사팀'이라는 위장 명칭으로 미림팀이 재건되었다. 당시 오정소 대공정책실장(국내정보 수집국장, 뒤에 차장 승진)이 재건한 2차 미림팀은 94년 6월부터 97년 대선 직전까지 3년5개월 동안 활동했다. 고급 한식당, 호텔, 골프장 등지에서 연인원 5천명의 정·재계 인사를 사찰하면서 1주일에 5개씩 1000여 개의 불법도청 테이프를 생산했다.

YS-김덕 부장은 '미림팀' 해체, 아들 김현철과 오정소는 재건

권영해 전 안기부장 총풍사건 무죄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로부터 지난 97년 대선직전 발생한 총풍사건과 관련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담담하게 법정을 나서고 있다.
▲ 권영해 전 안기부장 총풍사건 무죄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로부터 지난 97년 대선직전 발생한 총풍사건과 관련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담담하게 법정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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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퇴직 후에 대비해 몰래 보관해온 도청 테이프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불거졌다. 정보기관의 불법도청이라는 공공연한 판도라의 비밀상자가 열린 것이다. 당시 X-파일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김덕 부장과 황창평 차장이 미림팀 재구성에 관여하거나 최소한 재건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YS와 김덕 부장이 해체한 미림팀을 대통령의 아들(김현철)과 부하(오정소)가 재건해 불법도청으로 얻은 동향보고를 아버지(YS)에게 올린 것이다.

정형근 1차장은 지방선거 전에 자신의 직속으로 '사고예방팀'이라는 특별대책팀을 만들었다. 김영삼 취임 이후 성수대교 붕괴 등 대형사고가 연이어 터지던 시절이어서 대형사고 예방을 위한 점검활동을 한다고 했다. 눈치 빠른 직원들은 지방선거에 대비한 조직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1차장은 일부 지부에 지방선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수집해 연기 대책을 만들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지방선거 연기검토 지시문건이 언론에 유출되어 정치개입 논란이 불거지자 사임했다.

문제는 1차장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대책을 위해 만든 30명 가까운 '사고예방팀'의 존재였다. 관료 사회는 무슨 조직이든 예산을 반영해 한번 만들면 쉽게 없애지 못한다. 그러나 밥값은 해야 했다. 사고예방팀은 진짜로 사고 예방을 위해 전국 대형 건물과 공사장 현장에 나가 문제점과 대책을 담은 안전 진단 보고서를 만들어 정보비서관에게 올렸다. 보고서의 대부분은 "수고했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슬며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미림팀의 불법도청은 권영해 안기부장 시절에 더 활발했다. 검찰은 권영해 부장이 나중에 검찰 조사에서 미림팀 보고서를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물론 권 부장도 재임 중에 공식적으로는 안기부의 정치 개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는 '아말렉공작'이라고 이름붙인 김대중 후보 낙선 '북풍공작'을 추진했다. 선거 막판에는 영남, 충청 출신 직원 200여 명을 선발해 귀향여비까지 줘가며 '선거 개입'을 장려했다(관련기사: 이병기 안기부법·직원법 위반... 검찰, 수사하고도 불기소했다).

권 부장은 개인 비리 외에도 안기부법(정치관여 금지)과 선거법(후보자 비방 등)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1, 2심 모두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모든 원장이 불법 도·감청 금지, 그래도 감청 보고서는 올라갔다

정보기관 도청의 최대 피해자인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도·감청 근절을 지시했다. 대통령의 지시를 거역할 정보기관장은 없다. 이종찬, 천용택, 임동원, 신건으로 이어진 네 원장은 모두 불법 도·감청 근절을 지시했다. 그러나 통신장비를 이용한 불법 감청은 관행으로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X-파일 사건을 계기로 불법 도·감청 사건의 재수사가 이뤄졌고, 임동원-신건 전 원장과 김은성 전 차장이 불법 감청을 지시·묵인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김은성 차장은 법정에서 역대 원장들의 도청 근절 지시와 관련 "국정원에 30여 년간 있으면서 '도청하지 말라, 월권하지 말라, 정치사찰 하지 말라, 신분 노출하지 말라'는 이 네 가지 얘기는 항구여일 들었던 것"이라면서 "어느 원장도 이 얘기를 안 한 사람이 없지만 그 다음날도 어김없이 감청보고서는 위로 올라갔다"고 증언했다. 다른 고위 간부는 "원장이 감청 근절을 지시했지만 그건 일종의 관행이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1·2심 재판부는 "불법감청을 방관·묵인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임동원·신건 원장에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징역 3년, 집행유예 4년)를 선고했다. 정작 미림팀을 운영한 권영해 부장과, 임·신 원장과 마찬가지로 불법 감청을 묵인한 이종찬·천용택 원장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현행범도 아닌데 전직 국정원장을 당시는 관행이었던 직무상의 과오와 관련 구속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 재판부는 "이런(불법) 관행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국정원장 한 사람뿐인데, 오히려 불법감청 자료를 계속 보고 받았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받아들였다. 설령 그것이 비밀정보기관의 업무관행이라고 하더라도 불법인 이상 책임자는 처벌을 면할 수 없다는 준엄한 법의 심판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같은 준엄한 심판과는 동떨어진 판결이 나왔다. 권영해 부장처럼 개인 비리로 구속수감되어 형기만료로 풀려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선고심에서 1심 재판부가 국정원법 위반 혐의는 유죄(징역 2년6개월 및 자격정지 3년에 집행유예 4년)를 선고하면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허술하고 순진한 무죄 선고 논리와 양형 판단 기준

징역2년 6월, 집행유예 4년 선고 받은 원세훈  국정원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 6월,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기 위해 차량에 올라타고 있다.
▲ 징역2년 6월, 집행유예 4년 선고 받은 원세훈 국정원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 6월,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기 위해 차량에 올라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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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국정원의 사이버 활동은 원세훈 원장이 취임하기 전부터 지속된 국정원 심리전단의 잘못된 업무수행방식의 관행을 탈피하지 못한 것으로, 직원들이 하는 업무를 몰랐다는 원 원장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사법부가 그동안 역대 국정원장을 구속수감하면서 내세운 논리와도 상충된다.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을 국정원법에서 금지한 정치관여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이 같은 행위를 국정원장을 정점으로 이종명 3차장과 민병주 심리전단장을 거쳐 지시-보고 체계를 통해 이루어진 '조직적 범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같은 행위가 공직선거법 상의 '선거운동'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어떤 행위를 선거운동으로 보기 위해서는 특정 후보를 당선 또는 낙선시키려는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이 인정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선고 2011도9243)을 근거로 "정치개입은 했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재판부 스스로도 '납득'이 안되는지 204쪽에 걸친 장문의 판결문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선거개입의 목적'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재판부의 선거법 무죄 선고 논리와 양형 판단의 기준은 허술하고 순진하기 짝이 없다.

특히 재판부가 원 원장이 부서장회의에서 명시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시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았고, 오히려 "대선정국을 맞아 원(院)이 휩쓸리지 않도록 더욱 철저히 관리"하라는 등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지시한 사실만 확인했다고 판단한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정보기관의 생리상 원장의 이런 발언은 일종의 '립 서비스'이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안전 장치'일 뿐이다. 이런 '원장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순진한 국정원 직원은 없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 천만의 말씀

무엇보다도 국정원법 제9조 '정치관여 금지' 조항의 입법 취지를 감안하면 이번 판결은 국민의 상식을 배반한 것이다. 국가공무원법에도 제65조 '정치 운동의 금지' 조항으로 정치적 중립 의무를 강제하지만, 국정원법처럼 별도의 정치관여금지 조항이 규정돼 있지는 않다.

국정원법에만 정치관여 금지 조항을 넣은 것은 그동안 역대 국정원장 30명 가운데 1/3이 사법처리된 '흑역사'와 그럼에도 정치관여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온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구나 비밀정보기관 업무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국정원 직원은 일반 공무원보다 더 엄격한 '정치관여' 및 '선거개입'의 책임을 지는 것이 국민의 법상식이다.

만약 재판부가 이런 입법 취지를 알고서도 그랬다면 정치적 판결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 유죄면 대선의 공정성과 대선결과의 정당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이 훼손되고 대선 무효투쟁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정치적 판결이라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재판부의 무죄 선고 논리는 결국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와 같은 맥락이다. 1994~1995년 당시 장윤석 서울지검 공안1부장이 12.12 및 5.17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하면서 내세운 그 논리다. 이번 판결을 두고 "성공한 사이버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패러디가 20년 만에 나오는 까닭이다.

그러나 당시 기소를 포기했던 검찰은 5.18특별법 제정 움직임에 떠밀려 재수사에 착수해 1995년 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12·12 군사 반란 및 5·18 내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했고, 1심 재판부는 전두환을 내란 및 반란의 수괴로 판시해 사형(2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성공한 쿠데타도 법의 심판을 받은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1심 판결은 2심에서 얼마든지 이렇게 바뀔 수 있다. 그것이 국민의 법상식에도 맞는 판결일 것이다.

"정치에 개입함으로써 선거에 개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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