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비정상회담>의 한 장면.

JTBC <비정상회담>의 한 장면. ⓒ JTBC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지상파가 아닌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송 한 달 만에 동시간 대 예능 프로그램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11명의 외국인들이 단순한 신변잡기가 아닌 특정 주제를 놓고 격렬한 토론을 벌인다는 설정이 이렇게 먹힐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익명을 요구한 타 방송사 PD는 "집단 외국인 예능을 먼저 선점했는데 이렇게 스튜디오 안에서 떠드는 걸로 화제가 되니 배가 아플 지경"이라 표현할 정도였다.

JTBC <비정상회담>에 외국인들을 불러 모은 장본인은 다름 아닌 임정아 PD, 김희정 PD 이하 여러 스태프다. MBC 재직 시절 <무릎팍도사>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 등을 거치며 '편집 가장 잘 넘기는 PD'로 이름을 날린 이가 임정아 PD였고, 김희정 PD 역시 CJ E&M 개국 멤버로 산파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새로움에 대한 고민은 PD라면 누구나 하는 것. 집단 외국인 예능의 원조 격인 KBS <미녀들의 수다>의 아성을 무너뜨린 <비정상회담>의 노하우를 알아보자.

한국어 너무 잘해도 안 돼요! "신선함 필요했다"

- 방송 한 달이 지나 이렇게 화제가 되고 있다. '약 빨고 만든 프로그램'이라는 평도 있는데, 본래 <미녀들의 수다>라는 원조가 있는 만큼 부담도 됐을 거 같다.
"기획이야 프로그램 방송 2개월 전부터 했다. 지상파가 아닌 이상 아주 새롭지 않으면 시선을 잡기 어렵다. 회의 때마다 '새로운 건가? 신선한가?'를 자주 묻곤 한다. <미녀들의 수다>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애초에 그 프로그램 생각을 전혀 못했다. 2, 30대 외국인 청년들이 국경을 뛰어 넘어 토론한다는 게 전부였다. 기획안을 내고 나중에서야 <미녀들의 수다>랑 다른 게 뭐냐는 말을 들었다." (임정아 PD)

- 출연진 섭외 기준도 궁금하다. 방송이 결국 출연진 간 궁합도 중요하지 않나.
"전 세계 청년들의 고민거리를 대변한다는 설정이었기에 젊은 친구들 위주로 뽑았다. 한국어야 잘 해야 했지만 그것보다는 본인의 생각이 뚜렷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더 중요했다. 한국에 정착한지 매우 오래된 사람은 오히려 제외했다. 너무 한국화가 됐을 수도 있으니까." (김희정 PD)

"섭외를 위해 정말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신선함도 중요했기에 방송에 많이 노출 안 된 분을 중심으로 찾았다. 샘 오취리도 섭외 당시엔 그리 유명하지 않았다. 줄리안도 지인 소개로 연락한 거다. 예전에 방송을 했다고는 했는데 미안한 얘기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섭외했다." (임정아 PD)

- 핵심은 민감해 보이는 주제 선정이다. 어떤 과정으로 주제를 정하나. 출연진은 토론을 잘 준비해오는 편인지.
"보통 제작진의 연령이 20대 후반에서 30대다. 그들이 가장 뜨거워하고 있는 문제를 키워드로 꼽는다. 여러 신문 기사 통계를 통해서 후보들을 꼽아놓고 나라별로 심각성 정도에 따라 분류를 하기도 한다. 우리가 보기엔 비정상 같은데 출연자 본인들은 서로 자기들이 정상처럼 생각하는 게 재밌다. 자기네 역사를 상대가 다르게 말하면 예민해지더라. 사전 인터뷰도 한 사람당 2시간을 한다. 11명이니까 이틀에 나눠서 하는데 그만큼 만만치 않게 스태프도 고생한다." (임정아 PD)

"출연진들이 준비를 굉장히 잘 해온다. 작가진도 그만큼 고생한다. (웃음) 본인들의 문화적 배경을 통해 공부를 해 오더라. 우리도 방송을 거듭하며 배우는 게 많다. 주제는 방송 일주일 전에 알려준다. 우리가 주제를 잡아도 G11들이 공감 못하면 바꾸기도 한다." (김희정 PD)

토론에서의 논란은 필수..."악마의 편집은 없어요!"

 JTBC <비정상회담> 진행자들.

JTBC <비정상회담> 진행자들. ⓒ JTBC


- 토론인 만큼 패널들 간 정치적 성향 차이도 눈에 띤다. 에네스 카야, 줄리안, 다니엘, 장위안 등의 '맞불 작전'이 인상적이다. 특히 지난 방송 중 한국의 서열 문화를 옹호하는 분위기가 나와 논란이 있었다.
"정치의 기준을 어디까지 두느냐의 문제인데 기본적으로 문화에 대한 토론이라 보혁(보수와 개혁)을 가리기 애매하다. 재밌는 건 다들 자기네 문화를 철저히 반영한다는 거다.

서열 문화 편은 우리도 흥미로웠다. 사실 한국인 입장에선 대인관계의 피로감이 강해서 외국인들이 옹호하니 의아하지 않았을까. 외국인들이 적응을 그만큼 잘한 거다. 그들 입장에선 조직 문화가 피로하기 보다는 신선해 보였던 거 같다. 실제로 이뤄진 토론을 편집을 통해 바꿀 수 없지 않나. 자율성을 보장해야지. 누리꾼 반응이 안 좋았던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피로하고 힘들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임정아 PD)

"독일인 다니엘이 주말에 상사가 심부름 시켜도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했을 때 놀랐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나 아닌가의 차이 같다. 줄리안은 직장 생활을 안 하니 부딪히는 거고. 우리의 역할은 이들의 발언을 진실하게 전하는 거다. G11의 발언을 어떻게 하면 왜곡하지 않고 전할지 편집 문법을 항상 고민한다." (김희정 PD)

- 수위 면에서 <마녀사냥>과 비교되기도 한다. 시청 연령층에 대한 고민도 클 거 같다.
"처음 프로그램을 방송했을 때 40대 이상의 시청자는 잡기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시끄럽고 정신없지 않냐. 우리도 이렇게 정신이 없는데! 그런데 의외로 가족끼리 잘 보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실 19세 이상의 수위로 갈까도 생각하긴 했다." (김희정 PD)

"특히 성교육에 대한 토론을 방송할 때 고민 많았다. '시청자의 절반을 떨구고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봤다더라. 젊은 세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더라. 이처럼 세대 간 대화가 되는 가교가 되니 기분이 좋다. 사실 우리 프로그램에서 수위조절은 19금인지 아닌지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혹은 문화 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수위가 무너지면 어느 한쪽이 불편해지는 거지." (임정아 PD)

"예능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즐거움이어야 한다"

 JTBC <비정상회담> 녹화현장.

JTBC <비정상회담> 촬영 현장. ⓒ JTBC


- 방송한 지 몇 달이 지나면서 소기의 성과도 보인다. <비정상회담>에 대해 자평하자면?
"지상파가 아닌데도 검색어에도 오르고 관심을 받고 있다. 논란도 관심이라 생각하지만 동시에 부담도 있다. 아까 말했지만 전달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자막도 항상 조심하는 부분이다." (김희정 PD)

"예능이지 않나. 예능은 궁극적으로 즐거워야 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이지. 태생이 그렇다. 가장 지칠 수 있는 월요일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개그콘서트> 종료 음악이 나오면 회사원들은 우울해지지 않나. <비정상회담>의 방향 역시 더 즐겁고 새로운 쪽으로 가야한다고 본다. 동시에 '문화의 용광로' 같은 기능을 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하차한 제임스의 말이 기억난다. '자기만의 성공을 찾아라!' 다들 누구나 인정하는 위치에 올라야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우리 문화에 일침을 놓은 말이다." (임정아 PD)

- 현재까지 패널들이 다 남자인데 혹시 여성 출연자를 섭외할 계획은 없는지.
"여성을 배제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외국인 여성들의 직업이 다양하지 않더라. 주로 모델이 많았다. 막상 연락을 해도 출연을 조심스러워 하더라. 지금 출연하고 있는 이들이 다소 모험 지향적이긴 하다. 이렇게 꾸려진 대로 가야할 것 같다." (임정아 PD)

"출연 신청 게시판도 있고, 지금도 원하는 외국인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 그렇다고 멤버를 당장 바꿀 건 아니다. 다른 얘기지만 프로그램 덕에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반응도 있다. 작가들 중에서도 영어를 다시 공부하는 이도 있더라. 그런데 기본적으로 출연자 대기실에선 영어 금지다!" (김희정 PD)

- 마지막으로 가벼운 질문을 하겠다. 11명의 출연자 중 특히 애착이 가는 이가 있는지.
"(웃음) 말할 수 없다! 사실 누구를 더 예뻐한다고 해서 분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외국인 별로 팬들이 있다 보니, 분량이 적어지면 종종 항의가 오긴 한다. 주제 별로 이야기를 끌어 가다보니 분량 차이는 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건 11명의 호흡이 다들 좋다는 거다. 8회를 넘어가면서 슬슬 맞아 가는 것 같다." (김희정 PD)

"다 애정이 간다. 사실 초반엔 이들이 아무 말도 못할까봐 '제발 아무 말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도 했었다. 근데 막상 판을 열어 주니 다들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에 능수능란하더라. 여전히 매회가 다른 프로그램 같은 느낌이다. 전형적인 틀이 없어서 그런가." (임정아 PD)"

"맞다. 우리끼리는 한 달이 지나면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을 거라며 위로했는데 이건 진짜 매회가 모험 같다. (웃음)" (김희정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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