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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은 고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은 어머니 같은 산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 같은 믿음직스러운 듬직한 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을의 가장 중요한 산을 '진산'으로 지정하여 특유의 진산문화 전통이 있다. 진산이란 보통 고을을 진호(鎭護)한다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진산은 고을을 등지고 위치하여 진호(鎭護), 표상(表象)하는 상징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멀리서도 고을을 대표할 수 있는 수려 장엄한 산세(山勢)의 산으로 이루어진다. 진산의 의미성은 방어나 계절풍을 막아주는 합리적인 이유 이외에도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풍수적 사고가 내포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부귀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현의 북 5리에 있는 진안의 진산(鎭山)이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주산의 개념을 보통 진산과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산은 주산이란 이름보다 상징성을 가진다.

진안은 진산인 부귀산을 중심으로 풍수개념도를 설명할 수 있다. 부귀산 기운이 읍내까지 뻗어 내리는데 우백호(右白虎)는 진안에서 전주로 넘어가는 고개인 강경골재 맥에 해당한다. 강경골재 맥은 마이산으로 이어지는 맥으로 금남호남정맥의 연결선이다. 강경골재는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分水嶺)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좌청룡(左靑龍)맥은 진안향교 쪽으로 뻗어 내려온다. 안산(案山)은 진안천 건너편 우화산(羽化山)과 성뫼산 줄기이다. 그리고 내룡(來龍)에 해당되는 당산(堂山)에 힘찬 기운이 머물고 그 앞자리에 명당판을 형성해 놓았다.

1872년 제작된 전라도 진안현 채색지도를 보면 진안현을 매우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지도 중심부에 진안현 동헌이 자리 잡고 있으며 좌우에 객사와 향교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진안 고을의 공간구조를 이어받아 옛 동헌자리에 현재 군청이 들어섰다. 진산은 고을의 입지 및 동헌이나 객사의 공간배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1997년 진안읍 우회도로를 내면서 우화산 맥이 잘렸고 강경골재도 심하게 맥이 훼손되었다. 특히 강경골재는 금남 호남 정맥인 영취산(장안산)과 부귀산, 운장산을 연결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산줄기인데, 그 맥이 험상궂게 잘리고 말았던 것이다. 다행이 최근에 맥을 이어주는 다리를 건설되어 맥을 이어준 비보(裨補)다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산천의 지맥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몽염 장군 이야기가 전한다. 진시황제가 죽고 후계문제가 거론되고 있을 때 당대의 명장 몽염이 진시황의 시종 조고(趙高)의 모략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되자  몽염 장군의 마지막 독백이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죽을 죄를 지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만리장성 쌓는 일을 감독하면서 수많은 산룡지맥(山龍之脈)을 끊어 국토에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하다." 대지의 기맥을 끊으므로 몽염은 그의 국토에 위란을 초래했다고 자각한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지나지 않아 진나라는 멸망했다.(史記 몽염列傳)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진산의 훼손을 방지하거나 풍수적인 보전을 논의 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진산은 마음을 써 나무를 가꾸어야 하는데 한 시대의 폐정 때문에 그대로 개간하여 경작하고 또는 집을 짓곤 하니 본래대로 환원하여 상서로운 터전을 중히 여기게 하기 바랍니다."(중종실록 20년 6월 20일) "전주는 지형의 남쪽이 낮고 북쪽이 허하여 고을이 기운이 분산되기 때문에 진산 이름을 건지산(乾止山)이라 했다"(중종실록 20년 8월 1일)

민선 6기 이항로 군수는 진안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 주산인 부귀산을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진산은 개발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선인들의 지혜가 묻어나고 있다. 진안 고을을 지키는 진산, 부귀산을 개발함에는 이런 점도 심사숙고해야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e-진안에(2014.8.25)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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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북 전주고에서 한국사를 담당하는 교사입니다. 저는 대학때 부터 지금까지 민속과 풍수에 관심을 갖고 전북지역 마을 곳 곳을 답사하고 틈틈히 내용을 정히라여 97년에는<우리얼굴>이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전북지역의문화지인 <전북 문화저널> 편집위원을 몇년간 활동한 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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