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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병이 폭행으로 사망한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포병부대에서 12일 부대원들이 내부반에 모여 인권교육을 받고 있다. 이날 병영문화혁신위원들이 이 부대를 방문했다.
▲ 인권교육 받는 군인들 윤일병이 폭행으로 사망한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포병부대에서 12일 부대원들이 내부반에 모여 인권교육을 받고 있다. 이날 병영문화혁신위원들이 이 부대를 방문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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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지난 12일 윤 일병이 집단구타로 숨진 경기도 연천군 28사단의 한 부대에서 부대원들이 내무반에 모여 인권교육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경망스럽게도 웃음보가 터졌다. 인권교육이랍시고 침상 위에 줄 맞춰 앉아 부동자세로 동영상 시청하는 모습이 어색하다 못해 우스꽝스러웠다.

군 복무 시절 고참병들마다 입버릇처럼 '강산이 몇 번을 변해도 군대는 안 변한다'고 하더니만, 그 말이 전역한 지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유효함을 알겠다. 병영문화혁신위원들이 찾기로 한 날이었으니, 방문 직전 부대 안팎의 '호들갑'이 어땠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훈련하다 말고 내무반에 뛰어 들어와 바닥과 침상, 캐비닛을 윤이 나도록 쓸고 닦았을 것이고, 혹 있을지도 모르는 위원들의 즉흥 질문에 대비해 '모범 답변'도 부랴부랴 준비했을 것이다.

사진 속 부대원 모두는 비록 뒷모습이지만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카메라가 자리를 잡았으니 곧 위원들이 내무반에 들어올 차례다. 자연스럽게 쉬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려는 듯 속옷 차림도 더러 눈에 띄지만, '각 잡힌' 모포와 옷가지, 그리고 끝선이 맞춰진 가지런한 실내화를 통해 잔뜩 긴장된 부대원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군기'다.

부대의 '손님맞이'라고 보면 딱히 문제 삼을 건 아니지만, 이렇듯 바짝 '군기가 든' 모습과 인권교육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마냥 무척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 난데없는 '쇼'에 가장 괴로워했을 이는 누구일까. 정기적인 '소원수리'가 내무반 분위기를 되레 험악하게 만들었던 과거 경험으로 미루어, 쓸고 닦고 '모범 답변'까지 외워야 하는, 바로 일등병·이등병 들 아니었을까.

간부들과 고참병들이야 잠깐 조마조마하고 말지만, 위원들이 가고나면 더욱 군기 든 모습을 보여야 하는 후임들은 그야말로 하루 종일 가시방석이다. 입식 문화에 길들여진 탓에 요즘 젊은이들 책상다리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텐데, 발이 저려오는 저 순간에 TV 소리가 과연 그들의 귀에 들어올까. 후임들은 그렇다 치고, '이게 뭔 개고생이냐'는 고참병들의 푸념이 등 너머로 들리는 듯하다. 평상시 같으면 책상다리는커녕 드러누워 봤을 테니 말이다.

윤 일병 사건 이후 사회는 물론 군대 내에서조차 병영문화 혁신을 외치고 있다. 국방부는 소원수리 과정에서의 내부 고발자에 대해 포상하겠다거나, 인권교육을 담당할 교관을 확충하겠다는, '되지도 않을' 대책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사회에서조차 내부 고발자에 대해 낙인 찍고 백안시하는 판에, 폐쇄적인 군대에서 보호하고 포상까지 하겠다는 건 허언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교관이 수백 수천 늘어난다고 해도 저렇듯 '보여주기식' 인권교육이라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단언컨대, 엄포 그 이상의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문제는 전혀 실효성이 없는 이런 대안이 지금의 군대 지휘관들이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점이다. 군대 내 사망 사고는 끊이지 않고 일어나지만, 그에 대한 대책은 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윤 일병 사건이 군대 바꾼다? 그런 생각 아무도 안 해"

군대 내 사고가 터지고(정확히는 외부로 알려지면), 보신을 위한 서류를 주섬주섬 챙기는 한편, 재발 방지를 위한 재탕 삼탕의 구태의연한 대책을 발표한다. 그러다 들끓던 여론이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유야무야됐다.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아무리 죽어나가도, 남과 북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이상, 군대는 '메스'를 함부로 들이댈 수 없는 '성역'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군대 변할 거라는 이 아무도 없다."

이 와중에 휴가를 나온 '행정병' 제자의 전언이다. 주간에는 간부들과, 야간에는 사병들과 주로 생활하는 보직인 탓에 요즘 군대 내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안단다. 간부든 사병이든, 이번 윤 일병 사건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 사건으로 군대가 변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도 없다고 했다. 그저 잠깐 '번거롭게 하다' 스쳐지나갈 일로 여긴다는 거다.

간부들은 그간 소홀해온 관심 사병 상담일지를 부랴부랴 챙기고, 얼마 동안은 내무반에 '훈풍'이 분다. 후임들에겐 잠깐 동안의 '호사'지만, 외려 하나같이 태풍 전야처럼 여겨 더욱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가 속한 부대도 휴가 나오기 며칠 전 인권교육을 받았는데, 상급 부대 보고용일 뿐이어서 뭘 봤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군대에서 하는 일이 다 그런 것 아니겠냐"면서,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기 부대만의 문제는 아닐 거라고 했다. 필경 "우리 군대가 나라를 지키기는커녕 나라의 큰 근심거리가 될 것"이라는 '예언'도 덧붙였다. 폐쇄된 공간에서 20세기 낡은 인식과 규범으로 21세기 젊은이들을 통제하려 드니 끊이지 않고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고,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이런 군대 분위기로 전쟁이 나면 백전백패일 걸요. 동기 사이의 뒷담화일지언정, 전쟁 나면 고참병부터 쏴버리겠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어요. 간부들은 부대 관리를 위해 고참병을 활용하고, 고참병들은 호가호위하며 내무반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에서 '군기'란 '절대 복종'과 동의어죠. 사병들에겐 준장, 소장, 중장, 대장, 그 위에 '병장'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잖아요.

더욱 큰 문제는 같은 내무반에서 먹고 자는 사이지만, 남 일엔 아예 신경을 끄고 생활한다는 점이에요. 마치 소 닭 보듯이. 얼핏 보면 사자 한 마리에 먹잇감인 가젤 수십 마리가 모여 사는 듯한 느낌이에요. 심지어는 입대 동기가 고참병으로부터 마구 두들겨 맞고 있어도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있어요. 괜히 끼어들었다간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서죠.

계급에 따른 위계보다 훨씬 더 무서운 거죠. 윤 일병 사건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벌어진 일 아니겠어요? 다들 눈치껏 '왕고(최고참)' 말을 들으며 무사히 전역하는 게 상수라고 말해요. 자신도 머지않아 '왕고'가 될 테니 그때 본전을 찾자는 심산으로 근근이 버티는 거죠. 군대에선 '짬밥'이 '힘'이고, '힘'이 '정의'잖아요. '전우애'라는 건 오래된 전쟁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에요. 이런 상태에서 무슨 전쟁을 치러요?"

그는 시종 무덤덤했다. 군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자위하면서, 윤 일병 사건이 자신의 부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그저 윤 일병이 가엾다고만 할 뿐, 군대 시스템과 폭력적 병영문화에 대한 분노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와 같이 일하는 간부들도 뉴스를 접하자마자 사건이 일어난 부대의 간부들을 나무라기는커녕 '참 안 됐다'고, '재수 없이 걸렸다'고 동병상련(?)의 마음을 전하더란다.

'병역면제'만이 살길... 씁쓸한 대한민국 군대 

지난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28사단 폭행 사망 희생자 윤일병과 군 사망 희생자 추모제에서 참석한 유가족들이 군에서 희생 된 자녀들의 영정을 들고 서 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28사단 폭행 사망 희생자 윤일병과 군 사망 희생자 추모제에서 참석한 유가족들이 군에서 희생 된 자녀들의 영정을 들고 서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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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건, '그런 꼴 보기 싫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병역을 면제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뭇 태연한 모습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돈 없고 빽 없어서' 군대에 끌려왔다면 마땅히 감수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게 윤 일병 사건을 통해 자신이 새삼 깨닫게 된 '진리'란다. 21세기 대한민국 군대에서 살아가는 20대 초반 청춘의 슬픈 자화상이다.

백년하청이라면서도, 또 막상 군대 내에선 입 벙긋 할 수 없는 이야기라면서도, 폭력적인 병영문화를 진정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대안은 하나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비뚤어진 군대 문화는 바로 지휘관의 의식 문제라는 것이다. 다만, 정부가 말하는 방식으로는 애초 병영문화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고작 1년 남짓 근무한 사병이지만, 진단과 대안은 명료했다.

"정부와 일부 언론에서는 군 지휘관들의 인권 의식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며 근본적인 대책이랍시고 떠들어대더군요. 언뜻 근사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그건 애초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보다는 인문학적 소양과 제대로 된 인권 의식을 갖춘 인사를 군 지휘관으로 임명하는 게 정답이겠죠. 아무렴 대한민국 군대 내에 그런 분들이 없겠어요?"

20여 년 전 내가 군 생활을 시작할 무렵, 간부와 고참병들로부터 정말이지 하루에도 골백 번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전설처럼 회자되던 '쌍팔년도' 군대 이야기가 그것이다. 군대 생활이 너무 편해졌다거나, 요즘 입대하는 신병들 군기가 빠졌다는 게 결론인데, 최근 군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엽기적인 사고 소식을 듣노라면, 요즘이야말로 그 '쌍팔년도'가 아닌가 싶다.

휴가 복귀를 며칠 앞둔 그가 문자를 보내왔다. 요즘 들어 소화도 잘 안 되고, 밤새 잠도 못 이룬다는 거다. 약도 없는, 전형적인 '휴가 복귀 증후군'이다. 짤막한 답변을 보냈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의 시계는 간다'고. 21세기에도, 사제지간에도,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는 여전히 낡을 대로 낡은 '쌍팔년도 언어'로 소통된다. '강산이 변해도 군대는 안 변하는' 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태그:#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 #폭력적인 병영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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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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