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적>을 정점으로 한 올 여름 극장가 탐방기
영화 시작 전부터 불안했던 마음이 있었다. 과연 손예진이 액션 영화에 어울릴까? 김남길이 코믹 쟝르에 적응할까? 바로 이 두 가지이었다. 결론은?

영화를 보는 내내 웃느라 모든 것을 잊었다. 여성으로서 몸을 사리지 않는 검투, 와이어 액션, 산적 두령 김남길과의 코믹애정신, 그리고 소마(이경영)와의 결투 장면에서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매섭게 상대방의 눈을 응시한다. 거기다가 그칠 줄 모르는 입담의 유해진은 어느 장르의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놓아도 통하는 재담가 임을 또 한번 입증했다.

나름대로 올 여름 흥행하는 한국 영화들의 대작을 비교해 보며 장단점 혹은 특징을 짚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적어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장소를 기준으로 보자면, 사극에 <군도>, <명량>, <해적>을 꼽을 수 있고, 바다가 배경인 영화로 구분하자면 <명량>, <해적>, <해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김한민 감독의 <명량>이 개봉 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빨아들이는 기염을 통했다.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부담감을 떨치며 세계 해전 사에 손꼽히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재연한 영화는 대한민국의 모든 스크린을 점령하며 타 영화의 개봉의지 마저 꺾어버릴 정도의 강력한 회오리를 몰고 왔다. 개봉일 최다 관객, 최단 시간 내 100만 관객을 모으더니 한국 영화 최초로 12일 만에 1000만 명을 스크린 앞으로 데려 왔다.

영화 <명량>의 성공요인으로는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이정현 같은 연기신들이 포진한 것이다. 연기에서 만큼은 자타가 공인하는 배우들의 열연이 관객의 호기심을 스크린으로 불러 모았을 뿐더러, 언제나 대일관계에서 만큼은 굴욕적 외교에 실망한 국민들이 왜적 선을 향해 빗발치는 이순신의 천자총통과 울돌목의 소용돌이 속에서 속절없이 파괴되고 마는 왜적 선(안택선)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세월호나 윤일병 의문사처럼 국민의 안전과 자존감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이순신의 탁월한 리더십과 엄격한 통솔력, 솔선수범, 살신성인의 자세에 매료된 것이 아닐까?

이는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인적, 외교적, 안보적 해답과 대국민적 해방구를 몸소 보았음이다. 또한 가족단위의 관람이 많았다는 것 또한 주목할 일이다. 역사로서만 알았던 사건이 스크린으로 옮겨지니, 이를 기다려 온 많은 관객들은 이제 활자에서 벗어나 영상으로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작용했을 것이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혹은 의무감 등이 이 영화에 발길을 가게 하는 데 일조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개봉 첫 주 1200여 관에서 이후 1500여 관을 초과하는 배급전쟁의 승자로서 극장가를 아무리 떠돌아도 <명량> 아니면 볼 영화가 없다는 얘기가 틀린 말이 아니다. 대형 제작사와 투자사, 배급사간의 역학관계는 손익배분에 근원이 있기에 전국에 포진한 멀티 플렉스 관은 대기업의 돈과 입김이 들어간 영화의 점유물이 될 수 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지만 앞으로도 작금의 배급 상황이 지속된다면, 올 해 영화 관람객이 1억 명을 돌파한다 하더라도 천민자본주의 상업성에 눈물 흘릴 영화인들이 한 둘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영화의 완성도나 자체 비평과는 별도로 한국 개봉 영화중 최다 관객 수를 기록했던 <아바타>를 넘기 위해, "신에게는 아직도 배급사가 있습니다"라는 이순신의 말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일부 역사 고증에 오류가 있고, 후반 해상 전투 신을 극대화하기 위한 극 초반의 늘어지는 연출에서는 관객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또한 난중일기에서 볼 수 있는 인간 이순신으로서의 고뇌라든지 장수, 병졸들을 규합하며 전투를 준비하고 전열을 다듬는 장면들은 깊이 없이 스쳐간다.

게다가 조연들의 이야기가 필요이상으로 새어 나가 처음과 끝의 연결고리에 문제가 있는 듯 한 느낌을 받는 것은 뭘까? 조선 판옥선과 일본 안택선의 해상 전투장면은 많은 고증을 거쳐 탄생했지만, 백병전보다 함포 전을 주로 사용하며 진법을 통한 전투를 주로 했던 이순신 장군의 전투방식이 조금은 색이 바랜 채 관객에게 선 보이지 않았나 싶다.

왼쪽부터 <명량>, <군도>, <해적> 올 여름 퓨전 사극 삼총사. <명량>의 최민식이냐, <군도>의 하정우와 강동원이냐, 아님 <해적>의 손예진과 김남길이냐? 과연 승자는?

▲ 왼쪽부터 <명량>, <군도>, <해적> 올 여름 퓨전 사극 삼총사. <명량>의 최민식이냐, <군도>의 하정우와 강동원이냐, 아님 <해적>의 손예진과 김남길이냐? 과연 승자는? ⓒ CJ 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군도>의 배급사인 미디어 플렉스 역시 개봉 초반 최단일 100만 관객의 기염을 토하며 연일 기사를 새로 썼지만, 일주일 후 영화 <명량>의 개봉에 의해 모든 것이 난타당한 상황이다. 하정우의 돌무치도 강동원의 조윤도 제대로 된 '민란의 시대'를 보여주지 못하고 대형 제작사와 배급사에 의해 주저앉았다.

조선 후기 철종시대에 벌어진 관리들의 매관매직과 강제 토지박탈, 구휼미의 악용, 명분 없이 과세되는 세금 등은 진주민란을 시작으로 전국적 백성들의  봉기로 이어진다. 이 중요한 시대적 배경에 탐관오리를 토벌하고 그 재산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 '지리산 추설'과 서얼로서 신분의 벽에 갇힌 채 악마가 되어 가는 '조윤', 그리고 '허기진 배와 눈물로 범벅이 된 우리 백성들!'

감독이 영화의 주제를 제대로 잡았다 싶었지만, 조윤의 고이접어 나빌레라는 듯 한 칼사위와 돌무치의 무쇠 쌍칼은 그들만의 화풀이와 넉살에 그치며 진정으로 민초들의 고통과 욕망들을 서술하지 못한 채 석양을 등지고 들판을 달릴 뿐이다. 그리고 배경음악으로는 자유로운 미 서부 총잡이들을 필두로 서부개척이란 프론티어 정신과 낭만을 상징하는 컨트리 웨스턴. 조선판 서부활극이라는 말에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순 있으나 부제인 '민란의 시대'는 붙이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었지 라는 생각이 든다.

<해적> 은 '조니 뎁'의 대명사가 된 <캐리비안의 해적>을 '여말 선초(麗末鮮初)'로 자리를 옮겨 조선판 '벽란도의 해적'이라고 불러야 할까? 명나라가 내준 국새를 고래가 삼켜버린 괴이한 일이 일어나고, 이를 찾기 위한 해적과 바다로 나선 산적들, 그리고 관군, 또 하나의 해적(소마). 잡생각 없이 웃고 즐기기에 이만한 영화는 없을 듯하다.

손예진이 보여준 액션신은, 영화 감독 '뤽 베송'의 부인이며 <레지던트 이블>시리즈에서 보여준  밀라요보비치의 여전사보다는, 장쯔이나 리빙빙, 유역비, 저우쉰 등의 중국 여배우들이 보여주는 무협 액션씬에 가깝다. 남성들은 여성 배우들에게 강하고 억센, 전투적인 액션을 기대하지 않는다. 단지 가녀리고 청순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배우들이 긴 머리를 휘날려 가며 바람을 타고 하늘을 누비고 유엽도를 휘두르는 모습에 보호본능을 느낀다. 혹은 내 여자로 간직하고 싶은, 여성으로서의 섹슈얼리즘에 바탕을 둔 기대감일 뿐이다.

과거 중국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 티 없이 맑고 예쁜 눈과 수줍은 웃음기로 많은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장쯔이를 기억할 것이다. 그녀는 이후 무협 영화 <연인>과 <와호장룡> 등에서 외유내강을 정점으로 한 여성 무사의 전형으로 창조되었다. 유역비 또한 장기중 감독의 무협 드라마 '신조협려'를 통해 중국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일본과 중화권 전체에 유역비 신드롬을 만들 정도 였다. 제2의 왕조현으로 불리울만큼 그녀의 액션신은 검법과 내공의 힘이 춤과 구분되기 힘들 정도로 미(美)적 요소가 강조되어 있다.

난 <해적>에서 아이라인을 살짝 칠하고, 가느다란 줄에 기대어 배 위를 날아다니고 뛰어난 경공을 이용한 추격전을 보여준 손예진을 보았다. 제발 앞으로도 타 영화에서 장쯔이나 유역비같은, 그러나 조금 더 코믹스러우면서 거침없는 액션을 보여줄 그녀를 기대해 본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화 삼총사, <명량>, <해적>, <해무>

<명량>과 <해적>은 위에서 언급했으니 여기서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화중에 <해무>를 잠깐 다뤄보고자 한다.

봉준호감독 스타일을 보면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선이 굵고 묵직한 주제를 던져 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속국의 국민들이 느끼는 실체에 대해 다룬 <괴물>,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살인 사건의 실화 <살인의 추억>, 가까운 미래가 또 다른 계급사회로 재편되어 하부계급의 사람들은 상부계급의 먹거리와 장난감에 불과함을 비관적으로 그려낸 <설국열차>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해무> 만선의 기쁨을 기대하고 바다로 나간 뱃사람들의 이야기. 봉준호 식의 묵직한 주제와 김윤석, 김상호, 문성근, 이희준, 박유천 등의 열연이 어떤 시너지를 가져올 지 기대된다.

▲ 봉준호 감독의 영화 <해무> 만선의 기쁨을 기대하고 바다로 나간 뱃사람들의 이야기. 봉준호 식의 묵직한 주제와 김윤석, 김상호, 문성근, 이희준, 박유천 등의 열연이 어떤 시너지를 가져올 지 기대된다. ⓒ NEW

<해무>란 제목이 그러하듯 주인공들은 생계를 위해 안개 자욱한 망망대해로 뛰어든 평범한 사람들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들 앞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겪어야 하는 갈등과 공포를 보여주며, 우리와 같은 소시민들이 가진 상처에 대해 전혀 배려하지 않은 채 그 생채기를 거친 모래알로 쓸어내는 듯 하다. 김윤석, 문성근, 이희준, 김상호 등 스타 배우들의 집합체로 배에 몸을 실은 영화 <해무>는 어부들이 만선을 기대하며 바다로 나갔건만, 거기서  부딪치게 되는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을 이야기 한다.

생선 비린내 나는 이 조그만 배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실존에 대해 고뇌하고, 현실 속에서 부딪히는 갈등에 괴로워 하며 점점 나락으로 빠져든다. 과연 그들은 이 넓디 넓은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선택할까?

영화는 시대적 배경이 무엇이냐에 따라 어느 정도의 주제와 그림이 그려진다. 또한 배경으로 사용하는 장면이 어디인가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스토리와 미쟝셴에 한계를 가진다.

올 여름 극장가를 강타한 첫 번째 시대는, 백성들이 불안에 떨었던 조선 초와 임진왜란, 정유재란 그리고 조선 말 '민란의 시대'이다. 한마디로 '혼돈의 시대'인 것이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영화가 고집하는 장소는 신체의 오감이 지극히 제한적 사고를 만들어 내는 바다 위 배 한 척이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밧줄 하나 혹은 칼 한 자루에 의지해 생명을 부지해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 동승한 사람들과 치열한 경쟁 및 사투를 불사해야 하는 나무 배 한 척이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거기에 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나, 혹은 우리에 대해 절망한다.

"난 살아남고 싶다, 그게 도적이든 해적이든 민초들이든"
"그들은 열망한다. 최소한 사람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리고 기다린다" 최민식이 분한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이순신을, 손예진과 김남길같은 인간미 넘치는 해적과 산적의 두령을, 백정으로서 도적의 수괴가 되는 하정우처럼 단순무식하고도 매력이 넘치는 지도자를... 이들 영화는 우리 모두가 혼탁한 시대에 살고 있으며 믿고 따를 만한 리더가 있어야 함을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P.S

역시 <명량>은 교과서를 펼쳐 조금 지루한 이순신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 그 자체일 테고, <군도>는 강동원의 칼춤만 보다가 백성들의 아픔은 돌보지 못한 채 해가 지고, <해적>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기분 좋게 나올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해무>는 인간의 실존과 분노, 인간성에 대한 크기를 그리는 작품이니 이 세 영화를 한 선상에 놓고 평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올여름은 퓨전 사극 3편,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화 3편, 그러나 합치면 4편. 9월까지 관람을 이어질 텐데 과연 관객들에게 가장 인정을 받는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하반기에도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줄을 서 있다. 한가위를 겨냥한 가을과 겨울에 우리들 곁으로 찾아올 영화는 어떤 것들것일지.

명량 해적 군도 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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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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