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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는 산 옹이가 있고 죽은 옹이가 있다. 옹이만 빠져 버리는 것은 죽은 옹이다.
▲ 옹이 옹이는 산 옹이가 있고 죽은 옹이가 있다. 옹이만 빠져 버리는 것은 죽은 옹이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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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이 온몸을 적신다. 작업복 상의도 젖고, 하의도 젖는다. 잠깐 쉬려고 앉은 나무도 흥건하다. 습도 높고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는 머리가 핑 도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더위를 이겨내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일에 열중하면 체감하는 시간이 짧다는 것 정도. 그렇게 견뎌내는 것밖에.

한옥 일판의 7, 8월은 무더위와의 한판이다. 특히 지붕 작업을 할 때는 바닥에 깐 개판에서 나오는 복사열 때문에 더 덮다. 외부 활동을 자제하라는 일기예보가 있지만, 어찌하랴. 그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집을 짓는 게 목수가 하는 일인데. 덮고, 힘들다고 빨간 날마다 맘 편하게 쉴 수도 없다.

장마 기간에는 근무 일수가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올해는 마른장마라고 하지만 지난 주말에도 역시나 함께 일하는 열 세 명 목수들이 약속이나 한 듯, 아니 주말 약속 따위 없다는 듯 모두 출근했다.

전생의 집 나간 마누라를 만나는 시간?

대부분의 건설 노동이 그렇듯 한옥 목수는 남자들의 세계다. 한옥 학교에서는 여자 수강생이 몇 명 있었지만, 실제 시공 현장으로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한옥 일판에 처음 나갔을 때에는 남자들만의 세계, 특히 평생을 한옥 일만 하고 살아온 목수들이 많았다. 현장 나오고 얼마 안되서 결혼 안 한 목수가 많다는 이야기를 썼었는데, 편집부에서 무시무시한 제목을 지어줬다. (관련기사: "한옥 목수되면 총각 귀신 된다"​)

그 당시 1년 가까이 함께 일했던 오야지는 껌 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껌 종이까지 까주며 껌을 주는 순간이 있었는데, 끌로 수장 구멍을 파내는 작업을 할 때였다. 이 상하지 말라고 주는 껌이었고, 이 악물고 망치질하라고 주는 껌이었다.

끌질은 나무의 종류에 따라, 내리치는 망치의 힘에 따라, 끌이 갈린 정도에 따라 끌이 들어가는 깊이가 다르다. 그러나 무엇보다 옹이를 만나면 정말로 이를 악다물고 내리쳐야 한다. 나무의 '옹이진 곳'은 그만큼 단단하고, 단단한 만큼 더 세게 내리쳐야 한다.

현장에 나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선배 목수가 수장구멍에 걸쳐있는 옹이는 전생의 집 나간 마누라라고 생각하고 치라고 했다. 그저 한 번 웃고 마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그 이후로 수없이 많은 전생의 마누라를 만나 망치를 휘두르고 끌로 찍어야 했다. 그것도 이를 악물고.

'한옥 목수되면 총각 귀신 된다'는 이야기를 할 때라면 남자들만의 세계인 목수 세계의 일면이라고 썼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목수들이 가정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가정적인 목수도 있고, 가부장적인 목수도 있고, 내성적인 목수도 있고, 외향적인 목수도 있다. 남자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특별히 마초적인 집단이 아니다.

사랑했던 여인에게 영원의 고통을 주는 목수?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조각상, 전설이 사실이라면 그녀에게 잘 헤어졌다고 말하리라. 그런 마음을 가진 남자에게 기대할 것 없다고.
▲ 배신의 댓가?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조각상, 전설이 사실이라면 그녀에게 잘 헤어졌다고 말하리라. 그런 마음을 가진 남자에게 기대할 것 없다고.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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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있는 전등사에 가면 '재미있는' 조각상을 볼 수 있다. 대웅전 추녀를 벌서듯 떠받치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상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절을 짓던 목수의 사랑을 배신한 여인에게 벌을 주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추녀를 받치게 했다는 전설까지 전해진다. 학창 시절 이 조각상을 봤을 때는 배신에 대한 통쾌한 복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수가 되고 얼마 안됐을 때는 여인의 배신에 공감했다.

직업의 특성상 집에 거의 못 가는 목수, 둘 사이는 틀어질 수밖에 없고, 여인은 목수라는 직업에 반했지만, 다시 그 직업의 특성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상상했었다. 지금 다시 본다면 목수가 그런 짓을 했을리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가부장적인 정려문화의 변형이라고, 불교식 열녀문이라고 함께 간 이에게 말해줄 것이다. 개인적인 원한을 부처님 집에 투영해서 짓는 목수는 없다고 말해 줄 것이다.

히다리 보쿠젠 혹은 부부목수

목수생활 40년 넘게 한 K 목수에게 들은 이야기다.

일본 전국시대, 쇼군의 명령으로 열린 일본제일목수대회, 일본 최고의 목수로 꼽히는 '히다리 보쿠젠(?)'을 이겨보려는 전국의 유명한 목수들이 참여했다.

문제는 나무물고기 만들기. 시간이 지나고 도전 목수들의 나무 물고기들이 공개되었다. 그것들은 크고 화려하고 정교하고 채색까지 되어 있었다. 이 이상 잘 만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 경기장에 있던 모든이의 시선이 히다리 보쿠젠에게로 쏠렸다.

아, 그런데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평범하다 못해 투박스러워 보이는 은어였다. 심지어는 채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명성을 익히 아는 사람들조차 당황했고, 그것이 비웃음으로 넘어가기 직전. 경기장 한쪽에 있던 작은 연못에 은어가 던져졌고, 마치 살아있었던 것처럼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의 반전은 그다음에 나온다.

'히다리 보쿠젠'은 외팔이 목수였다. 아니 한쪽 팔로 어떻게 목수 일을? 목수일 중 어떤 작업은 양손이 꼭 필요한 게 있다. 예를 들면 먹줄튀기기 같은 것. 그럴 경우 언제나 함께였던 그의 아내가 먹줄을 튀겼다. '히다리 보쿠젠'은 '히다리 부부 목수'가 아니었을까?

만약 전등사 목수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가 사랑했던 여인에게 영원의 벌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히다리 부부 목수처럼 함께 일하고 사랑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같은 고민을 하는 까마득한 후배 목수에게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까마득한 후배 목수인 나는 더 이상 '전생의 마누라'는 보고 싶지 않다. 현생의 마누라와 함께 일하고 사랑하며 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gertie 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한옥목수, #한옥, #전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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