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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위의 평화-노무현 시대 통일외교안보 비망록>의 표지
 <칼날위의 평화-노무현 시대 통일외교안보 비망록>의 표지
ⓒ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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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온 지 두 달이 되는 지금 독후감을 쓰는 것이 좀 늦은 감이 든다.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고 난 후, 내가 아는 분들에게 <칼날 위의 평화>를 읽어보라고 권유했다. 그러던 중 어느 한 분이 서평을 하나 써보라는 얘기를 내게 했다.

미국의 아시아회귀정책과 중국의 신형대국론 사이에서 한국이 나가야할 바에 대해 이 책에서 얻어야할 교훈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시진핑 주석의 방한 이후 한국의 균형외교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노무현시대의 외교안보정책을 검토해보는 것은 무척 시의적절한 일이라고 하겠다. 

이종석 박사는 2003년 초부터 약 3년간 국가안전보장회(NSC) 사무처 차장을 역임한 후 2006년 말 통일부장관으로 퇴임했다. 이 박사는 이 책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전략적 구상과 정책 구현을 돕기 위해 외교 안보 정책의 실질적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그의 경험들을  아주 자세하고 알기 쉽게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주한미군과 관련된 여러가지 난제들의 협상, 조율, 타결 과정과 북핵문제에 대한 한미간의 시각 차이에서 오는 정책 갈등의 조율 등 한미간의 현안들을 아주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서평을 쓰는 나는 2005년 6월 말까지 미국무성에서 통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쪽에서 일어난 일들은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정부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당시 언론에 보도되는 것 이상으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칼날 위의 평화>(총 576 쪽)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저자는 "첫째 노무현 정부의 통일 외교 안보분야에서 성공과 실패, 성취와 시행착오, 긍지와 아쉬움, 또는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들을 그대로 남기고, 둘째로 노무현을 사랑하는 많은 이에게 그가 자랑스러운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힌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우선 저자의 이런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칼날 위의 평화>는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의 역사적 기록이며, 연구자들에게 일차적 자료로 그리고 정책입안자들에게는 유용한 참고 또는 타산지석이 될 수 있는 자료임에 틀림이 없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관련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필독서다.    

이 책은 대략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첫째는  결정된 외교안보 정책과 전략의 핵심적 내용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그리고  그런 정책들이 직면했던 난관들을 적나라하게 적고 있다. 둘째는 참여정부 내의 정책수립이행 과정에서 대통령의 철학을 이해하는 참신한 최측근 참모와 전통적인 대미의존 의식에 오랫동안 젖어온 기성 관료들과 보수세력간의 충돌과 극복의 과정을  읽을 수 있다. 

셋째, 저자는 자신과 의견이 달랐거나 자신의 정책을 반대했던 이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언급을 자제하면서, 반대자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심리적 분석을 합리적으로 묘사해 나간다.  이 같은  예리한 분석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못마땅해 하던 미국의 입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아낌없이 드러난다.

이 책에 대한 총평은 이렇다. 이종석 전 차장은 노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파악하고, '평화, 자주, 균형'의 가치를 바탕으로, 당장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해소하고, 북핵문제를 해결하여 북과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정책을 수립 이행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대통령과 저자는 특히 초기에 정부내의 외교부와 국방부 등 외교안보부처들과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등 보수세력의 완강한 반대를 이겨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중요한 정책상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은 이종석 차장의 손을 들어 준다. 아니 노 대통령은 그때마다 자기 손을 들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참여정부 출범이후, NSC의 기능이 인정되고, 위상이 서기까지의 첫 1년간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대통령은 직접 교통정리를 하고, 모든 주요 결정을 신중하게 내린다.

이것은 한국이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편 노무현과 이종석이 새롭고 과감하게 상자밖에서 생각(Think out of the box)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주역이 취임 전에 미국과 별로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생각은 종종 새로운 사람에게서 나온다.  

노 대통령은 통일을 중요시하는 민족주의자라기 보다 평화를 우선시하는 하는 평화주의자로서, 취임 초 한반도전쟁 방지를 위한 대미전략을 수립한다. 노 대통령의 전쟁방지에 대한 의지는 2003년 5월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이 나올 때, 협상끝에 군사행동을 뜻하는 '탁상의 모든 선택'을 '추가적인 조치들'로 바꾼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 

참여정부 시작부터 한꺼번에 제기된 미국 발 안보현안들은 이종석 차장이 이끄는 NSC 사무처에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용산기지이전과 주한미군의 재배치, 미군병력 감축, 이라크 파병 요청, 전략적유연성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터진다. 이 책은 노무현 정부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고도의 전략과 대응책으로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저자는 노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그가 "통일보다 평화를 더 중요시 하는 생각"에 변화가 있었는지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노 대통령의 자주 사상의 연장선인 자주국방, 전시작전권 회수 그리고 개년계획 5029 문제가 제기된다. 자주국방은 과거 박정희 정부에서도, 작전권 회수는 노태우 대통령도 주창했고, 김영삼 정부때는 보수 언론들로 지지했던 사안이다.

쿠데타를 일으키고, 미국과 그리 가깝지 않았던 박정희 대통령이나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노태우 대통령에게 '반미의 딱지'는 붙지 않았다. 불행한 역사 때문에 친미적일 수밖에 없는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사사건건 노 대통령에게 "반미친북", "동맹이탈" 등의 딱지를 붙이며 매도한다.  

노무현이 때로는 반미적으로 들리는 발언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의 진정한 의도는 어떤면에서 너무 친미적으로 편향되어 있는 보수사회와 자주적 균형을 이루려는 안간힘으로 비춰진다. 저자는 노무현은 "반미도 친미도 아니며", "철저한 실용주의자, 상식을 바탕으로 하는 "냉철한 합리주의자"였음을 많은 사례를 들면서 설명한다.

노 대통령은 미국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도 싫은 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북한은 2005년 1월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이 있은 지 한 달 만에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다. 이때 노 대통령은 분노했고, 그때까지의 대북 기조를 바꿀 것인가를 심각히 고려하는 과정에서 참모인 이 차장이 대통령과 주고 받은 논쟁의 비화도 307 – 309 쪽에서 녹취록으로 읽을 수 있다. 이때 저자는 사표를 작성한다. 대통령이 "북한의 정책을 바꿀 수 있다면" 이 차장의 경질도 불사하겠다는 발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차장이 바뀐다 해도, 북한이 달라질 일은 아니었다. 

한편 부단한 보수시각의 비판 속에서, "자주국방"을 "협력적 자주국방" 그리고 "균형적외교"를 "균형적 실무외교"로  '구차하게' 표현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자주국방과 작전권 회수는 그 명분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저자는 균형외교란 "대외관계에서 우리가 동시에 실현해 나갈 대립되거나 상이한 목표와 요구들간의 균형을 취하고,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동북아의 "세력균형자의 역할론" 제기로 야기된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을 저자는 후회한다. 그는 "균형자론은 당장 실현하는 개념이라기 보다 앞으로 추구해야 할 외교안보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한 것"이라 주장한다. 균형의 대상은 미국이 아니며, 예상할 수 있었던 "중일간의 갈등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이것도 보수들에게는 "반미"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에 의한 전쟁발발 가능성을 진화시킨 다음, 한반도 평화의 핵심인 북핵문제 해결에 외교력을 집중한다. <칼날 위의 평화>는 대미협력에서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패권주의, 약속불이행" 등 네오콘과 불통때문에 겪어야만 했던 작은 나라 한국의 서러운 사례들을 여과없이 기술한다. 한미관계의 비대칭적 구조 속에서 노 대통령은 말한다. "내가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고치겠다… 내 시대에 내가 노력하다가 한미관계가 깨지면 다음 대통령은 보다 균형된 한미관계를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런한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은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 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 저자는 9·19 성명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배출과 한중관계 개선과 함께, 균형외교의 성과라고 자신한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방북때 김정일위원장을 만나 중대제안을 제시하고, 한국이 중미양국을 비롯한 6자 참석국들과의 전방위적 협상과 절충을 통해서 일궈낸 9·19 성명은 하루 만에 깨지고 만다.

6자회담에서 1대 5로 몰려 마지 못해 합의했던 미국의 네오콘들이 본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국무부 관활을 벗어난 BDA 금융세탁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저자는 부시나 백악관은 금융제제 문제를 정치적으로 일찌감치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음을 개탄한다. 결국 6자회담은 2007년 2·13합의 등을 도출해 내지만 북미간의 검증절차에 대한 이견으로 다시 깨지고, 지금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저자는 부시를 설득하기란 "쇠귀에 경읽기"에 비유한다. 노무현은 부시에게 따지기 시작한다. 2005년 경주 한미정상회담에서 BDA 문제를 제기하고, "한미간에 손발이 맞지 않는다.  6자 회담 중에 밖에서 핵비확산방지(PSI) 등 북에 압력을 가하면, 북이 우리를 신뢰하겠느냐"고 따진다. 노무현은 초기에는 부시를 설득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래서 김정일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인 부시로부터 협조적인 그러나 표면적인 약속도 받아낸다, 하지만 워싱턴의 네오콘들은 부시가 외교적 모순을 범하게 만든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원칙을 배반하고 정치적 타산의 상식에도 위배되는 2차 이라크 파병 결심을 내린다. 미국의 파병 요구를 그대로는 아니지만 절반 이하로 수정해서 그리고 직접 전투 참여가 아닌 이라크 재건 협력군으로 파병한다. 노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대의명분을 간과하고, 자신의 정치 지지자들의 반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냉혹한 판단을 하면서도, 파병을 결정한다. 저자는 이 결정이 순전히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미국의 요청을 수용한 것이라고 기술한다. 즉 파병 요구를 들어주면, 북핵 해결을 원하는 한국의 요구를 미국이 어느 정도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한국의 기대를 철저하게 외면한다.

모두 7부로 구성된 <칼날 위의 평화>는 이밖에 남북관계, 한일관계, 중국의 동북공정, NSC에 대한 반발, 정부내의 노선갈등, NSC가 핵심 컨트롤타워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의 혼란과 관련된 일화들을 소개한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평가도 흥미를 끌지만, 이 점은 독자들이 독자적인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국민의 정부의 임동원 통일부장관이 쓴 <피스메이커>와 함께, 한국의 외교안보 통일 정책의 귀중한 역사기록서다. <칼날 위의 평화>도 누가  번역해서 영문판이 나오기를 바란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전문가들도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확신한다. 이어서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에 관한 책도 나오기를 기대한다.   

한 가지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요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에 청와대가 법적으로 사후 대책의 이행을 책임지는 곳이 아니라는 주장때문에 아직도 여야가 맞서고 있는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NSC가 "대형 재난 재해까지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개선하라"고 지시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어떤 사고가 나면 국민은 궁극적으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직속기구인 NSC 위기관리 센터가 재난·재해 컨트롤 타워를 맡는 것이 옳다." 

<칼날위의 평화>에 나오는 노 대통령의 말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 글쓴이는 전 미국무부통역, 현 북한대학원 대학 초빙교수, 고려대 일민국제관계 연구원 방문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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