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영화의 줄거리나 주요 장면이 포함돼 있습니다.

2001년 팀 버튼 감독이 리메이크한 <혹성탈출>의 원작은 동명의 1968년 개봉작이다. 첫작품의 흥행 이후 1981년까지 총 6편의 시리즈가 연이어 개봉했는데, 초기 작품에서는 핵무기의 무분별한 개발 끝에 자멸하는 인류의 모습으로 문명 비판적인 코드를 핵심으로 한 액션과 스릴러를 선보였다. 차기작에서는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 외치며 원숭이를 노예로 부리는 인간의 모습에서 '인종차별'과 '노예 문제' 등 지난 역사에서 인간이 겪어온, 부끄러운 현재진행형의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다양한 화두와 특수분장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중심으로 관객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혹성탈출> 시리즈는 그 뒤로 몇십 년을 지나면서 잊히는 듯 하다 최근 다시 리부트(이미 존재하는 영화의 콘셉트와 캐릭터만 다시 가져와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시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편집자 말)되었다.

2011년에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이 연출한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이 개봉하면서 더욱 진보된 영상기술과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으로 새 시리즈의 출발을 알렸다. 전편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과학자 윌 로드만(제임스 프랑코)이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큐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인간의 손상된 뇌기능을 회복시키는 신약의 개발과정에서 임상 실험을 위해 유인원에 '큐어'가 투약된다.

실험체로 쓰이던 유인원 중 하나가 새끼를 낳고, 윌은 태어난 개체를 집으로 데려와서 돌본다. 어린 침팬지의 이름을 '시저'로 정하고, 수화와 언어를 가르치던 윌은 인간에 가까운 지능을 가진 생명체에 놀라게 된다. 윌이 집을 비운 사이에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옆집 남자의 시비에 휘말리게 되고, 이를 공격으로 인식한 어린 시저는 옆집 남자를 공격한다.

결국 동물보호소로 끌려간 시저는,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폭력적인 방식에 경악하고 그제서야 자신이 인간과 다른 존재임을 인식한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났던 실험실로 되돌아가 실험에 희생되던 유인원을 모두 풀어주고, 그들과 함께 도시 외곽의 산으로 도망친다.

진화한 유인원과 멸종위기에 처한 인류의 조우

 영화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중 한 장면.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멸종위기를 겪고 남은 소수의 인류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중 한 장면.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멸종위기를 겪고 남은 소수의 인류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은 유인원의 대탈주 사건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된다. 그 10년 동안, 치매치료제 '큐어'가 만들어낸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인류를 덮치고 유인원은 진화를 거듭한다.

그 와중에 자신들만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를 공격하며 전쟁을 일삼다가 멸종의 위기를 겪는 인류의 모습은, 숲 속에서 평화롭게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지내는 유인원의 대척점에 서 있다. 그리하여 더욱 번성하는 유인원 그룹이 무심하게 "인간들이 멸종한 것 아닐까"하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유쾌하지 않은 어떤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그들 중 누가 더 인간적인 존재란 말인가.

폐허가 된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산속에서 군락을 형성하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며 살아가는 유인원 집단의 우두머리는, 전편에서 인간의 잔인함을 목격하고 실망하여 그들의 곁을 떠난 '시저'다. 그는 동료 유인원들에게 수화와 언어를 가르치고,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규율을 만든다. 가장 인상적인 규율인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이 지점에서 이미 단순한 유인원의 단계를 넘어선 존재로 거듭난다.

그러던 어느 날, 영원할 것 같던 평화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깨어진다.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겨우 생존하여 살아가던 소수의 인류가 도시 외곽을 수색하다가 시저의 유인원 무리와 조우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황한 한 남자가 침팬지 한 마리를 권총으로 사살하고, 수십 마리의 유인원이 그 곁을 포위한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나타난 시저는 인간을 모두 살려서 돌려보내는데, 이 과정에서 유인원 집단 내에서 의견 충돌이 발생한다.

'먼저 공격해온 인간들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전쟁불사론과 '양측의 막대한 희생을 막기 위해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평화유지론이 팽팽하게 대립한다. 이를 두고 더 나은 방안을 찾고자 시저는 갈등하는데, 그 와중에 인간 중 한 명인 말콤(제이슨 클락)이 죽음을 각오하고 유인원 마을로 방문한다.

연료고갈에 처한 인간들이 생존에 필요한 자원인 전기가 필요한데, 소형 수력발전기가 유인원 군락 근처에 있으니 부디 가동을 허락해 달라는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시저가 이끄는 원숭이 무리와 소수의 인류가 생존의 외나무다리에서 부딪히는 줄거리, 그 결말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액션영화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정치지도자, 시저

 영화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중 한 장면. 약자에게 손을 먼저 내밀 줄 아는 시저는 할리우드 액션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지도자로 손색없다.

영화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중 한 장면. 약자에게 손을 먼저 내밀 줄 아는 시저는 할리우드 액션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지도자로 손색없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한 마리의 침팬지 '시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매우 경이롭다. 뇌과학 연구 과정에서 탄생한 그는 놀라울 정도로 똑똑한 것은 물론이고, 다정한 사람의 곁에서 자라고 배우면서 인격적인 면에서도 성숙하다.

그 결과 '약육강식'과 같은 힘의 논리가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방향으로 고찰하며 유인원 무리를 이끌어 나간다.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는 규율에서는 평화를 유지하려는 가치관이 엿보인다. 그러면서도 권위를 이용한 집단 내부의 결속도 빼놓지 않고 실행한다.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은 냉철하고 강인하다. 한마디로 시저는 지도자의 면모를 고루 갖춘 인물인 셈이다.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힘 있는 유인원들은 '인간과의 마찰'이라는 사안을 두고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다. 특히 인간에 의해 탄압받고, 생체실험을 당한 경험이 있는 침팬지의 경우에는 인간에 대한 적개심이 더욱 강하다. 그러나 시저는 외부세력을 쉽게 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상대를 간단하게 타자화하지 않는 그의 인식은, 전편에 이어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서로 다른 '과'에 속하는 침팬지-오랑우탄-고릴라를 하나로 규합해낸 통합력에서도 드러나듯이, 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을 적대시하지 않는 것이다.

단순히 싸움을 피하려고만 하는 태도가 아니라, 차분하게 인간과 서로 간의 신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상생을 이뤄내는 시저. 그는 강경파와 온건파 중 한 쪽을 배척하지 않으며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고, 자신에게 항명한 침팬지마저 용서할 줄 알고, 인간과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믿음을 주고받는다.

전편의 탈주장면에서, 샌프란시스코 다리 위에서 펼쳐진 추격전 당시 뛰어난 지략으로 전투를 지휘하던 시저는 '뛰어난 전략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에서는 휘하의 유인원과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상황에 맞게 카리스마를 뿜어내면서도 공존을 추구할 줄 아는 '정치가'의 면모를 드러낸다. 이 정도면 시저를 가히 '할리우드 액션영화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정치지도자'라고 부를만 하다.

느슨하지 않은 액션, 시리즈의 성공적인 재탄생

 영화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중 한 장면.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Ape not kill ape)'라 적힌 벽글씨가 인상적이다.

영화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중 한 장면.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Ape not kill ape)'라 적힌 벽글씨가 인상적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유인원과 인간의 대결이 뻔한 장면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총을 든 사람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전술과 전략을 짜내고, 심지어 함정을 파서 인간을 위기에 빠트리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사람보다 더욱 우월한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불어 '생존'에만 매달리며 시저를 "원숭이에 불과하다"며 무시하는 인간에 비해서, 신뢰를 중시하고 이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유인원이 더욱 인간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치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이 그랬듯이 말이다.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인간과 유인원의 대립을 '선과 악'의 구도로 설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도 권력을 위해 쿠데타(군사반란)를 꾀하는 무리와 오만함에 눈이 멀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다양한 등장인물의 묘사에 있어서 심리를 표현하는 탄탄한 설정과 줄거리가 뒷받침되어 몰입도와 설득력을 높인다. 몇몇 캐릭터는 상황이 전개되며 성격이 바뀌는 입체적인 면을 보여주며 이야기의 흡입력을 더한다.

전편에 비해 다소 영화의 천재성이 덜하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느슨하지 않은 액션과 긴장감을 잃지 않는 줄거리 덕분에 130분 동안의 상영시간동안 관객이 즐기기에 충분해 보인다. 전편과 잘 조화되는 후속작을 놓고 전체적으로 볼 때, <혹성탈출> 시리즈의 성공적인 재탄생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끊겼던 전기가 오랜 시간을 지나 다시 공급되고, 그제야 태블렛 PC로 가족사진을 보고 울먹이는 드레퓌스(게리 올드만)의 모습에서는 '문명의 편리함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인가'하고 느낄 수 있다. 이것도 '기술의 무분별한 소비'를 표현한 과거 시리즈의 메시지를 충실히 담아낸 장면이지 않은가.

종을 뛰어넘어 친구를 만들고, 외교와 전투에 능한 지도자 '시저'가 등장하는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은 한 편의 '정치서사시'이다. 이 영화는 인간과 유인원을 막론하고, 어떤 지도자가 사회를 이끌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과격한 군사정권 시절이 막을 내리고 대중이 화합과 평화를 요구하는 오늘날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것 같다.

유인원이 진화하며 법을 만들고 지키거나 잘못된 지도자로 인해 무고한 생명이 희생당하는 장면에서는, 우리가 인간이기 위해서 어떤 길을 추구해야 하는지 되묻는 듯 하다. 테러와 전쟁으로 스스로 생존의 위협에 처하게끔 하는 2014년 세계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 영화 속의 우둔한 인류 뿐만 아니라 현실의 우리에게도 성찰과 진보가 필요한 시기다. 다음 편에서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인간 너머의 존재가 되어있을 시저가 기다려지는 이유도 어쩌면 그런 소망이 투영된 것 아닐까.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시저 유인원 정치지도자 공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