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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장

無爲刀
▲ 무위도 無爲刀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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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예진충은 풍천의와 회의를 했다. 은화사에서는 예진충과 척숭, 금의위에서는 풍천의와 조복이 회의에 참석했다. 섬서괴도 척숭은 금릉의 은가에서 흑의인의 칼에 부상을 당했음에도 이번 작전에 참석하겠다고 끝까지 고집을 부려 데려왔다. 척숭은 그때 일격에 당한 게 못내 분한 지 다시 한번 그 흑의인과 마주치길 고대했다. 

예진충은 풍천의에게 목적지가 운부산이라는 것과 은화사와 금의위의 임무 분담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우선 금의위 대원은 주요 지점에서 차단과 매복을 하고 산장을 들이닥치고 현장을 제압하는 건 은화사 요원들이 한다. 만약 그들이 산장에서 탈주를 한다면 함께 추적할 것이다. 그밖에 세부적으로 조수협 입구와 구사곡 요소요소에 인원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좀더 의논했다.

"산장 뒤쪽으로는 배치가 없습니까?"

조복이 물었다.

"들은 바로는 산장의 뒤쪽은 반야봉이라는 봉우리와 연결되는데 가파른 절벽이라서 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올라갔다한들 대항산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산줄기 밖에 없어 탈출로로 삼기엔 무리라고 하더이다. 그렇다고 절벽을 우회해서 능선을 타고 대항산맥으로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배제하는 건 아니오. 우회로 길목에도 인원을 배치해 매복할 계획이오."
"거기까지 배치하기에는 인원이 좀……."

풍천의가 말꼬리를 흐리며 머뭇거렸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금의위 아니오리까. 대원들의 능력을 믿어보겠소이다." 
"그자들의 무공 수위는 어느 정도 됩니까?"

풍천의가 물었다.

"서생은 말할 것도 없고 낭자까지도 우리 은화사 요원 한명이면 충분하리라 보는데, 문제는 담곤이오. 한때 강호를 풍미했던 비천사운 중의 하나이니 결코 무시할 순 없을 것이오. 하지만 제 아무리 담곤이라한들 현재 우리의 전력이라면 가능하다고 보오."

"……괜찮으시겠습니까?"

풍천의가 조심스레 물었다. 천하의 담곤인데 과연 괜찮을까 하는 의구심이 배어든 물음이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와 여기 있는 척 대협, 둘이라면 담곤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보오. 서생과 낭자는 나머지 우리 요원 둘이 책임질 것이오."

조복은 속으로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화사의 총관이라는 자는 너무 자만하는군. 준목규운 담곤이 누군가. 구대문파의 장문인도 그와 비무(比武)하기를 꺼리고, 흑도의 누구라도 그와 손속을 주고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오년 전부터 무공에 손을 떼고 표국 운영에만 전념하고 있다니 아무래도 내공수련이 소홀하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왕년의 공력이 어디 갈 것인가. 아무튼 예총관은 뭘 믿고 자신이 담곤을 제압할 수 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조복도 어린 시절, 당시만 해도 명성이 자자하던 비천문의 무공을 연마하기 위해 수소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설 속의 비천문은 해체되고, 그의 적통이랄 수 있는 금릉의 비영문과 용문산의 비룡문이 있었지만 자신의 고향과는 너무 멀어 포기했다. 대신 그에 못지않은 다른 무공을 익혔다. 그 점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덕분에 금의위에도 몸담을 수 있었고 아울러 보다 큰일을 맡을 수도 있었다.

"현재 금의위 가용인원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여덟 명이오?"

예진충이 풍천의를 향해 물었다.

"정주 지부 영반 신렵이 합류해 총 아홉 명입니다."
"아홉이라……. 어때 운부산은 정주와 멀지 않으니 산세에 대해 잘 아는 대원이 있는지요."

"이곳 고장과 가깝다고는 하나 워낙 산이 크고 형세가 가팔라 산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는 잘 안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

"그래요? 그건 어쩔 수 없겠구려. 아무튼 아까 회의에서 나온 안(案)대로 각자 임무에 만전을 기해주시고 출발은 오시(午時) 초(初)에 하겠소."

회의를 마치자 풍천의와 조복이 예진충을 향해 목례를 하고 접견실을 나갔다. 예진충도 운부산에 갈 준비를 하려는 차 누군가 급하게 임질재로 향해 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당두 어른, 급한 전갈입니다."

자신을 당두라고 칭하는 걸 보니 직속 수하인 모양이다. 곧이어 접견실 문이 열리더니 요원 하나와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중년인이 들어왔다. 얼마 전 채욱과 함께 자신을 찾아왔던 무정도 동백웅이다.

동백웅은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예의를 갖추더니 예진충에게 주위를 물리쳐 달라고 했다. 예진충이 척숭과 요원을 쳐다보자 조용히 방을 나갔다. 방안에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백웅은 몸을 기울여 예진충의 귀에 입을 댔다.

"예총관, 다름이 아니오라 상대부 어른께서 행차하셨소."
"예? 상대부 어른께서? 이곳에 말이오?"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기 정주는 아니고 개봉에 계십니다. 도성(都城)에서 어제 출발하셨는데 주위의 눈을 속이느라 변장을 하셨소이다."

"상대부께서 저를 보자고 하십니까?"
"그렇소이다. 진행 사항에 대해 직접 보고받기를 원하십니다."

동백웅의 어조에 힘이 들어갔다.

의심이 많고 한 치의 틈도 허락 않는 상대부인지라 일의 진행을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왜 개봉에?"
"원래는 다른 볼 일 때문에 오신 건데, 온 김에 예총관을 만나보시겠답니다."

자신을 만나고 돌아간 채욱의 보고에 미심쩍은 점이 있거나 시원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기에 예진충 자신에게 직접 보고하라고 하지 않은가. 상대부는 늘 이런 식이다. 일을 맡긴 쪽에 무게를 실어주지 않고 항상 견제할 수 있는 상대를 만들어 서로 경쟁하게 한다.

"개봉 어디에?"
"잠깐 귀좀 빌리죠."

안 그래도 가까이서 낮게 말하던 동백웅이 귀를 빌리자며 더욱 가까이서 속삭이자 귓구멍에  강아지풀을 넣고 비비는 것처럼 간지러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예진충은 그마저도 느끼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소이다. 내 지금 당장 출발하리다."

풍천의가 금의위 대원들의 인원을 점고하고 운부산으로 막 출발하려는 데 은화사 요원 한 명이 급하게 달려와 예총관의 급한 전언이 있다며 잠깐 기다려달라고 전했다. 풍천의와 조복은 예진충이 있는 접견실로 갔다.

"풍장반, 바쁜 걸음을 잡아 미안하외다."
"무슨 일이신지요."

"아까 회의에서 결정한대로 금의위는 매복과 차단만 해주시기를 거듭 부탁하오. 본관은 다른 급한 일이 생겨 하루 이틀 정도 출발이 늦춰질 것 같소이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만 우리가 갈 때까지 산장에 선제 조치는 삼가 해주기 바라오."

예진충이 정중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풍천의는 알겠노라고 답은 했지만 예총관의 지나친 다짐이 오히려 수상했다. 은화사는 우리 금의위를 견제하는군. 금의위가 진경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시키고 자신들만이 열매를 가지겠다는 속셈 아닌가. 결국 금의위는 은화사의 들러리에 불과한 작전에 동원된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기회를 봐서 우리도 손을 써야 한다. 그렇게까지 하려면 상부와의 교감이 있어야 할 터였다. 상부라면 금의위 지휘사 모빈 장군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풍천의는 조복이 며칠 전에 털어놓은 기밀에 귀가 솔깃해졌다. 지금 은화사에서 쫓고 있는 것이 강호의 전설로 전해지던 무극진경이라는 것이다. 풍천의는 조복에게 그 사실을 왜 처음부터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치지 않았다. 그의 직책이 기밀을 수집하고 정탐과 체포를 전문으로 하는 제기(緹騎)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는 자신의 오른팔 우영반 신렵을 북평의 금궁(禁宮)에 급히 파견했다. 그 신렵이 어젯밤 늦게 은밀한 지령을 가지고 왔다.

금의위 이인자 적인발(赤仁撥) 장군에 의하면 은화사가 추격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들의 목표한 것을 입수했을 경우 어떤 파급효과가 나타날지에 대해 소상히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선 금의위가 독자적으로 행동해도 괜찮다고 했다.

이 말은 즉 은화사가 노리는 진경을 금의위도 입수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는 의미이자, 경우에 따라선 은화사의 손에서 탈취해도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록 지휘사 모빈 장군의 직접 명령은 아니지만 금의위 금궁에서 나온 지령이니만큼 이번 일에 공을 세우면 경부의 금궁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풍천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덧붙이는 글 | # 사과의 말씀
한 달 동안 해외에 장기출장을 가는 관계로 부득이 휴재를 합니다. 월드와이드웹 세상에서 어디간들 연재하지 못할까 싶었습니다만 막상 시도를 하려니 몇 가지 어려움이 있군요.

맘 편하게 제 일에 전념한 다음 돌아와서 연재에 좀더 집중하는 것이 작품의 질을 유지하는 길이 되지 싶습니다. 거듭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8월18일부터 연재 재개하겠습니다.



태그:#무위도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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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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