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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의 고민은 채용 공고가 없는 시기에도 계속된다. 공고가 뜸한 시기를 이용해 철저하게 준비해 두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모도 스펙이다'는 말은 웬만큼 취업준비를 해둔 취업준비생까지 불안하게 만든다. 면접에서 떨어지면 외모에 대한 고민은 더 커진다. 회사가 능력을 위주로 평가할 거란 믿음은 '외모도 경쟁력이다'라는 말에 흔들린다.

지난 7일 취업 사이트 <인크루트>가 취업준비생 80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이러한 고민이 일부의 것만은 아니라고 말해준다. '취업성형'을 고민하고 있느냐고 묻는 설문조사에서 20.8%(167명)가 '성형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절반이 100만~300만 원 정도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취업성형의 실태 파악을 위해 <오마이뉴스> 인턴기자들이 성형외과에서 직접 취업성형 상담을 받아보았다.

[사례①] 면접에서 또렷한 인상 주려면? "일단 눈매부터..."
: 이세정 인턴기자

지난 11일 오후 압구정역 2번 출구 앞, "눈에 띄고 싶니?"라는 도발적인 질문의 홍보문구가 거울과 함께 배치돼 있다. 성형외과 홍보문구 아래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 취업준비생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 성형외과에 들어섰다. 상담신청서에 희망하는 직종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있다. 질문 항목은 서비스업·방송계 등 업종에 따라, 영업직·사무직 등 직무에 따라 상세하게 분류되어 있다. 성형이 취업을 위한 도구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병원 앞에서 코 성형을 생각하고 있는 유지현씨를 만났다. 유씨는 몇 해 전 부드러운 인상을 위해 뒤트임 수술을 받은 적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씨는 "함께 일했던 사장님께서 내가 눈 수술을 한 후에도 차가워 보인다고 하셨다"며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취업 전에 콧대를 깎는 수술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상담실장을 만나 면접에서 자꾸 떨어지는 것이 고민이라고 말했다. "졸리고 피곤해 보이는 인상을 바꾸기 위해 눈매교정술을 받을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거기에 "이마, 턱, 앞 광대 등이 전체적으로 평면적인 것도 문제"란다.

기자가 목돈이 없다는 걸 고려해 "일단 눈부터 해야 효과가 빠를 것"이라고 친절하게 조언해줬다. 그렇게 계산된 견적은 기자의 1학기 대학 등록금에 맞먹는 액수였다. 입이 떡 벌어지지만, 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해주지 않는 현실을 고려했을 때 외모에도 그 정도의 투자는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고민이 된다. 지하철역 성형외과의 간판은 '아름다운 인생을 원한다면!'이라고 답하고 있다.

"눈에 띄고 싶니?" 면접에서 떨어진 취업준비생들에게 성형외과 홍보문구가 묻고 있다.
▲ 지하철 성형외과 광고 "눈에 띄고 싶니?" 면접에서 떨어진 취업준비생들에게 성형외과 홍보문구가 묻고 있다.
ⓒ 이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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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②] "취업 준비하는 20대 중반 남성이 제일 많이 하는 수술"
: 이겨레 인턴기자

취업난이 여성 취업준비생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듯 취업성형 역시 여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남성 취업준비생이 가장 많이 하는 수술은 코 수술이다. 단순히 '콧대를 세우는' 정도가 아니라 콧등, 콧방울, 코끝 등 부위를 나눠 수술한다. 여성이 눈과 코를 합쳐 300만 원 정도가 나오는 게 일반적이라면, 남성은 코에만 300만 원 정도가 든다. 지난 11일 신사동 가로수 길에 있는 한 성형외과에 전화를 했다.

"어느 부위 수술을 생각하시나요? 저희가 수술 부위마다 담당선생님이 다르거든요. 원하는 부위 말씀해 주시면 담당선생님 상담 바로 잡아드릴게요." 

얼결에 "코"라고 말했다. 20대 남성들이 코 수술을 많이 한다고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성형외과는 가로수 길에 있는 15층 빌딩의 6개 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전면이 유리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남자 한 명이 검은색 소파에 앉아 있었다. 성형외과에 온 남자가 나 혼자일까, 두려웠는데 다행이었다. 취업준비를 하고 있어서 코 성형 상담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에 상담실장의 간결한 답변이 돌아왔다.

"코 수술은 취업 준비하는 20대 중반, 환자님 또래의 젊은 남성이 제일 많이 하는 수술이에요. 코가 바로 서야 얼굴의 중심이 딱 잡힌 것처럼 보이거든요. 특히 사업을 하는 아저씨들은 아들을 데리고 와 코 수술을 많이 시키시더라고요."

다시 의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환자분 코의 경우, 높이는 있는데 콧대가 울룩불룩하고, 폭이 넓고, 끝이 아래로 쳐져서 오뚝해 보이지 않네요. 매부리(코를 평평히 함), 절골(코의 폭을 줄임)수술과 보형물을 넣는 수술을 병행하면 코가 훨씬 오뚝해질 거예요."

비용을 묻는 질문에 상담실장은 "행사가로 나가면 225만 원까지 가격을 맞춰 드릴게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반면 기자는 싸게 해서 225만 원이라는 말에 오히려 우울해졌다. 터벅터벅 성형외과를 걸어 나왔다.

코 성형을 상담 받기 전 성형외과 상담실의 모습.
▲ 성형외과 상담실 모습 코 성형을 상담 받기 전 성형외과 상담실의 모습.
ⓒ 이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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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③] '내'가 아닌 '방송사'가 원하는 얼굴로... 업종별 맞춤성형
: 송지희 인턴기자

취업성형은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주게 하는 것 외에도 업종별로 원하는 얼굴로 바꿔주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방송계에 취업을 원하는 이들은 카메라를 잘 받는 얼굴로 성형하길 원한다. 2년째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박수정(23)씨도 꿈을 위해 의학의 힘을 빌렸다.

박씨는 "아나운서의 경우 카메라 테스트가 정말 중요하다"며 "카메라에 비쳤을 때 또렷한 이미지가 나오게 하기 위해 이마와 코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수술을 받는다"고 말했다. 아나운서뿐 아니라 연예인, 방송기자, 리포터 등을 지망하는 이들이 다른 취업준비생들보다 성형욕구가 큰 것을 감안하면 이들을 위한 성형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방송을 위해 성형수술을 할 때 중요한 건 얼굴이 '평소'에 예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 비쳤을 때 예쁜 것이다.

이화여대 앞 한 성형외과에서 상담을 받았다. 방송 쪽을 준비한다고 하자 졸려 보이는 인상이니 눈앞을 좀 당기자고 했다. 카메라에 매번 일관된 얼굴을 비쳐야 하니 쌍꺼풀을 확실하게 잡아 줄 수술도 하자고 덧붙였다.

"요즘 방송 쪽 준비하는 애들은 쌍꺼풀 있어도 일부러 한 번 더 수술해요. 수술하면 피곤해도 눈이 잘 풀리지 않거든요. 아, 콧방울은 안 세워도 콧대는 좀 높여야겠네요. 낮아도 너무 낮네."

울적해질 대로 울적해져서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으냐고 물었다. 상담실장은 "이미 수많은 방송 꿈나무들이 자신의 손을 거쳐 간 건 물론이고 2~3년 정도 주기적으로 리터치를 한다"고 말했다.

가격은 현금으로 결제했을 때 275만 원. 이것도 코와 눈을 세트로 했기 때문에 싸게 해준 가격이라고 선심 쓰듯 얘기했다. 각각 다른 언론사여도 아나운서들을 보면 스타일이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수술대 위에 눕는 친구들의 마음이 이해가기도 한다. 그래도 지금 당장 300만 원이 없고, 내 얼굴이 좋아 수술을 하지 못하는 나는 열정이 부족한 청춘인 걸까.

[사례 ④] 취업 위해 성형하면, '패기와 열정'은 인정받는 건가요?
: 정민경 인턴기자

왜 떨어졌는지 알 길 없는 면접, 외모만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만 남는다. 문제는 면접이라는 취업의 관문이 꽤나 주관적인 판단으로 이뤄진다는 데 있다. 최근엔 면접이 짧은 시간 내에 끝나는 게 아니라 심층면접으로 진행돼 합숙까지 하는 곳이 많아졌다. 심층적으로 판단되는 면접에서 취업준비생들은 정확히 어떤 요소 때문에 떨어졌거나 붙었는지 알 수 없다. 이러한 불안감 때문에 일단 성형을 해서 일반적인 미의 기준에 부합하고 나면 '외모 때문인가'라는 하나의 의문은 사라지기도 한다. 어느 정도 안심이 된다는 뜻이다.

압구정 성형거리의 풍경.
▲ 압구정 성형거리 압구정 성형거리의 풍경.
ⓒ 이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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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기도 전에 의사는 말했다. "눈 때문에?"

찬찬하게 상담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상담은 금방 끝났다. 눈은 쌍꺼풀을 만들고 코는 높이면 된다는 식이었다. "봐, 여기 콧대 쪽이 텅텅 비지?"

의사는 코 모양으로 만들어진 자를 내 코에 대며 말했다. 미의 기준이 존재한다는 건 알았지만 '코 모양 자'는 꽤 충격이었다. 텅 빈 자의 공간만큼 내 외모 스펙이 모자란 듯했다. 토익이 상대평가라지만 990점이라는 만점이 존재하는 것처럼 외모 역시 상대평가겠지만 기준에 부합하는 만점이 존재하는 듯 보였다.

취업 때문에 성형을 한다고 말해봤다. 의사는 웃음을 지으며 "그저 예쁘면 되는 거지"라며 한마디 했다.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잘 풀릴 거란다. 비용은 275만 원. 수술비 250만 원에 수수료 10%가 붙는 금액이었다. 300만 원 돈에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잘 풀린다고 하니 혹했다.

취업성형은 예쁘기도 해야지만 티가 안 나는 게 중요하단다. 연예인들처럼 화면을 받거나 사진 찍히는 직업이 아닌 이상 웃을 때 자연스러워야 하고 너무 센 인상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꼭 얼굴 때문이 아니라도 취업을 위해 이 정도까지 했다는 패기는 인정받을 것만 같았다. 성형외과를 나오는 길, 평소엔 있는지도 몰랐던 대출광고 명함들이 괜히 눈에 들어왔다. 성형외과에 들렀던 몇몇 취업준비생들은 이 명함을 주웠을지도 모르겠다.

취업성형, 그 심정은 알겠지만...

취업준비생 5명 중 1명이 취업성형을 생각하는 지금, 여전히 인사담당자들은 외모보단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윤혁진(33) 취업컨설턴트는 "인상을 중요시 여기는 면접관은 있다"면서 "그렇지만 요즘 면접 추세는 심층, 역량 면접"이라고 말했다. "첫인상이 좋지 않더라도 면접 과정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사람들이 합격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윤씨는 "인상이 험악했던 영업직군 지원자가 '제 인상을 한번 보면 잊기 힘든 것처럼 회사의 물건도 그렇게 팔겠다'고 말해 좋은 평가를 받았던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세정, 정민경, 송지희, 이겨레 기자는 <오마이뉴스> 20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성형, #취업 성형, #성형 상담, #견적, #쌍꺼풀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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