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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말경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한 통 왔다.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문자였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자세히 확인하니, '대학 합격' 소식이었다. 이내 나는 대학에 가면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경제 활동을 주체적으로 해보겠노라고, 내가 벌어 내 생활 일체를 충당해보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의 아르바이트 구직 활동은 시작되었다.

내가 원하는 아르바이트의 조건은 딱 두 가지였다. 첫째 대학에 가면 평일엔 일하기 어려우니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둘째 그러나 주말 저녁에는 다른 한 주를 맞이하기 위해 쉬어야 하므로 '주말 아침에 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여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구직구인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다. 원하는 시간대, 근무하고 싶은 지역 따위의 조건들을 기입하기만 하면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알아서 보여준다. 그렇게 나는 앞서 열거한 조건에 맞는 적합한 일자리를 찾아 면접을 봤다. 숱한 이력서 제출과 면접들을 겪으면서 내가 사장에게 듣는 얘기는 대개 다음과 같았다.

"최저임금을 준다고 써놓았지만, 사실 우리가 최저임금을 챙겨주지 못해요."

면접 본 9곳 중 4곳이 최저임금 이하 시급 제시

이 명동 거리에 있는 수많은 매장들. 특히 화장품 매장들의 대부분의 직원들은 제2외국어 하나쯤은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만큼 노동강도도 세다. 이 점포들 중 몇 %가 알바노동자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고 있을까?
▲ 명동에 있는 수많은 매장들 이 명동 거리에 있는 수많은 매장들. 특히 화장품 매장들의 대부분의 직원들은 제2외국어 하나쯤은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만큼 노동강도도 세다. 이 점포들 중 몇 %가 알바노동자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고 있을까?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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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저임금을 챙겨주지 못한다'는 말을 이력서를 넣은 9곳의 가게 중 앞서 면접을 본 4개의 가게에서 들을 수 있었다. 2014년도 최저임금 5210원. 말이 5210원이지 그 돈으론 제대로 된 밥 한 끼조차 사먹기 힘들다. 햄버거조차도 단품이 4500원, 5000원을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저임금만으로 밥을 사먹기 힘든 상황에서 그것보다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수습기간 적용 임금이 아닌, 기본 시급을 최저임금보다 낮게 주겠다는 사용자의 말에 기가 찼다. 난 애초부터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은 고려해보지도 않았다. 최저임금은 당연한 조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이하 수준'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표정이 일그러져서인지, 네 군데의 가게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뢰를 네 개나 연속으로 밟은 이후로도 구직활동은 계속 되었다. 그러나 좀처럼 연락이 오질 않았다. 마침내 겨우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그곳이 바로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빵집이다.

면접을 볼 때, 사장은 시급과 근무시간에 대해 얘기를 했다. 시급은 2014년도 최저임금보다 290원 많은 5500원. 근무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6시간 정도다. 그렇게 나는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알바 한 명과 샌드위치, 음료 따위를 만드는 카페 기사, 빵을 굽는 제빵기사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바코드 없는 빵, 그 이름들 다 외우면 또 신제품 출시

판매사원 모집이 붙은 한 빵집 매장
 판매사원 모집이 붙은 한 빵집 매장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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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7시에 출근했다. 가게 오픈을 맡는 사람이므로 책임이 막중했다. 출근해서는 매장 내에 모든 불을 켠다. 진열대 쇼 케이스, 냉장고, 카운터 할 것 없이 켜면 가게 밖에 빵집 모델 등신대를 내놓아야 한다. 적당한 자리에 등신대를 놓고 돌아오면 본격적으로 매장 내에서의 일이 시작된다.

매장 내에서 우선시 하는 일은 갓 구워낸 빵을 진열하는 것이다. 철판이 뜨거워서 장갑을 껴도 물집이 생기는 일이 허다했다. 그 후엔 순차적으로 냉동물류를 냉장고에 집어넣고 본사에서 사온 빵을 진열했다. 출근하자마자 7시 반까지는 앞서 얘기한 일을 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계산을 해야 해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오기 전까지는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상황이 괜찮은 편이어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도 있지만, 이마저도 없는 매장도 있다.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혼자 일하는 것이다.

이 프랜차이즈 빵집은 지점마다 노동 강도가 다르다. 내가 일하는 매장은 시내에 있고 손님이 많다(는 것은 노동 강도가 세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 두 명과 카페기사가 동시에 일한다. 그러나 주문받은 음료를 만들어줄 카페 기사도 없이 혼자 빵을 진열하고, 판매하고, 음료를 만드는 알바들도 많다.

입사 초에는 정말 사람이 많아서 때려치우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외국인 상권의 메카인 명동 근처여서 손님의 70~80%는 외국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명동에서 일하는 알바들은 조금이나마 영어를 할 줄 알아야하고, 비영어권 손님들과는 몸짓발짓 다 써가며 소통해야 한다. 유동인구가 많은데다 물밀 듯 들어오는 손님이 대부분 외국인이라서 주문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특히 초반에는 매장에서 만든 빵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외워야 했기 때문에 굉장히 애를 먹었다. 매장에서 만든 빵에는 바코드가 없기 때문에 계산을 하려면 빵의 이름을 알아야한다. 나는 빵을 자주 사먹는 편도 아니어서 빵 이름 외우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겨우 외웠다 하더라도 간혹 아무런 설명 없이 신제품이 나오게 되면 계산할 때 애를 먹는다. 계산대 포스에도 없고, 가격도 모르는 상태에서 빵을 팔아야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정보가 없는 신제품의 경우에는 매대에 진열을 하지 않는데, 간혹 매대에 진열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꺼내오는 손님들이 있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빵 이름을 외우고 포스 다루는 것이 익숙해지면 계산을 맡아서 하게 된다. 오전 10시부터 11시 사이에 본사에서 매장으로 배달 온 2차 물류를 정리하고 매장을 쓸고 닦는다. 계속해서 매장에서 생산한 빵들을 매대에 진열하며, 그 빵을 포장하고 나면 점심시간. 손님이 오면 밥 먹던 것도 중단하고 일을 한다. 그렇게 어영부영 밥을 먹고 나면 오후 1시, 퇴근시간이 도래한다.

일한 지 4개월 만에 쓴 근로계약서

이렇게 매주 주말에 일하던 중, 3월경 나는 학내에서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아래 알바노조)을 만나게 됐다. 학교 내 조합원들이 등굣길에 학생들을 상대로 캠페인을 펼치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임금, 근로계약서 등 전반적인 노동법에 대해 얘기하는 전단지를 받았다.

그들은 아르바이트생을 아르바이트 '노동자' 라고 얘기했다. 알바노조가 학내에 달아놓은 현수막에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도 가산수당, 근로계약서, 주휴수당, 퇴직금 등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주휴수당은 뭐고, 근로계약서는 또 무엇인가 궁금해서 나는 4월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었다.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그 주 임금의 1/5를 받을 수 있는 주휴수당, 사용자와 노동자가 고용관계에 있어 계약을 할 때 작성하는 근로계약서 등 내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알바노조에서 해주었다. 내 스스로 어떤 상황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지 검토해보았다. 주 12시간 일하는 나는 주휴수당과 퇴직금을 받을 수 없었고,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4시간 이상 일할 때 30분 쉴 수 있는 휴게시간에 대한 얘기도 사장님과 계약할 때 전혀 듣지 못했다.

근로계약서 작성과 휴게시간, 주휴수당에 대해 알게 된 후, 당시 같이 일했던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물었다. "우리에게도 주휴수당, 근로계약서, 휴게시간이 있다는 걸 알아요?" 전혀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주일에 15시간을 일해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었던 그는 '주휴수당'이라는 말을 듣고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그에게 "사장님이 알아서 잘 입금해주시려고 말씀 안 하셨나봐요"라고 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사장은 주휴수당 없이 시급만 지급했단다.

일한 지 4개월이 지난 5월에서야 갑자기 사장이 근로계약서를 건네줬다. 근로계약서를 쓰자는 요구를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근로계약서 안에는 휴게시간이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빵집에 노동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쉴 수 없다. 바쁠 때에는 시켜놓은 밥도 먹지 못하고 일할 때가 허다해서 휴게시간을 쓰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사장님이 우리가 밥 먹을 때 좀처럼 쉬지 못하고 먹는다는 사실을 아셔서 그런건지 잘 모르겠으나, 임금에서 휴게시간 30분의 임금이 제하지 않은 채로 나온다. 물론 점심시간이라도 해도 30분을 다 쉬지는 못한다. 매장에 손님이 많을 때는 10분 만에 점심을 먹고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렇게 한 달 일해서 버는 돈만으로는 용돈이 충당되지 못한다. 주 12시간씩 약 3~4주간 일한 돈으로는 밥값, 책값만 해도 2주면 금세 다 쓰고 없다. 결국, 내가 번 용돈을 다 쓰면 부모에게 손을 벌린다. 대부분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상황은 나와 비슷할 것이다. 알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요구하는 게 괜한 게 아닌 이유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알바노조 조합원 K입니다.



태그:#아르바이트, #알바, #알바노조, #파리바게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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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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