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이 결국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자진 사퇴였지만, 사실상 비난 여론에 떠밀려 물러난 경질에 더 가까웠다. 불과 1주일 전까지만 해도 홍명보 감독의 유임을 발표했던 대한축구협회는 후임 사령탑을 찾기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홍명보 감독은 한국 축구가 만들어놓은 '황태자'였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캡틴'이자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 감독이 되어서도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을 차지했고 곧바로 월드컵 대표팀 사령탑에 오르는 등 누가 봐도 가장 화려한 길을 걸어왔다.

축구협회가 월드컵 예선도 거치지 않은 젊은 홍명보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을 때 별다른 반대 여론도 없었다. 그만큼 홍명보 감독은 한국 축구의 보석이었고,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당연히 기대에 걸맞은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믿었다.

외국인 감독,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홍명보 감독은 그의 축구 인생에서 다시 없을 좌절을 겪었다. 선수 선발을 놓고 스스로 내걸었던 원칙마저 깼지만 성적과 경기력은 최악이었고, 급기야 사생활 영역으로까지 비난이 번졌다. 국민적 영웅에서 순식간에 추락한 홍명보 감독을 바라보며 대표팀 사령탑을 선뜻 맡겠다고 나설 국내 감독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원을 약속한다고 해도 밀실행정으로 경질된 조광래, K리그 최고의 사령탑이었지만 일부 해외파 선수들의 'SNS 파문'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최강희, 그리고 홍명보까지 '독이 든 성배'를 마시고 쓸쓸히 물러났다.

그렇다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외국인 감독이다. 축구팬들 역시 외국인 감독을 원하는 여론이 높다. 홍명보 감독이 '의리사커' 논란에 시달린 탓에 학연, 지연 등 개인적인 인맥이나 외부 압박에 얽매이지 않고 투명하게 대표팀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또한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축구가 이번 대회에서 세계 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한 만큼 명망 있는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 선진 축구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이 곧 성공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역대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6명의 외국인 감독 가운데 성공사례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이 유일하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이끌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 축구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승리를 거두며 1승 1무 1패로 비교적 선전했다. 하지만 조 편성의 행운이 따라주지 않아 16강 진출은 실패했다. 반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똑같이 1승 1무 1패를 기록한 허정무 감독은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움베르트 코엘류, 본 프레레, 핌 베어벡 감독은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한국을 떠났다. 한국 축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세계 축구의 흐름이나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도 보여주지 못했다.

사령탑 찾기 어려운 한국 축구, 성공 조건은?

브라질 월드컵 실패의 비난 여론을 잠재우고, 대표팀 재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좋은 경력을 갖춘 유명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축구 변방이나 다름없는 한국을 선택할 세계적인 명장은 무척 찾기 어려운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 대표팀을 1998 프랑스 월드컵 4강으로 이끈 명장이다. 하지만 그 이후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와 레알 베티스에서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면서 퇴물 취급을 받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 사령탑이라는 모험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이 4강 신화의 큰 힘이 되었지만, 월드컵 개최국의 이점과 K리그 구단들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대표팀 선수 차출을 전폭적으로 협조하는 등 유리한 배경도 있었다. 이 같은 조건과 지원은 후임 감독들이 기대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또한 이름값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유럽프로축구에서 수많은 명문구단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110억 원이 넘는 연봉을 주고 영입했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조차 실패했다. 역시 이탈리아 출신의 명장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일본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감독 영입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지도자 경력, 전술의 특징, 유망주 발굴 능력,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열정을 다하려는 프로페셔널 정신 등 다양한 조건과 자질을 고려해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일단 새로운 사령탑을 영입하면 최소한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임기를 보장해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줘야 한다. 당장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아시안컵은 좋은 성적을 포기하고, 장기적인 도전을 위한 실험 무대로 삼아야 한다.

홍명보 감독의 '의리사커' 비판도 짧았던 준비 기간에 원인이 있다. K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지 않았고, 월드컵 아시아 예선도 거치지 않은 홍명보 감독으로서는 불과 1년 동안 모든 선수를 깊이 관찰하기 어려웠다. 결국 청소년 월드컵과 런던 올림픽에서 자신이 함께했던 선수들에게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한국 축구가 생소한 외국인 감독이라면 더욱 그렇다. 눈앞의 성적에 매달리지 말고 4년 후 월드컵을 바라보며 대표팀의 조직력과 체질을 바꿀 수 있도록 믿고 배려해야 한다. 만약 외국인이 아닌 국내 감독을 선임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진퇴양난에 빠진 한국 축구를 구하겠다고 나설 새로운 사령탑은 누구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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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거스 히딩크 축구협회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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