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이 10일 전격적으로 퇴진하면서 축구대표팀의 미래가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당장 새로운 차기감독 선임이 시급한 화두로 떠올랐지만, 이 기회에 대표팀과 축구협회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우선시되어야한다는 지적이다.

대표팀이 지난 4년간 3명의 국내파 감독교체 속에서 표류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원칙과 비전이 실종된 행정에 있었다. 눈앞의 결과에만 연연하여 감독교체를 남발하기 일쑤였고, 다시 시간과 상황에 쫓겨 충분한 검증과정없이 성급하게 새로운 감독을 선임했다가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한 것이다. 정작 그 과정에서 축구협회가 앞장서서 책임을 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축구협회가 중심을 잡고 한국축구의 미래에 대하여 분명한 계획과 비전을 제시해야한다는 점이다. 단지 월드컵 본선진출이나 16강, 아시안컵 우승같은 단기적인 성과에면 연연하다보면 다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만 하더라도 비록 이번 월드컵의 성과는 좋지 않았지만, 일찌감치 세계 4강진입을 목표로 장기적인 비전과 확고한 기획을 가지고 대표팀을 운영해오고 있다. 일본식 티키타카로 불리우는 패싱축구가 일본 특유의 스타일로 자리잡으며 아시아에서는 정상권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브라질월드컵 실패이후 곧장 멕시코 출신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을 후임으로 선임하는 신속한 일처리에서 보듯, 다양한 세계축구의 트렌드를 받아들이려는 과감한 시도와 추진력에서 더 적극적이다. 결과를 떠나 한국축구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감독은 바뀔 수도 있지만 축구협회는 유지된다. 해당 축구협회의 비전과 역량이 곧 대표팀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역시 기술위원회의 정상화다. 원칙적인 대표팀 감독을 선임-경질하고 대표팀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지원 업무는 모두 기술위의 소관이다. 그런데 브라질월드컵 4년간 기술위원회의 기능이 사실상 유명무실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조광래 감독의 경질파동과 최강희-홍명보 감독의 선임과정에서 드러났듯, 독립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대표팀을 지원해야할 기술위가 사실상 축협 고위층의 사조직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기술위는 대표팀 운영의 중추다. 기술위만 제 기능을 발휘해도 대표팀 운영이 상당부분 제 자리를 잡을수있다는 평가다. 협회 내부의 임김에 흔들리지않고 독립성과 전문성을 발휘할수있는 인사들이 선임되어야하고 대표팀 성적에 따라 성과와 책임까지 공유할수있는 구조가 정착되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위원 선정부터 투명한 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임명된 기술위원들에게는 확실한 권한과 지위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후임감독 임명문제도 신중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최근 국내파 감독들의 잇단 실패로 외국인 감독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냉정하게 손익을 따져봐야한다.

국내파-외국인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국내파 감독은 이미 한국 선수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적응에 대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 보듯 그만큼 개인의 선입견이나 인맥-학연-파벌같은 외부 요소에 흔들릴 위험도 높다. 국내 감독의 인재풀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 최근 몇 년간 조광래-최강희 등 K리그 정상급 감독들이 대거 실패를 맛봤다는 것은 대표팀 감독이 '독이 든 성배'라는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켰다.

반면 외국인 감독은 외부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실력 위주로 공정하고 투명한 선수선발을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지도자들에 비하여 선진축구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외국인 명장선임으로 기대할수있는 효과다. 그러나 한국축구 특유의 환경과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실패할 위험도 크다. 실제로 역대 외국인 감독을 제외하고 히딩크 감독 이외에는 특별한 성공사례가 없었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몸값이다. 홍명보 전 감독은 브라질월드컵을 이끌며 약 8억 원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나라인 일본의 경우 알베르토 자케로니 전 감독이 우리돈으로 약 12억의 연봉을 받았고, 후임 아기레 감독은 24억으로 약 두배의 몸값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증된 외국인 명장일수록 경력에 따라 몸값은 치솟을 수밖에 없고, 코칭스태프와 통역 등 추가영입비용까지 감안하면 액수는 더욱 늘어난다. 돈만 많이 들여서 정작 한국축구의 실정이나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면 낭비가 되기 쉽다.

최근 한국축구 실정에 밝은 외국인 지도자를 찾기 어려운데다, 최근 몇 년간의 행정난맥상과 대표팀 감독의 불안한 위상속에, 외부의 시선으로 비치는 한국축구의 이미지가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것도, 외국인 감독 영입에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국내파 감독이냐, 외국인 감독이냐에 대한 논쟁의 핵심은 누가 더 '한국축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느냐'에 대한 생산적인 담론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는 감독 개인의 자질만을 탓할게 아니라, 지금의 대표팀 시스템내에서 얼마나 감독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수있는 제도적-환경적 뒷받침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문제다.

어차피 장단점은 모두 존재하는 것이고, 어떤 감독이 오든 대표팀에 새롭게 와서 적응하기까지는 공통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 '시간과 신뢰'다.  당장 내년 아시안컵까지 여유가 얼마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촉박한 일정을 빌미로 주먹구구식 감독선임은 장기적으로 오히려 더 큰 낭패를 초래할 위험이 높다.

새 감독에게 당장 아시안컵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기 어렵다고 봤을 때 최소한 4년간 임기를 확실히 보장하고 2018 러시아월드컵을 통하여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확실한 기준과 목표치를 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내파냐, 외국인 감독의 문제는 그 다음에 고민해도 늦지않다. 그래야 감독도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고, 감독 선임과 동시에 운명공동체가 되어야할 기술위 역시 보다 신중한 판단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축구의 가장 큰 문제는 감독이 바뀔때마다 그동안 대표팀에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가 연속성있게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된다는 점이다. 특출한 감독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것은 사실상 복불복에 가까운 도박이다, 축구협회, 기술위, 감독,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축구가 각자의 영역에서 보다 전문성을 가지고 흔들림없이 굴러갈 수 있도록 전반적인 시스템의 정립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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