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새벽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와 주택에는 불이 켜진 곳들이 많았다. 한국 팀의 마지막 남은 월드컵 16강 진출 희망을 지켜보기 위해 피곤도 잊은채 많은 국민들은 TV 앞에 앉았다.

하지만 한국은 27일(한국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아레나 코린치안스에서 열린 벨기에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0-1 패배를 당하며 1무 2패로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패배보다 뼈아픈 것은 한 골도 넣지 못하고 경기 내내 상대에게 끌려다닌 무기력함이었다.

전반 시작부터 상황은 좋았다. 러시아와 알제리 경기에서 러시아가 일찍히 선제골을 기록하며 만약 이 상태로 벨기에에게 2골차 이상으로 승리를 거두면 기적적으로 16강 진출도 가능했다. 이미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벨기에도 적극적인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격적인 축구를 통해 선취점을 뽑는다면 승산이 있었다.

특히 박주영 대신 선발 출장한 김신욱은 초반부터 큰 키를 이용해 제공권을 확보했으며 골키퍼 김승규는 정성룡에게 느끼지 못한 안정감을 주었다. 여기에 전반 44분 벨기에 미드필더 스테번 드푸르가 고의적으로 김신욱 발목을 밟아 퇴장 당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충분히 후반 남은 시간동안 수적인 우세를 살려 공격적인 축구를 한다면 대량 득점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경기는 흘렀다. 축구에서 수적인 우세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것은 선수들의 빠른 패스와 역습이다. 또한 상대가 방어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수비라인을 한층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공격수들은 패스보다 번번이 긴 드리블을 하다 볼을 뺏기기 일쑤였고 수비수들은 활발한 공격 참여보다 혹시라도 상대 역습에 지난 번과 같은 실수를 할까 미리 겁을 먹었다. 창조적으로 상대 수비 공간을 침투하거나 개인기로 수비를 흔드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이청용의 부진이 아쉬웠다. 이청용은 이날 화면에 가장 많이 잡힐만큼 최선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영리한 플레이를 한다는 이청용의 모습을 살펴볼 수 없었다. 밀집된 수비를 하는 상대 앞에서 같은 패턴의 드리블을 시도하다 넘어지거나 공을 뺏기며 흐름을 끊었다.

개인 능력으로 경기를 풀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 잡혀 본인이 가진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한국 팀 공격을 전체적으로 다운시키는 역할을 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선수라도 항상 최고의 경기를 펼칠 수는 없다. 그리고 경기에서 컨디션이 저하된 선수를 빨리 찾아내고 분위기를 바꿔줄 선수로 적절한 교체를 하는 것이 감독으로써 임무다. 하지만 대표팀 홍명보 감독은 답답한 플레이를 계속한 이청용을 끝까지 남겼다.

이미 밀집된 수비 진형으로 버티는 벨기에에게 이청용과 같이 개인 드리블로 치고 들어오는 선수는 손쉽게 방어할 수 있는 상대였다. 오히려 간간히 때리는 기성용의 중거리 슛이 가장 상대에겐 위협적이었다.

이청용에게 중거리 슈팅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슈팅이 없으니 더욱 드리블 위주로 경기를 풀려고 애썼고 후반 시간이 지날수록 이는 오히려 한국 공격에 독이 됐다. MBC 안정환 해설위원도 중계 중 답답한 목소리로 "왜? 쓸때없는 볼터치를 하느냐, 빠른 패스를 해야 한다"는 멘트를 연거푸 내뱉었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 홍명보 감독이 귀중한 교체카드를 이청용이 아닌 김신욱과 손흥민에게 먼저 사용한 점은 납득이 잘되지 않는다. 공중볼 제공 능력으로 상대 수비를 두세명 달고 다니는 김신욱과 역습시 빠른 스피드 그리고 중거리 슈팅 한방이 있는 손흥민은 적어도 이날 경기에서는 득점을 올리기위해 이청용보다 더 적합한 자원이었다.

결국 전혀 수적인 우세를 이용하지 못하고 답답한 플레이를 펼치던 한국은 결국 후반 32분 실점까지 허용했다. 벨기에는 공격수 디보크 오리기가 때린 중거리슛이 김승규의 선방 후 튀어나왔고 얀 베르통언이 이 틈을 노리지 않고 파고 들어 손쉽게 득점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도 슈팅 전 한국 수비는 연속된 실수를 범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와 함께 국제대회에서 모험과 투쟁을 즐기며 복병으로 취급되던 한국 축구는 이날 경기로 완전히 사라졌다. 월드컵 패배보다 더 비참한 것은 '한국 축구만의 색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KBS 이영표 해설위원 말처럼 "월드컵은 경험이 아닌 증명을 하는 자리"이며 실력을 증명하지 못한 축구협회와 대표팀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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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글은 오버나우(http://www.overnow.co.kr)에도 실렸습니다.
이청용 월드컵 홍명보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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