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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콜텍 기타 노동자 24시간 불철주야 농성(대법원 앞)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새벽 5시 가로등 불빛 아래서 참새 소리와 함께 기상을 하면 이른 시간에 법원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시간에 출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옛날 우리 생각이 난다. 이른 아침에 법원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 아니면 계약직 식당 노동자가 아닐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대한민국은 참 부지런한 나라라는 느낌이 든다. 부지런해도 너무 부지런해 처음엔 그 광경이 놀라웠다. 아침 8시쯤 되면 1인시위 하는 시민들이 도착하면서 1인시위가 재미있어진다. 대법원 옆(군부대)에서 국민체조 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아침에 1인시위 하는 시민은 우리(콜텍 해고자) 포함하여 6명이었다. 모두 각자의 피켓으로 각자의 주장을 하고 있다.

1인시위 하는 시민들은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노조나 사회단체 소속 없이) 자신만의 목소리로 1인시위를 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들은 민주노총에 실망했다고 한다. 나는 민주노총 조합원으로서 왜 민주노총이 이렇게까지 왔는가 반성을 한다. 민주노총에 실망했다는 말도 이해하지만, 나는 조합원이라 그런지 그 말이 듣기 힘들었다.

1인시위 하는 시민들은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검찰, 경찰, 사법부, 판사들이 문제라고 한다. 어떤 1인시위자는 대한민국은 사기를 안 치면 돈을 벌 수 없고, 가난한 서민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어떤 시민은 대한민국의 법은 돈 있는 사람들의 법이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너무 힘들게 싸우지 말라고, 개혁은 안 된다고, 고생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대법원 앞에서 24시간 1인시위를 하는 기간 중 안대희 변호사(전 대법관)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적이 있었다. 법원에 오고 가는 사람들은 안대희가 국무총리 되면 서민, 농민, 노동자들은 다 죽는다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하고도 악연이 있어 우리도 안대희가 국무총리가 되는 것을 싫어했다. 안대희가 대법원관일 때 우리의 판결(정리해고 무효소송 2심 해고자 승소)을 파기환송해서 지금까지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사건은 정종관 판사가 이끄는 서울고등법원으로 넘어갔고, 판사는 미래의 경영상 위기가 있을 수 있어 정리해고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회사는 항상 이익을 추구하지만 미래에 위기 없는 회사가 어디 있는가. 미래의 위기를 따져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이런 판결을 한 법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 후 안대희 국무총리 지명자는 후보에서 사퇴했다. 그렇지만 5월 19일부터 시작한 우리의 대법원 24시간 1인시위도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대법원 판사들은 왜 차마다 검정색으로 코팅(선팅)을 하고 다닐까? 출근, 퇴근만 하는 판사들이 기사는 왜 데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고급차를…. 기사 데리고 다니면서 출퇴근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세금 낭비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대법원 울타리에서 핀 빨강 장미꽃을 보았다. 장미꽃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향기라도 주지만 너희 판사들은 국민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남이 운전해주는 검은 코팅의 차 안에서 세상도 검게 보고, 검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 그들에게 저 예쁜 장미는 어울리지 않는다.

2014년 6월 18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법복 입은 사람들에게 저 예쁜 장미는 어울리지 않아

6월 12일 대법원 패소 후
 6월 12일 대법원 패소 후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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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동안 진행된 콜트-콜텍 해고자들의 노숙 1인시위는 6월 12일 대법원이 콜텍 해고자들의 패소를 확정하며 끝났다. 24일 동안, 24시간 동안 햇볕과 비를 번갈아 쬐고 맞으며 해고자들은 희망이 무너질 거라는 예감을 하고, 그러면서도 종종 기적을 바랐다.

검게 그을린 피부, 얼굴과 팔뚝 군데군데 화상의 흔적으로 일어나는 각질들, 없던 무좀이 생기고, 마르고…. 실천이 남긴 결과는 임재춘 조합원(금속노조 콜텍지회)이 말하듯, 법복 입은 사람들에게 예쁜 장미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봉고차 가득 시위용품들을 챙겨 담아 인천 농성장으로 돌아온 6월 12일,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고, 응원의 메시지들이 SNS로 가득 가득 전달되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메시지가 90개가 넘게 도착했네"라며 때 아닌 '자랑질'을 하기도 하는 콜텍의 김경봉 조합원. "나 대전 가서 글 많이 쓸게"라며, 딸내미들 보러가는 길에 <오마이뉴스> 연재글에 대한 각오를 밝히는 임재춘 조합원.

한 달 가까이 방치되어 음식물이 푹푹 썩고 있는 아이스박스를 말끔히 청소한 콜텍 이인근 지회장. 지난 1월 10일 서울고법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을 때와는 어딘가 모르게 다른 모습들이 농성장에서 발견된다. 울거나 원망하거나 때려치우겠다는 말 대신, 그때보다 더 빨리 천막 농성장의 일상을 되찾고 있다. 법원에 호소할 수 있는 기회는 다 사라졌는데…. 이 또한 절규일까?

콜텍 정리해고 무효 소송이 모두 끝난 후 해고자들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와 함께 하는 공동행동'을 중심으로 향후 농성의 방향을 논의 중이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금속노조 콜트지회는 6월 19일 서울고법에서 마찬가지로 패소했다. 분명 암울한 현실이다. 이동호 콜트지회 노조 사무장은 이런 말을 했다.

"판사고 박영호(사장)고 더럽고 치사하고, 그래 힘들어.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 볼 낯도 없고, 이제 무슨 말로 설득해야 하나 사실 막막해. 근데, 난 끝까지 해보고 싶어. 좋든 싫든, 콜트(지회)와 콜텍(지회)이 뜻만 잘 맞춰가면 끝까지 가보고 싶은 게 내 심정이야. 그러려면 어떻게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서로 더 이해해야 해."

패소 이후 조금씩 온도의 차이는 있으나, 확실히 이런 모습은 절규라고 할 수 없다. '혹시 법이 우리의 편을, 우리처럼 작은 사업장 해고자들의 이야기도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란 찌꺼기를 게워낸 후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허탈하지만 허무하지만은 않은 해고자들.

"8년이란 세월 동안 넌 참 많이 늙었구나. 그땐 젊었는데, 어느새 그렇게 늙었니?"
"넌 뭐 다르냐?"

지난 8년의 날들을 중간 중간 기록한 영상들을 재생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서로의 지난 시절 얼굴들을 발견할 때마다 오고 간 이 대화의 끝을 상상해본다.

"우리는 곱게 늙어왔구나. 아등바등, 내 것만 챙기지 않고 둘러보며 살아왔구나. 그래서 너는 여전히 곱고 젊구나."

뭐 그런 오글거리는 말들이 오고갈 수 있는 날들을 바란다.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대법원의 장미 넝쿨
 대법원의 장미 넝쿨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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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콜트콜텍, #정리해고, #위장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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