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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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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은 일자리를 생각하다가 눈에 띄는 간판을 보고 서울역 뒤 직업소개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날이 어둡기 전에는 직업소개소 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국수 한 그릇을 사먹고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며 이 거리 저 거리를 돌아다났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이소선은 직업소개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무슨 일을 원하십니까?"

차마 '식모'라는 말이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쯤에서 주저앉아서는 안 되지. 밑천도 없는 사람이 장사는 할 수가  없고 무슨 일을 해서라도 돈만 벌면 되는 것이지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으랴.'

"저는 식모를 했으면 하는데요."

"아, 그러세요. 일자리는 많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그럼 가정집을 원하십니까,아니면 음식점 같은 곳을 원하십니까?"

'돈을 더 주는 곳으로 가야 한다. 힘이 들더라도 음식점이 돈을 더 많이 주겠지.'

"식당이요."
"식당으로 가시겠다는 말씀이죠. 그렇다면 아주머니, 혹시 조개밥을 만들 줄 아십니까?"

직업소개소 소장이 서류를 뒤적이며 물었다. 이소선은 사실 조개밥이라는 음식 이름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른다고 대답을 하면 일자리를 얻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밥'이라면 못할 게 뭐 있겠는가. 이소선은 할 줄 안다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이소선은 서울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동대문시장 근방에 있는 음식점이었다. 이소선은 다른 여자들과 함께 주방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음식점 주인하고 인사를 나누고 정신없이 하루 일을 끝냈다. 주방을 정리하고 식당 내에 있는 방에서 여자들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고된 하루를 보낸 뒤라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그릇을 닦느라 피곤한 몸이었지만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만이 어지럽게 머리속을 파고들었다. 날은 추운데 끼니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어린것들이 무슨 사고는 나지 않았을까. 엄마가 없어진 걸 알면 얼마나 놀랠까. 아이들만 생각하면 미칠 것만 같았다. 객지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아이들 생각하랴,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랴,손에서 물이 마를 날 없는 고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닷새째였다. 이소선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화장실에 앉았다, 그의 몸은 말이 아니었다. 어지럽고 아래에서는 피가 흘렀다. 하혈이다. 너무 많은 하혈을 한 뒤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화장실에서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린 이소선을 식당주인이 발견하고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병원에서 10여 일간을 치료받은 뒤 성치않은 몸으로 퇴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이렇게 병원에 누워 있으면 돈은 언제 벌어서 아이들하고 함께 살 수 있을 것인가. 병원에 있으면서도 돈 때문에 안절부절이었다. 식당주인에게 물었더니 병원비를 갚으려면 식당일을 6개월이나 월급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식당주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에게 일자리를 준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보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소선은 병원비를 갚기 위해서라도 6개월 동안 무리를 해서 일을 하기로 작정했다.

이소선은 이를 악물고 일을 했지만 날이 갈수록 그의 건강은 더욱더 나빠졌다. 화장실만 가면 피를 쏟았고, 그때마다 의식을 잃어 버리는 날이 늘어갔다. 평상시에 일을 하다가 어지럼증 때문에 깜빡깜빡 정신을 잃었다. 그런 건강 상태였으니 일인들 제대로 할 수 있었겠는가. 일을 하다가 그릇을 깬다든지 실수를 자주 했다.

남들 보기에도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솥에 물도 붓지 않고 불을 세게 때다가 그만 솥에 구멍이 나버렸다, 구멍난 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가열시키는 데만 정신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밥솥에 손가락만한 구멍이 나버렸다.

이소선은 그 구멍을 보는 순간 아찔했다. 큰일이 난 것이었다. 주인 얼굴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당연히 솥값을 변상해야 할 텐데 그에게 그런 돈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병원비를 갚아나가느라고 월급도 못 받고 6개월을 일해야 할 처지인데 밥솥에 구멍까지 냈으니. 서러움이 복받쳤다. 돈을 벌려고 서울에 왔는데 돈을 벌기는커녕,빚만 잔뜩 지게 생겼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소선이 밥솥에 구멍을 낸 것을 알고 일하는 처녀들이 주방에 들어왔다. 그들은 눈물을 찍어내고 있는 이소선을 둘러싸더니 저희들끼리 쑥덕거리며 의논했다.

"아줌마,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주인이 이 일을 알면 당장 변상하라고 성화를 부릴 테니 우리가 장난을 하다가 구멍을 내버렸다고 둘러댈게요. 주인 알면 쫓아낼지도 모른다구요."

이소선은 자기가 잘못한 일을 저희들끼리 책임을 지겠다는 처녀애들이 고마워 말도 못하고 눈물만 홀렸다. 다행히 처녀애들은 이소선을 좋아하고 잘 따랐다. 처녀애들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힘들테니 쉬라고 이소선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소선은 객지 생활하는 그 애들에게 엄마처럼, 언니처럼 대하면서 따뜻하게 지내왔었다. 세상이 각박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처녀들의 갸륵한 마음을 대하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소선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식당일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빚을 지고 있는 주인한테나 함께 일하고 있는 처녀애들 보기에도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식당에서 나가는 게 그들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소선의 마음을 알았는지 식당주인이 먼저 이소선을 찾았다.

"아줌마,이런 말 하면 나를 너무 야속하다고 생각하실테지만,그 몸으로 우리 집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무리예요. 내가 병원비를 받지 않을 테니까 어디 아는 집이라도 없어요?"

이소선은 상률이네 집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소선이 서울에서 아는 집이라고는 그 집뿐이었다. 얼마 전에 그를 찾아온 태일이가 떠올랐다. 그를 찾아온 태일이는 순덕이를 고아원에 맡겼다고 했다. 상률이를 만나서 그가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이소선은 태일이한테 상률이네 집에 가 있으면 찾아가겠다는 말을 하고 돌려보냈었다.

"아주머니가 갈 곳을 정하신다면 제가 차비는 드리겠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몸으로 더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무리예요."

주인 말을 듣고 있던 처녀애들이 우루루 몰려나오더니 한마디씩 던졌다.

"주인 아저씨,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야박하게 구실 수 있어요? 아주머니 몸이 저 지경인데, 쫓아내는 것만 해도 사람의 도리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돈 한 푼 안 주고 내보내겠다니 그게 될 법이나 한 말이에요? 그러지 마시고 한 달 월급은 주셔야지요. 그래야 아줌마가 살아갈 수 있을 게 아녜요?"

이소선은 처녀애들의 말을 듣고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였다. 내 처지에 어떻게 돈을 달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주인은 할 수 없었던지 돈 만 원을 이소선에게 쥐어주었다. 이소선은 그것마저도 어찌나 고마운지 주인에게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처녀애들과 작별을 나누었다.


태그:#이소선,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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