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일주일 전 가나 선수들은 홍명보호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우리 선수들에게 네 골이나 퍼부었던 실력을 떠올릴 때 곧 개막될 월드컵에서 최소 8강 이상의 성적을 올릴 강팀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본선 무대의 베일이 벗겨지자 그보다 더한 혹독함이 느껴졌다. 수요일 아침에 첫단추를 채워야 하는 홍명보호의 월드컵 첫 경기가 더 걱정스럽게 다가온다.

독일 국가대표 골잡이 출신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끌고 있는 미국 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17일 아침 7시 브라질 나탈에 있는 에스타디우 다스 두나스에서 열린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G그룹 가나와의 첫 경기에서 86분에 터진 브룩스의 헤더 결승골에 힘입어 2-1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G그룹도 죽음의 조 맞다

경기 시작 30초만에 미국의 선취골이 나왔다. 일요일 아침에 코트디부아르를 상대로 일본이 터뜨렸던 것처럼 옆줄 밖 던지기도 세트 피스처럼 3자 패스가 딱딱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준비한 만큼 빛나는 것이 역시 축구장의 세트 피스다.

비슬리의 왼쪽 옆줄 던지기가 먼저 뎀프시에게 이어졌고 그 공은 곧바로 리턴 패스로 비슬리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옆줄을 따라 움직이던 존스에게 이어준 공은 재치있는 3자 패스로 뎀프시를 겨냥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준비된 조직력이 상대 수비 라인을 단번에 허무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뎀프시의 왼발 슛은 가나 골문 오른쪽 기둥을 스치며 빨려들어갔다.

미국은 후반전 시간도 많이 흘러갈 때까지 추가골을 터뜨리지 못해 심리적으로 쫓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옛 속담처럼 미국은 끗발이 일찍부터 서는 날이었지만 그 다음은 시큰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가나의 멋진 동점골이 역시 3자 패스에 의해 만들어졌다.

82분, 콰드워 아사모아-아사모아 기안-앙드레 아예우로 이어진 3자 패스는 미국의 선취골 과정을 흉내낸 것처럼 아름다웠다. 앙그레 아예우가 왼발 바깥쪽으로 반 박자 빠르게 마무리한 순간도 일품이었다.

그러나 가나의 역전승 꿈은 곧바로 4분 뒤에 산산조각났다. 내주지 않아도 될 코너킥을 헌납한 것이 화근이었다. 후반전 교체 선수 주시가 오른쪽 구석에서 올려준 공을 또 다른 교체 선수 브룩스가 이마로 내려찍어 짜릿한 결승골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로써 G그룹이 죽음의 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먼저 열린 경기에서 포르투갈이 참패를 당하는 바람에 변수는 더 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르투갈-미국-가나'의 2위 다툼이 다른 그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고온 다습한 경기장 조건, 집중력 잃지 말아야

이 경기는 딱 24시간 뒤에 쿠이아바에서 열리는 H그룹 러시아와의 첫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홍명보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간대에 아찔한 두 골이 터져나왔고 거기서 승부의 갈림길이 또렷하게 만들어졌다는 점부터 곱씹어 볼 줄 알아야 한다.

먼저 열린 A~G그룹 14경기를 돌아보면 축구장의 교훈이 하나 둘씩 새록새록 쌓여간다. 우선, 고온다습한 경기장 조건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14경기 평균 기온은 25.8℃, 평균 습도는 68.43%였다. 기온보다 습도가 더 걱정이다. 집중력에서 승부가 갈라진다는 것을 이 수치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홍명보호의 첫 경기 장소인 아레나 판타날에서 칠레와 호주가 먼저 뛰며 3-1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 당시의 습도가 14경기 중 두 번째로 낮았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을 수 있지만 앞서 열린 경기들 중 상당수가 후반전 취약 시간대에 결정적인 골들이 터진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휘청거린 시간대가 82분이었고 자신들이 선취골을 넣은 것과 흡사하게 당했다는 것만으로도 정확한 3자 패스의 수준은 수비 조직력을 단번에 허물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축구 팀의 조직력에 집중력이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치는가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결승골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가나의 수비수가 끝줄 바로 앞에서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어정쩡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자신의 발끝에 공이 맞고 금을 넘어서는 것을 간과했다. 한 마디로 내주지 말아야 하는 코너킥을 내준 것이 뼈아팠다.

그렇게 나온 세트 피스가 미국의 결승골이 되었다. 이 골을 합작한 주인공 두 선수는 모두 클린스만 감독이 후반전에 들여보낸 조커들이었다. 역전승은 아니었지만 반전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감독의 예리한 눈과 교체 선수들의 준비된 조직력이 말해준 것이다.

A~G그룹 '한 경기씩의 법칙'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G그룹 경기만 빼고 A~E그룹 경기 중 각각 1경기씩 역전극이 펼쳐졌다. 그 과정이 홍명보호에게 가르쳐주는 것도 소중한 내용들이다. 방심은 금물이며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집중력을 잃지 말고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을 가르쳐준다.

이른바 시작 후 5~10분, 끝나기 5~10분 전에 위험한 골들이 많이 터졌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정지되었다가 경기가 재개되는 세트 피스(던지기 포함) 골들만으로도 잘 이해할 수가 있다.

A그룹부터 G그룹까지 1라운드가 모두 끝난 17일 아침까지 모두 14경기가 벌어졌는데 거짓말처럼 각 그룹의 한 경기씩 이런 교훈적인 골들(시작 후 10분 이내, 80분 이후 득점 기록)이 11골이나 터져나왔다. 모두 44골이 터졌으니 이 중 정확히 25%가 이에 해당한다.

브라질과 크로아티아가 맞붙은 개막전에서 후반전 추가 시간 1분만에 오스카가 역습 과정에서 재치있게 터뜨린 쐐기골부터 시작하여 17일(화) 아침에 끝난 미국과 가나의 맞대결에서 나온 세 골 모두가 이른바 축구장의 위험 시간대에 몰린 것이다.

이 11골 중에 역습에 의한 결정타는 모두 4골이었다. 특히, 역습을 성공시킨 골은 모두 80분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상대 팀의 역습에 취약한 시간대(4골 평균 88분 25초)를 잘 말해주고 있다. 홍명보호의 첫 상대 러시아가 역습 전술을 빠르고 날카롭게 다듬은 팀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세트 피스에 의한 득점이 11골 중 3골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여기에 가나를 상대로 미국이 경기 시작 후 30초만에 터뜨린 옆줄 밖 던지기 공격으로 만든 선취골도 포함되어 있으니 윤석영(박주호)과 이용(김창수)을 활용하는 세밀한 던지기 세트 피스도 준비해둬야 할 것이다. 더구나 가나가 귀중한 동점골을 어렵게 만들어내고 단 4분만에 내주지 않아도 될 코너킥을 허용하여 무너졌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감독의 혜안도 눈에 띈다. 벤치에 대기중인 후보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어 얻어낸 골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11골 중에서 5골(45.5%)이나 후반전 교체 선수들이 직접 넣은 것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이른바 감독이 내미는 카드가 '신의 한 수'라는 의미로 읽힌다.

이에 우리 축구팬들도 발 빠른 이근호(상주 상무)와 키다리 골잡이 김신욱(울산 현대) 등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고 있는 곳에서 묵묵히 기회를 엿보고 있는 K리거들에게 놀라운 반전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FIFA 월드컵 G그룹 경기 결과(17일 아침 7시, 에스타디우 다스 두나스-나탈)

★ 미국 2-1 가나 [득점 : 뎀프시(1분,도움-존스), 존 브룩스(86분,도움-주시) / 앙드레 아예우(82분,도움-아사모아 기안)]

◎ 미국 선수들
FW : 뎀프시, 알티도어(23분↔요한손)
MF : 존스, 베커만, 브래들리, 베도야(77분↔주시)
DF : 비슬리, 베슬러(46분↔브룩스), 카메론, 존슨
GK : 하워드

◎ 가나 선수들
FW : 아사모아 기안
AMF : 크리스티앙 앗수(78분↔아도마), 앙드레 아예우, 조르당 아예우(59분↔케빈 프링스 보아텡)
DMF : 문타리, 라비우(71분↔에시앙)
DF : 콰드워 아사모아, 보예, 멘사, 오파레
GK : 크와라시

관중 : 39,760명
경고 : 모하메드 라비우(30분), 설리 문타리(90+2분)

◇ G그룹 1라운드 순위표
독일 3점 1승 4득점 0실점 +4
미국 3점 1승 2득점 1실점 +1
가나 0점 1패 1득점 2실점 -1
포르투갈 0점 1패 0득점 4실점 -4

※ FIFA 월드컵 A~G그룹 1라운드 경기 정보(현지 시각 기준)
A그룹 : 브라질 3-1 크로아티아(상 파울루-아레나 코린치안스) 17시 맑음 24℃ 습도 63%
A그룹 : 멕시코 1-0 카메룬(나탈-에스타디우 다스 두나스) 13시 비 27℃ 습도 65%

B그룹 : 네덜란드 5-1 스페인(살바도르-아레나 폰테노바) 16시 구름 27℃ 습도 87%
B그룹 : 칠레 3-1 호주(쿠이아바-아레나 판타날) 18시 맑음 29℃ 습도 55%

C그룹 : 코트디부아르 2-1 일본(레시페-아레나 페르남부코) 22시 비 26℃ 습도 77%
C그룹 : 콜롬비아 3-0 그리스(벨루 오리존치-에스타디우 미네이랑) 13시 구름 24℃ 습도 51%

D그룹 : 코스타리카 3-1 우루과이(포르탈레자-에스타디우 카스텔랑) 16시 구름 30℃ 습도 58%
D그룹 : 이탈리아 2-1 잉글랜드(마나우스-아레나 아마조니아) 18시 구름 31℃ 습도 80%

E그룹 : 스위스 5-1 에콰도르(브라질리아-에스타디우 나시오날) 13시 구름 25℃ 습도 61%
E그룹 : 프랑스 3-0 온두라스(포르투 알레그레-에스타디우 베이라) 16시 구름 18℃ 습도 78%

F그룹 : 아르헨티나 2-1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리우 데 자네이루-마라카냥) 19시 맑음 25℃ 습도 69%
F그룹 : 나이지리아 0-0 이란(쿠리치바-아레나 다 바이샤다) 16시 맑음 21℃ 습도 68%

G그룹 : 미국 2-1 가나(나탈-에스타디우 다스 두나스) 19시 구름 조금 28℃ 습도 67%
G그룹 : 독일 4-0 포르투갈(사우바도르-아레나 폰테 노바) 13시 구름 조금 26℃ 습도 79%
축구 월드컵 가나 홍명보 세트 피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