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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0여 년 전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그 말을 들은 것은. 당시 나는 나를 교회로 데려가려는 친구와 한창 논쟁 중이었는데, 나는 친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너의 자비로운 하나님이 십자군 전쟁과 같은 말도 되지 않는, 정의롭지 않은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느냐'고 묻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친구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그게 다 신의 역사하심 때문이야."

그 말을 듣고 난 크게 두 가지에 놀랐는데, 첫째는 세상에 역사(歷史) 이외에 또 다른 역사(役事)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녀석이 이야기한 '신의 역사하심'의 폭력성 때문이었다.

녀석의 대답은 모든 논쟁을 거부하고 있었다. 대답할 수 없는 모든 사건들이 '신의 역사하심', 즉 내가 알 수 없는 존재의 크신 뜻이라는데, 거기에 대고 내가 반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난 녀석의 결과론적인 역사해석을 그냥 또 하나의 해석으로서 받아들였고, 그 편의적인 발상에 혀를 끌끌 차고 말았다.

결국 난 그 이후로 교회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되었고, 가끔 기독교 신자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이 규정해 놓은 '신의 역사하심'의 수위를 묻곤 했다. 경험상 그들의 '신의 역사하심' 범위는 제각기였으며, 그에 따른 현실에 대한 인식 역시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어디까지 '신의 역사하심'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은 결국 그들이 어디까지 논리적인 사고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느냐와 같은 의미였다.

총리 후보자의 '역사 인식'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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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너희들은 이조 5백년 허송세월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남북 분단을 만들게 해주셨어. 저는 지금 와서 보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 발언에 대해 여론이 들끓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터무니없는 역사 인식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일제 강점기마저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역사관은 일본 극우세력보다 더욱 극우적이며 반민족적이다.

지금까지 뉴라이트 논쟁으로 격화되어 온 '식민지 근대화론'은 그의 발언과 비교하면 양반에 가깝다. 어찌 이런 이가 지금까지 대표적인 보수 신문의 칼럼니스트를 했으며, 최고의 국립대학이라는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는지.

현재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남북문제에 대한 그의 인식은 더욱 처참한 수준이다. 그는 분단구조를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며 6·25는 미국이 우리와 함께 하게 된 하나의 축복인 것처럼 말한다. 따라서 그의 관점에서는 한반도의 모든 구성원들을 전쟁의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는 현재의 분단구조가 천만다행이었을 수밖에 없는데, 위와 같은 역사관으로서는 남북의 미래를 논하기 어렵다.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 해결책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왜곡된 역사관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어처구니없는 현실 인식. 그러나 이것들과 더불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앞서 언급한 그의 사고의 폭력성이다.

문창극의 '하나님의 뜻'

처음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발언을 접하자마자 내가 20여 년 전 친구와 벌였던 논쟁을 떠올렸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대화를 단절 시켜 버린 '신의 역사하심'이 '하나님의 뜻'으로 음절만 바뀐 채, 되풀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하나님의 뜻'은 그 말을 사용하는 이에게 궁극의 논리이다. 그 이상은 역사나 과학이 아닌 믿음의 영역으로서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한낱 인간이 뭐라고 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의 오묘한 뜻으로, 필연적으로 배타성과 그에 따른 폭력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하나님의 뜻'이라는데 그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틀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따라서 문창극 후보자가 자신의 발언을 사과할 가능성은 낮다. 그가 진정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이지, 그 역사하심의 문제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는 그가 어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문제는 그와 같은 생각을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총리가 할 경우다. 총리는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가며 조정을 해야 하는 자리인데, 자신이 이해할 수 없거나 설명할 수 없는 사안을 '하나님의 뜻'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이는 수많은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모든 행위를 결과론적으로 해석하고, 그것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이는 결국 독선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문창극이 지적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 결부된 사건들을 보자. 모두가 하나같이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이다. 분명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고,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논의하지 않고 마냥 '하나님의 뜻'으로 치부해 버린 채, 모든 것을 덮고자 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또 하나의 역사적 비극을 일으킬 것이다.

어느 유력 교회의 목사가 세월호 참사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서 분란을 일으킨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 그 모든 것이 그대들의 '하나님의 뜻'이라면, 국민 대다수의 반대와 지명 철회 요구 역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란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최소한 좀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분이시다.


태그:#문창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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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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