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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일본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표현한 과거 발언이 공개돼 물의를 빚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후 12일 저녁 서울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을 나서고 있다.
▲ 문창극 "총리직 사임, 그런 말할 계제 아냐" "일본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표현한 과거 발언이 공개돼 물의를 빚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후 12일 저녁 서울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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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되고 있는 글들은 언론인 출신의 자유 기고가로서 쓴 것이고, 강연은 종교인으로서 교회 안에서 한 것이어서 일반인의 정서와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점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생긴 것은 유감이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전직 대통령 비하 칼럼과 일제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한 강연 등이 논란이 되자 해명으로 내놓은 말이다. 몇몇 보수 언론들은 문 후보자의 해명을 두고 적절한 사과라며 두둔하고 나섰지만, 그의 말에선 '사과'라고 볼 만한 구석이 어디에도 없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유감'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란 뜻이다. 풀어 이야기하면, 오해가 생겨 섭섭하고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사과는커녕 오해(?)한 국민들을 향한 원망만 담긴 항변이다.

'언론인 출신 자유 기고가의 글', '종교인으로서 교회에서 한 말'이라는 변명 또한 적절하지 않다. '자유기고가'라고 할지라도 언론인 출신이고, 대중의 여론을 좌우할 수도 있는 매체에 칼럼을 게재했다는 건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가 작성한 칼럼에는 전직 대통령을 비하하고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내용들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단순히 자유기고가의 글이라고 어물쩍 넘어갈 수 없는 이유다.

교회 강연에 대한 그의 해명도 납득할 수 없다. 교회 안에서는 한 국가의 아픈 역사를 왜곡하는 '막말'을 해도 된다는 이야기인가. 문 후보자가 총리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논할 수준이 아니다. 이런 사람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중견 언론인으로 어깨에 힘을 주며 다녔다고 생각하니, 그와 안면도 없는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다.

문창극 과거보다 더 지탄 받아야 할 건....

이미 많은 언론에 보도된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과거 칼럼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문 후보자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 놓고 봐도, '무능'이라 낙인 찍힌 정홍원 국무총리나 '전관예우'로 낙마한 안대희 총리 후보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결함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양파처럼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그의 치부들은 그가 총리 적임자가 아님을 국민들에게 명확하게 각인시켜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양파' 문창극의 과거에 분노하고 그를 지탄하는 일이 아니다. 문창극이란 말도 안 되는 인물을 총리 자리에 앉히려고 한 이들의 잘못을 먼저 질타해야 한다. 그것이 번번이 '인사참사'를 몰고 와 나라 전체를 시끄럽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결국 수많은 질타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대통령의 '불통' 국정운영과 번번이 문제를 몰고 오는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이 또 이번 사태를 빚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6일 이후, 많은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달라야 한다고 한결같이 염원했다. 성장 위주 정책과 자본 중심의 사회를 사람이 먼저인 세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부모의 절규였고 참사를 지켜본 기성세대의 다짐이기도 했다.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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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달 19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눈물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선거를 앞두고 위기를 느낀 새누리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며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지난 주 치러진 6·4지방선거는 정부와 여당이 국민들에게 한 무거운 약속을 확약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선거 뒤 일 주일여가 흐른 뒤 국민들에게 배달된 소식은 '문창극'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인사 소식이었다. 대통령과 여당은 국민과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고 얼굴을 바꿨다. 세월호 참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통령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책임자에서 심판자로 군림했다. '모든 걸 바꾸겠다'던 새누리당은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되자,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면서 국민과 했던 약속을 잊지 않았다면, 이럴 수는 없다. 6·4 지방선거 결과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면죄부라고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하루아침에 이렇게 오만하고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일 수는 없다.

선거 끝나자마자 단행된 밀양 농성장 철거

이런 정황들을 놓고 볼 때,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총리 후보자로 지목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문창극 후보자가 가진 결함쯤이야, 6·4지방선거에서 재신임에 가까운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면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해 기획과 민정, 정부, 홍보 수석과 10여 명의 공직기강팀 실무진으로 이뤄진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총리 지명 하루 만에 터져 나온 숱한 의혹들을 사전에 검증하지 못했다는 건 난센스에 가깝다. 이미 확인하고도 넘어간 것이고, 그 바닥엔 '민심을 거스를 수 있다'는 오만함이 숨어 있다.

사실 정부와 여당의 이런 오만함은 이번 총리 지명 사태에서만 드러난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후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우선하겠다고 했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농성장을 신속하게 철거했다. 지난 11월 새벽 경찰과 밀양시, 한전 등이 함께 진행한 철거 작업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했다.

선거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공권력을 투입해 할머니들의 손목을 비틀어 끌어내고 농성장을 철거하고... 이건 국가가 보여준 야만이다. 더구나 일부 경찰들이 헬기로 부상자를 이송하던 장소 인근에서 기념촬영을 했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다. 정부의 오만과 공권력의 오만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여당과 정부는 끓어오르는 여론의 분위기를 모르지 않을 터인데도, 안하무인의 행보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유병언 회장을 잡기 위해 투입된 수사관들이 금수원 대강당에서 낮잠을 잔 일, KBS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7·30 재보궐선거 출마설 등이 그것이다. 사실 안하무인의 화룡점정은 문창극 전 주필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것이다. 

6·4 지방선거 후 오만에 빠진 정부와 여당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누리당 윤상현 사무총장과 최경환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야기 나누는 윤상현-최경환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누리당 윤상현 사무총장과 최경환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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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지도부는 지방선거 이후 자신감이 붙은 것인지 문 후보자를 두둔하기 바쁘다. "편을 갈라서 매도하고 낙인찍는 것은 후진적인 정치"라는 윤상현 사무총장, "야당과 좌파가 문 후보자에게 친일 딱지를 붙이려고 혈안이 돼 있다"는 하태경 의원까지... 문창극 후보자가 교회 강연 발언을 보도한 모든 언론사에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청와대도 쉽게 뜻을 굽힐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 상황은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 즉 우리가 만들어준 꼴이다. 정부와 여당은 '절반의 승리'라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고 반성보단 오만을 키운 듯하다. 결국 온 국민을, 나라를 비탄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바뀐 건 하나도 없다. 12일 발표된 청와대 인사 내용도 무능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기보다 권력의 재배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또다시 국민들에게 공이 넘어 왔다. 6·4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오만에 빠진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경고음을 듣지 못한 듯하다. 머릿속에 욕심만 가득 차 있을 뿐, 민심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혜안도 없다. 문창극은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가 될 수 없는 인물이다. 당사자가 물러날 생각이 없고, 정부도 지명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면, 국민들이 나서서라도 끌어내려야 한다. 민심의 무서움을 보여줘야 같은 인사참극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도 바꿀 수 있다.

일각에선 문창극 총리 지명을 두고 7·30 재보선 때 두고 보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두고 보자'는 약속만큼 허망한 것도 없다. 민의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정부 여당에게는 성난 민심을 제대로 보여 주어야 한다. 용기가 안 난다면, 담벼락에라도 '문창극은 국무총리가 될 수 없다'라고 고함이라도 지르자.


태그:#문창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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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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