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었다
영화도 음악도 회화도 연극도 마찬가지다. 단지 어떤 서술구조를 가지면서 그것을 관객에게 어떤 방법으로 어필하느냐의 차이이다. 시대적 특이성과 세대의 연속성을 포함한 모든 문명양식은 발달한다기 보다는 변화한다. 변화는 좋은 것이다. 최소한 지루하진 않으니깐 말이다. 그러나 변화란 것이 단순한 과거의 답습이라면 이는 정말 관객에게 외면을 받을 뿐, 예술성으로도 오락성으로도 환영받지 못한다.

예고편만으로도 기대감 충만한 영화! 그러나 기대감이 물거품으로 돌아오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웬만한 영화는 참을성 있게 보는 편인데, 영화 종반까지 지켜보며 배우들의 열연과 개런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때는 멀지 않은 미래

톰 크루즈와 에밀리 블런트의 타임 루프 액션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 클리어의 반복은 엄청난 개런티와 제작비를 B급 영화로 만들어 버렸다.

▲ 톰 크루즈와 에밀리 블런트의 타임 루프 액션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 클리어의 반복은 엄청난 개런티와 제작비를 B급 영화로 만들어 버렸다. ⓒ 김승한


미믹이라는 외계인의 침공으로 전 유럽이 외계인의 손아귀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곳은 프랑스 앞바다 도버해협 너머 영국뿐!

이로 인해 전 세계는 유럽을 구하기 위해 군사력을 한데로 모으려 고군분투중이다. 또한 최후의 수단으로 영국 런던에서는 유럽으로 들어가는 교두보인 프랑스로 진격하기 위해 대규모 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때 미군의 공보담당 소령 톰 크루즈(케이지)는 영국 런던에 있는 군부대 사령관과 상륙작전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도중 명령불복종에 의해 강제로 사병으로 징집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프랑스로 상륙작전을 준비 중인 J분대에 배치 받게 되는 상황. 그리고 바로 이튿날 20세기 초 가장 거대한 전투였던 노르망디 상륙잔전을 연상케 하는 대규모 상륙작전에 동참하게 된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타임 루프에 갇힌 톰 크루즈, 그와 함께 외계인의 본거지를 찾아내 박살내려는 여전사 '리타'역의 에밀리 블런트

▲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타임 루프에 갇힌 톰 크루즈, 그와 함께 외계인의 본거지를 찾아내 박살내려는 여전사 '리타'역의 에밀리 블런트 ⓒ 김승한


그는 비록 군인이며 소령이라는 계급을 갖고 있었지만 전쟁보다는 과거 광고회사를 경영했던 입담을 살려 많은 젊은이들을 전쟁에 참여토록하고 후방에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군인이다. 이러한 그가 일반 사병들과 함께 전장에 강제로 참여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상황이 난감하게 되었다. 전투 슈트의 안전장치 해제도 모르고 기본 전투지식이나 싸움에 대한 훈련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최강의 적을 만나게 된다.

결과는? 적지에 상륙하자마자 당연하듯 외계인과의 싸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외계인들은 타임 루프에 의해 시간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상륙작전과 전술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외계인에게 죽임당하기 전에 잠시 그가 보았던 장면! 이 영화의 전개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전쟁 영웅인 여전사 에밀리 브론트(리타)의 외계인과 짧은 전투와 죽음이다. 그리고는 꿈에서 깬 듯 다시 전투 전 날의 J분대로 들어가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후 영화는 일종의 게임처럼 죽음과 미션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 구조가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가장 커다란 장치이며, 이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최근 개봉된 '엣지 오브 투모로우'와 1997년에 개봉된 '너바나' 비교해 보자면 두 영화 모두 게임 속의 인물을 그린 듯하다. 너바나에서는 좀 더 노골적으로 게임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고뇌를 표현했고, '투모로우'에서는 톰 크루즈가 겪는 타임 루프 현상 자체가 인간의 존재를 게임에 종속된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다.

▲ 최근 개봉된 '엣지 오브 투모로우'와 1997년에 개봉된 '너바나' 비교해 보자면 두 영화 모두 게임 속의 인물을 그린 듯하다. 너바나에서는 좀 더 노골적으로 게임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고뇌를 표현했고, '투모로우'에서는 톰 크루즈가 겪는 타임 루프 현상 자체가 인간의 존재를 게임에 종속된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다. ⓒ 김승한

이는 지난 1997년에 개봉되었던 이탈리아 영화 '너바나'와 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다. 영화 '너바나'는 컴퓨터 게임의 주인공이 반복되는 게임의 미션의 실패와 성공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게임 조종자에 의해 움직이고 그의 능력치에 따라 죽고 살게 되는 초라한 운명, 그리고 전기적 신호에 의해서 존재하는 현실과 비현실간의 가치에 의문을 던지는 영화이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 역시 강제로 전장에 투입되었던 '케이지'는 마치 게임의 주인공처럼 적과 전투 중에 죽으면 다시 클리어 되어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단지 '너바나'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케이지'는 스스로 게임(전투)을 하며 미션을 실패할 것 같으면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택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미션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좀 더 능동적 게임 주체라 할 수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게임의 주인공이 스스로 전투를 하며 레벨을 올리고, 미션 클리어를 위해 본인이 죽음과 미션을 선택하는 것이다. '케이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미션 실패와 클리어를 반복하게 되고 그의 전투력은 수십 배의 레벨로 향상이 된다. 그리고는 드디어 미믹이라 불리는 이 외계의 정체에 대해 더 가까이 접근하게 된다.

외계 생명체의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뜻이 가지는 것처럼 '케이지'가 시간의 처음과 나중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기에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미션이 끝날 수 있었다. 뒤집어 보면 영화 '너바나'의 깊은 주제를 아주 단순화시켜 한 단계 더 나아갔다고 볼 수도 있다. '너바나'는 힌두어로 열반, 해탈이란 뜻이다. 윤회라는 죽음과 탄생의 시간의 반복에서 오는 피곤함을 벗어나 너도 나도 아닌 우주 창조의 원리 그 자체인 '브라흐마'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수백 번의 죽음을 거쳐 외계인 '알파'와 '오메가'를 처치한 '케이지'와 '리타'는 그동안 인간이 거스를 수 없었던 시간이란 차원을 벗어난 진정한 인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타임 루프에 갇힌다는 설정은 뻔 한 구조일수도 있지만, 영화의 시작점에서 얼마든지 다양한 주제들을 포섭하며 관객을 몰입시키게 만들 수도 있는 키이다. 그러나 '너바나'와 같은 고민을 기대했다면 이 영화는 실패다. 관객에게 절박함을 주지 못했다. 또한 단순한 오락영화로 만들었다해도 그리 후한 평가를 주긴 힘들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력과 화려한 그래픽, 치열한 전쟁의 파편과 메가 블록버스터 급의 액션은 볼거리로서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영화 중반에서 종반으로 넘어갈수록 좀 더 깊은 주제나 방향성의 변화없는 일관된 내러티브는 너무 지루하게 보여진다. 미션 종료를 위해 반복되는 죽음은 갈수록 진중함이 사라지고, 중반까지 중요한 무언가를 던져줄 듯 하다.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 예전 스필버그 제작 '톰 크루즈' 주연의 '우주전쟁'과 흡사하다.

과거 톰 크루즈가 보여줬던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혹은 '바닐라 스카이', '아이즈 와이드 셧', '7월 4일생', '라스트 사무라이' 등은 관객의 호불호라든지 쟝르구분이 확실했다.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단순한 오락영화도 있었고, 인간의 존재와 미래에 대한 진지한 존재의식을 던진 영화 등도 있었다. 그러나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코미디도 진지함도 모두 잃어버린 평범한 B급 영화로 전락했을 뿐이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 너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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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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