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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지방선거날인 4일 오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서울 신문로 선거사무소에서 개표방송을 시청하며 지지자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 환호하는 조희연 후보와 지지자들 6.4지방선거날인 4일 오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서울 신문로 선거사무소에서 개표방송을 시청하며 지지자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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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도 4% 짜리야. 절대 안 돼. 민주진보 단일후보면 뭘 해. 누가 조희연을 알아? 이러면 선거 져. 빨리 새 후보 구해서 전면에 다시 세워야 돼. 이러다 서울교육감 선거 망한다."

정치에서 잔뼈가 굵은 이른바 민주계 '여의도 정치공학도'들은 초장부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를 '디스'했다. 민주진보진영 단일후보로 선정됐어도 유권자들이 조희연이 누군지 모르기에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민주사회를위한교수협의회(민교협) 의장 출신인 조희연은 '숨은 자'였다.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MBC <100분 토론> 같은 프로그램에 가끔 얼굴을 내비쳤어도 단박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선거 초반 그의 명함을 돌리면 '이 양반은 누구시더라?' 하는 분위기가 많았다고 선거 캠프 관계자는 전했다.

사회학자로서 현실을 잘 아는 조 당선인은 자신이 꼭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는 "조희연은 자신이 뭐가 돼야 한다는 생각보다 일의 방향을 먼저 고민하는 사람"이라며 "이번에도 자신보다 더 나은 후보를 찾고나 노력했다"고 전했다.

조희연은 왜 핸드폰을 끄고 도망 갔나

실제 그는 지난 3월 3일 공식 출마선언을 하기 이틀 전까지 출마 준비 대신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을 기획했다.

조 당선인은 1978년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9호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반독재 시위에 가담했다가 구속됐다. 2013년 3월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같은 해 7월,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는 조 후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법원의 무죄 판결로 받은 보상금 5000만 원 전액을 아시아 시민운동가를 위한 기금으로 내놓고 '아시아 민주주의 지원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올 봄, 조 당선인과 함께 '아시아 민주주의 운동'을 벌일 계획이었던 이성훈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는 "잘 판단하셨으면 좋겠다"는 말로 출마를 만류하기도 했다. 1994년 참여연대 창립 당시부터 조 당선인과 함께한 전직 시민운동가는 "정치에 발을 딛는 순간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신의마저 잃게 되니 출마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출마를 반대했다. 

조희연도 자신이 서울시교육감 후보 하마평에 오를 때마다, 다른 대안(후보) 찾기에 골몰했다. 평소 시민운동을 해왔던 방식대로 '유능한 진보교육감 후보 찾기'에 몰두했다. 현직 민교협 의장으로서 교육계를 대표해 자신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는 민주진보 진영 내의 여론이 컸지만 그는 계속 뒤로 숨었다.

출마 압박이 거세지자 그는 아예 휴대전화기를 끄고 도망치듯 잠적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사회에 잘 알려진 진보적 교육계 인사들을 접촉해 그들의 출마를 타진했다. 자신을 대체할 다른 후보를 마련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조 당선인이 만난 진보적 교육계 인사 가운데는 이름 높은 젊은 법학자와 국가인권위원회에 몸담았던 전직 관료이자 연륜 깊은 인사도 있다. 여성부 장관을 지내고 대학총장을 역임한 여성운동가도 있고, 현직 사회학자이자 청소년운동가로 이름 높은 유명 대학 여성 교수도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 관련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현직 대학교수도 그 중 하나다. 이밖에도 많은 인물을 '서울의 진보 교육감' 후보군으로 올려놓고 그는 전화를 돌리고, 직접 만나 의사를 타진했다.

결과는 전부 'NO'였다. 이유는 갖가지였다. 아예 출마할 생각이 없다는 의견부터 선출직 출마는 곤란하다는 고사, 경선을 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수락할 수도 있다는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여러 사람들에게 '잔'을 계속 돌렸지만 그 잔을 선뜻 받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지난 3월 진보교육감 예비경선 때만 해도 당선 가능성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인지도가 높아 진보 교육감으로 본선 경쟁력이 있는 인물들이 전부 고사하면서 조 당선인에 대한 출마 압박은 더 거세졌다. 당시 그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며 "이러다가 진보 쪽은 교육감 후보도 제대로 못 내고 선거 치르게 생겼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박석운 대표는 4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전교조 출신으로 서울교육감 선거를 돌파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지난번 이수호 선생님을 통해 확인됐다"며 "본선 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민주진보 예비경선에 조희연이 출마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에서 인지도는 중요한 게 아니다"며 "(조희연은) 굉장히 인지도는 낮지만 그래도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던 이유는 대학교수 출신으로 일평생 학술운동, 교육운동, 시민운동, 인권운동을 해온 그의 이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둘째 아들이 쏘아올린 감동의 역전 드라마

6.4지방선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부인, 아들 둘과 함께 선거운동인 마지막날인 3일 오후 서울시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강남과 강북 사이의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며 지지를 호소했다.
 6.4지방선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부인, 아들 둘과 함께 선거운동인 마지막날인 3일 오후 서울시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강남과 강북 사이의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며 지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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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인지도는 실제 선거운동 내내 악재로 작용했다. 급반전은 그의 둘째 아들 조성훈씨가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쓴 편지글에서 시작됐다.

조씨는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아버지가 고생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이름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고자 외람됨을 무릅쓰고 이렇게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게 되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냉정하게도 선거의 세계는 아버지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며 "턱없이 낮은 아버지의 인지도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조씨는 또 "차라리 조희연 후보의 비전이 널리 알려진 후에 유권자에게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간으로서의 조희연은 고통 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를 어느 순간에서나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제가 20년이 넘게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지켜온 바로는, 다른 것은 모르지만 적어도 교육감이 되어서 부정을 저지르거나 사사로이 돈을 좇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의 글은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됐다. 게재 나흘 만에 조회 건수는 무려 30만을 돌파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특히 각급 학교 학부모 운영위원회, 학년별, 학급별 학부모 단체 대화방엔 '조희연 아들 글'이 계속 퍼졌다.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학부모는 "조희연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들의 편지로 감동을 받았다"며 "우리 반 엄마들은 대개 그를 찍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고승덕 후보의 딸 캔디 고씨의 "우리 아버지는 서울시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폭로와 대비되면서 가족에게 인정받는 교육감 후보로 널리 알려졌다.

실제 조 당선인은 공식 후보로 등록한 지난달 15일 공표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4.1%의 지지율로 꼴찌를 기록했다. 차츰 조 당선인의 정책과 공약이 알려지면서 지난 5월 29일 <조선일보> 조사에서는 17.4%로 껑충 뛰어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1위 후보와는 10%p차로 큰 격차를 보였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 총집결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어보이며 조 후보를 응원하고 있다.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 지지자 '사람이 먼저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 총집결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어보이며 조 후보를 응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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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인지도 낮은 조 당선인이 아들의 글 덕분에 당선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누리꾼들은 조희연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자 "조희연 아들 글, 다시 봐도 감동이네요" "정말 아빠를 위해 큰일을 했네요"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아들 글이 큰 효과를 본 듯하네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운동원들도 조희연과 함께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서울시장은 정몽준, 서울교육감은 조희연"이라며 "이유는 나도 엄마니까"라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희연 당선인은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를 통해 "여기 계신 분들은 지난 10여 일 동안 저의 인지도가 4%에서 8%로, 12%로, 16%로, 20%로, 25%로 상승해서 선거를 앞둔 지금 박빙으로, 그래서 압승을 기대하게 해준 분들"이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최대의 감동적인 역전 드라마를 만들고, 그 감동의 역전 드라마가 현실이 되는 것을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당선인의 말대로 '감동의 역전 드라마'는 현실이 됐다.


태그:#조희연, #조희연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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