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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흐리르 광장에 가기 위해 탄 지하철은 오늘도 만원이다. 하긴 언제라도 한산한 적이 있긴 했던가. 내일이면 카이로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쉴 새 없이 부대끼는 옷자락의 느낌도 더욱 정겹다. 내 기억 속의 정 많고 웃음 많은 이집션들의 모습은 아마 이곳에서 만들어졌으리라.

감정 표현에 충실한, 화끈한 아랍인들의 성격 때문에 언제나 지하철은 펄떡거리는 생동감이 넘치는 삶의 현장 그 자체다. 누군가는 숨이 넘어갈 듯 웃고, 또 누구는 당장이라도 한대 칠 듯 으르렁거리며 싸운다. 창문은 떨어져 나간 지 오래인지라 그 휑한 창틀에서 지하터널의 탁한 바람이 무지막지하게 들이닥쳐도 오히려 땀을 식혀주니 반기는 듯한 얼굴이 더 많다.

히잡을 두른 여인이 아이의 선물로 보이는 목마를 들고 탔다. 그러다 사람이 점점 많아지자 목마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린다. 나라면 벌써 누군가의 머리 위로 떨어뜨렸을지도 모르는 무거운 목마를 그녀는 강인한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목마는 여러이들의 손에 받쳐진 채 한참을 달렸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목마는 여러이들의 손에 받쳐진 채 한참을 달렸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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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여인네들의 머리 틈바구니 속에서 손이 하나씩 쑥 올라오더니 목마의 여기저기를 잡는다. 히잡 아래로 땀을 흘리던 그 여인이 다른 이들을 향해 웃는다. 눈인사를 받은 손가락의 주인들도 마주 웃는다. 타인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낯선 이를 돕는 사람들. 시골 외가댁에 갈 적마다 내가 숱하게 보았던 한국의 그 정(情)이 이곳에도 살아 숨 쉰다. 내가 이집트를 내 나라만큼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아마 이곳에서 정을 느꼈기 때문 아니었을까.

나를 울게 한 그곳, 타흐리르

혁명 후 달라진 풍경의 타흐리르 광장. 한때 자동차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지나갔다는 게 믿기 힘들 정도로 황량하다.
 혁명 후 달라진 풍경의 타흐리르 광장. 한때 자동차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지나갔다는 게 믿기 힘들 정도로 황량하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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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국만큼이나 진득한 이집트 사람들의 정을 듬뿍 받으며 살았던 나는, 그래서 다시 돌아온 타흐리르에서 울고 말았다. 태양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난 타흐리르 광장의 모습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나를 덮쳤다. 이집트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해도 여전히 모든 게 그대로라고 생각했건만, 대낮의 타흐리르를 보고서야 정말로 모든 게 변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푸른 야자수와 광장 교차로를 쉴 새 없이 도는 차들의 경적 소리로 가득한 내 기억 속 타흐리르 광장은 더 이상 없었다. 혁명의 열기와 군중의 분노, 수십 년 독재정치의 붕괴 후에 밀려들어온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다시 시작된 새로운 정권에 대한 저항. 그 모든 희로애락을 넘어왔고, 앞으로도 이집트의 역사를 지켜볼 타흐리르 광장은 길었던 지난 시간만큼이나 짙고 무거워진 공기를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총알이 빗발친 흔적이 가득한 타흐리르 광장의 한 건물.
 총알이 빗발친 흔적이 가득한 타흐리르 광장의 한 건물.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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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하지 않은 듯 울퉁불퉁 엉망인 아스팔트 바닥은 격렬하고도 지난하게 이어져온 지난 몇 년간의 역사의 적나라한 증거 같았다. 깨어진 병과 각종 파편들, 핏자국 같아 보이는 얼룩도 더러 보였다. 카이로에서 가장 북적이던 교차로를 정리하던 신호등은 제 역할을 잃고 빛을 잃은 채 서 있었다.

우리는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제 할 일을 잃은 신호등에는 찢어진 현수막 같은 게 걸려 흔들리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헝겊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형상이었다. 지독하게 곪아버린 기득권의 부패와 정치세력의 횡포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긴 채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도 인형이나마 심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한 때 이나라에서 가장 붐비던 광장을 정리하던 신호등은 교수대가 되어 덩그러니 서있었다.
 한 때 이나라에서 가장 붐비던 광장을 정리하던 신호등은 교수대가 되어 덩그러니 서있었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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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거리의 화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혁명 이후 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건만 여전히 이집트를 둘러싼 혼란의 끝이 언제일지는 알라도 모를 것 같았다(알라는 신의 이름이 아니다, 아랍어로 알라는 '유일신'을 뜻하며 한국어로 '하나님'과 같은 뜻이다). 신호등에 매달린 섬뜩한 인형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이집션 사내들 세 명이 다가와서는 얼굴에 그림을 그려주겠다 했다. 괜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 됐다고 하니 공짜라며 다짜고짜 붓을 얼굴에 갖다 댄다.

"우리도 원래 여기서 그림을 그리던 건 아니었지."

열심히 붓을 놀리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슈퍼 주인이었다고. 이 친구는 대학생이고 여기 이 친구는 번듯한 직장도 있었지.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데모를 해도 나아지는 건 없었어. 세상이 바뀌나 싶다가도 오히려 먹고 사는 일은 더 고달파졌지. 나는 가게 문을 닫고, 저 친구는 직장에서 잘려서 빵값이라도 벌어보려고 나온 거야. 이 총각은 친한 친구가 시위 중에 정부군한테 맞아 죽었거든. 그 후로 학교 대신 여기로 통학을 해."

이집트를 사랑한다는 말에 그들은 하트 모양의 이집트 국기를 그려주었다.
 이집트를 사랑한다는 말에 그들은 하트 모양의 이집트 국기를 그려주었다.
ⓒ Iv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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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집트의 경제 상황이 30년 전 수준으로 퇴화됐다고도 말했다. 직장을 잃고 기본적 의식주를 유지하기조차 위태로운 이들이 더러 강도가 돼 관광객과 가게들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도시 전체에 불신이 깃들고 그렇게 사람들 간의 인심은 메말라갔다.

불과 몇십 분 전에 보았던 지하철 안에서의 정겨움 모습들은 꿈속 장면이었을까. 그래도 여전히 이 나라 곳곳에서는 삶이 계속된다. 누군가가 싸우고 남의 것을 탐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웃고, 사랑하고, 가진 것을 나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이 바짝 말라가고 있는 여기에서 아직은 남아있는 희망을 본다.

그림으로 타흐리르에 남은 사람들

벽화의 시작점인 담장 모서리에 적혀진 글귀. 각종 언론과 소셜 네트워크를 통제하려 들만큼 진실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했던 정부를 비꼬는 말이다.
▲ "정부여, 너는 펜과 붓을 두려워 하는구나!" 벽화의 시작점인 담장 모서리에 적혀진 글귀. 각종 언론과 소셜 네트워크를 통제하려 들만큼 진실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했던 정부를 비꼬는 말이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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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C 대학 담장을 따라 이어진 벽화들
 AUC 대학 담장을 따라 이어진 벽화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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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AUC(카이로 아메리카 대학) 건물을 둘러싼 2~3미터 남짓한 담장을 따라 걷기로 했다. 벽 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그림들이 뒤덮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사람들의 얼굴 그림이다. 오래지 않아 나는 곧 벽화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지그시 감은 눈과 얼굴 뒤에 함께 그려진 날개 혹은 머리 위의 금띠. 이 광장에서 죽어간, 이제는 세상에 없는 이들을 기리는 벽화들이었다.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벽 위에 빼곡히 그려진 이들의 수만큼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나는 휘청거렸다. 그 그림이 하나하나 물밀 듯이 가슴에 와 박혔다. 그들은 벽 위에 크게 두 가지의 모습으로 새겨진 듯했다. 사랑하는 이들이 기억하는 환한 웃음으로, 혹은 그들이 숨을 거뒀을 당시 모습 그대로.

천사가 되어 타흐리르 벽에 남겨진 희생자들.
 천사가 되어 타흐리르 벽에 남겨진 희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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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희생자 중에는 죄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수많은 희생자 중에는 죄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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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환한 미소가 눈에, 가슴에 박혔다. 곧 갓난아이들의 잠든 듯한 얼굴이 들어왔다. 그리고 처음엔 단순히 일그러진 줄만 알았던, 형태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참혹한 얼굴로 숨을 거둔 이들의 얼굴까지 보고 나자 주체할 수 없이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들은 정말로 저렇게 죽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그중에 누군가는 내 친구의 가족일 수도, 혹은 먼 친척일 수도, 하다못해 한 번쯤 나와 옷깃이 스쳤을 누군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차올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삶의 한 귀퉁이가 뚝 떨어져 나가는 듯한 절망감과 무력감 그 자체라는 걸, 그들의 아픔이 오롯이 내 것처럼 밀려들었다.

그들은 정말로 이렇게 죽었다. 그렇게 타흐리르의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사람들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보게 했다.
 그들은 정말로 이렇게 죽었다. 그렇게 타흐리르의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사람들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보게 했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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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색으로 칠해진 강렬한 그림들은 그 고통마저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원색으로 칠해진 강렬한 그림들은 그 고통마저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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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뚝뚝 떨어져 마른 바닥에 자국을 남겼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눈물이 뿌려졌을 땅인지.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 하늘은 붉게 물드는데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내 기억 속 타흐리르 광장은 벽화들과 총 자국 가득한 건물의 모습들로 바뀌어 버렸다. 부디 다음에 다시 이집트에 왔을 때는 좀 더 많은 희망을 볼 수 있기를. 타흐리르(해방)라는 이름에 걸맞게 슬픔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눈물로 적셔진 땅에서 희망의 싹이 피어나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랐다.

경찰이 누군가를 폭행하는 그림 밑에는 아랍어로'고문없는 국가'라고 쓰여있다. 평화를 소망하는 이집트 인들의 마음이 보였다.
▲ 고문없는 나라. 경찰이 누군가를 폭행하는 그림 밑에는 아랍어로'고문없는 국가'라고 쓰여있다. 평화를 소망하는 이집트 인들의 마음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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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후 타흐리르 거리 곳곳에는 '독재자는 그만'이라는 스텐실이 여기저기 새겨져있다.
▲ 독재자는 그만 [NO DICTATOR] 혁명 후 타흐리르 거리 곳곳에는 '독재자는 그만'이라는 스텐실이 여기저기 새겨져있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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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더 많은 타흐리르 광장의 모습은 개인 블로그 www.blog.naver.com/sanseul6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아랍의 봄, #가다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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