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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직전에 맞았던 주사제.
 바로 직전에 맞았던 주사제.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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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자면 안 돼?"
"지금도 늦었는데..."
"아직 6시 30분밖에 안 되었는데, 조금만."

나는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준비하기 바빴다. 다른 병실의 사람들과 간병인이 하도 부지런해서 조금만 늦으면 공동세면장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오늘은 아침 일찍 일산 국립암센터에 검사를 가는 날이라 늘 이렇게 서둘러야 한다. 특히, 아내는 오전에 거의 움직이기 힘들어 쩔쩔매는 신경과 환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는 '패스'를 할 수 있을까?'

그 바쁜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영어 단어인 '패스(pass)'를 떨치지 못하고 뱅뱅 돌린다. 마치 저글링하고 있는 사람처럼 바닥에 내려놓지 못하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그러고 있다. '패스'라는 이 단어는 정기적으로 피검사를 해 온 아내가 다발성경화증의 재발위험 수치를 확인한 후 수치가 낮으면 나오는 말이다.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이 병원을 다녀온 후 며칠 이내에 진단 결과를 통보 받았다.

"야호! 이번에도 '패스'다!"

이건 면역기능 림프구 수치가 낮게 조절되고 있어서 재발 위험이 없고, 항암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기쁜 소식이다. '패스!' 이 말 한마디에 200만 원에 가까운 돈도 준비를 안 해도 된다. 또, 주사를 맞느라 5시간 정도 침대에 누워 있는 고생을 안 해도 된다.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너무너무 좋은 단어다.

물론 대충 예상은 한다. 그렇게 두 번, 혹은 세 번 정도 건너면 거의 피하지 못하고 또 표적치료제인 항암주사를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내도 거의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더욱 조마조마하다. 지금 내 전 재산은 다 털어봐야 100만 원 남짓하다. 그것도 한 달쯤 전 막내딸이 받은 '2014년 전반기 장학금'까지 다 보태서 말이다. 우리는 이런 생활을 벌써 7년째 하고 있다. 마음 졸이며 말 한마디에 환호를 지르거나 한숨을 푹 내쉬는...

"이번에는 넘어가기 힘들겠지?"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꼭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미안하네. 나 때문에..."

아내는 그럴 때마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면 나는 또 늘 그런다. '기운 내! 다 내가 준비할 거니까 걱정 말고 나만 믿어!'라는 말을 녹음기처럼 하고 산 지도 7년째.

KBS1 <강연100℃> 출연 섭외, '패스' 못 하면 일정 꼬이는데...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거나 꿈을 이룬 사람들의 강연 프로그램. 우리는 비록 진행중이지만 '고통과 고통 사이'라는 제목으로 잘 견디는 보통사람들의 삶을 강연했다. 6월29일 방송예정
▲ KBS1 <강연100도씨> 출연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거나 꿈을 이룬 사람들의 강연 프로그램. 우리는 비록 진행중이지만 '고통과 고통 사이'라는 제목으로 잘 견디는 보통사람들의 삶을 강연했다. 6월29일 방송예정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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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예! 괜찮습니다. 어느 곳인가요?"
"여기는 KBS1 <강연100℃>라는 프로그램인데요.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책 내신 김재식 선생님이시지요? 출판사에서 연락처를 알려주셨습니다."
"아! 연락받았습니다. 전화 올 거라고..."

그렇게 섭외가 왔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리고는 다시 두 주 정도 지나서 이번에는 세 사람이나 청주병원까지 내려왔다. 작가 두 분과 담당 피디까지. 녹음기를 틀어 놓고 한 분은 속기사처럼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노트북에 쳤다. 무려 3시간 가까이나 걸린 인터뷰였다. 또 며칠 후, 이번에는 촬영 팀 두 분이 병원으로 와서 촬영하고 갔다.

"예? 언제라고요?"
"5월 28일, 오후 4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녹화는 아마 밤 10시쯤 끝날 겁니다."

검사를 위해 병원에 다녀오기 일 주일 전에 방송 섭외가 들어왔었다. 그리고 강연 녹화 날은 병원 다녀온 후 일 주일 뒤로 잡혔다. 만약에 검사 결과가 '패스'가 아니면 항암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가야 하는 날과 거의 겹쳐 버린다. 이쪽도 저쪽도 미루거나 취소할 수가 없는 일이다.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런 걱정 중에 문자가 왔다.

- 안정숙 환자님. 이번 검사에서도 수치가 낮게 조절되어서 다음 정기 검사 때 만나 뵈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걱정하고 애태우던 '패스' 문자가 왔다.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내에게도 보여주며 '고맙다. 수고했다!'하며 하이 파이브를 했다. 사실 환자가 애쓴다고 오는 결과도 아니지만, 이번에는 특히 비용이나 시간 때문에 마음을 졸였던 참이라 더욱 더 고마웠다. 평생 이렇게 살 생각을 하면 이게 웃을 일이 아니고 비통하고 원통할 일이지만, 덕분에 일정이 좀 편해졌다.

아마도 다음 검사 때는 항암주사를 맞을 진단이 나오리라. 이번이 항암주사를 맞을 확률 80%, '패스' 할 행운이 20%였다면 다음은 맞을 확률이 95%, 건너갈 행운 확률이 아마 5% 미만일 거다. 이 상황이 희귀난치병 환자와 가족들이 감당하고 사는 오늘이다. 하루하루씩 펑! 하고 터지는 폭탄을 안고 다가가는 느낌이다. 흔히들 '희망'이라는 말을 하면 '내일'을 떠올린다. 그 희망이 바람, 기도를 담고 있다면 나의 희망은 '오늘'을 향한다.

"제발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게 해주세요. 온갖 불안과 욕망이 나를 이리저리로 끌고 다니다 저녁 무렵에 내 심신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놓지 않기를..."

왜냐하면, 나의 평생은 늘 '오늘'뿐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오시는 중이신가요? KBS 별관에 도착하시면 연락 주세요. 1층 로비로 내려가서 안내해 드릴게요."

6시간 대기실에 누워서 기다려 준 아내에게 감사할 따름

아내를 돌봐 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 출연자 대기실에서 6시간을 보낸 아내.
 아내를 돌봐 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 출연자 대기실에서 6시간을 보낸 아내.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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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착한 <강연100℃> 녹화장에는 녹화 시작 한 시간도 전인데 방청객들이 많이 왔다. 고맙게도 앉아서 버티기 힘든 아내를 위해 침대까지 대기실에 옮겨다가 놓았다. 그 친절과 배려 덕분에 아내는 오후 10시까지 장장 6시간을 누워서 기다려 주었다. 다른 때에  내가 외출할 경우는 아들이 돌봐주었지만, 이번에는 아들도 시간이 없어 그럴 수가 없었다. 아내를 혼자 병원에 두고 갈 수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가야만 했었다.

세상에는 행운과 꿈을 이룬 성공들도 있다. 시련을 극복하고 더 크게 회복하는 분들도 있다. KBS1 <강연100℃>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다룬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경우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아직도 아내의 병은 진행 중이다. 가족들은 산산이 흩어져 생활하고 있고, 아내와 나는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또, 나는 여전히 몇 달마다 돌아오는 항암주사비 마련에 통장 잔고를 보고 한숨 짓고 있다.

내가 준비한 강연 제목은 '고통과 고통 사이'이다. 그래서 임성훈 진행자가 소감을 물어볼 때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성공한 케이스는 아니지만..."이라고. 고맙게도 임성훈 진행자는 야구처럼 9회 말도 있고 역전도 있으니 용기를 내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의 말은 방송 멘트 이상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진심이 느껴졌다. 나와 아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강연100℃> 팀에게 감사한다. (방송은 6월 마지막 주인 6월 29일 나갈 예정이다.)

녹화를 마치고 오후 10시에 출발, 다시 병원에 도착하니 자정인 12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무척 고단하고 긴 외출이었다.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은 하지 말아야지... '너무 힘들다'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것도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떠올랐다. 지겹고 길어지는 병원 생활에 누군가 부르면 나가고 싶고, 없으면 아내와 모험처럼 외출 외박 계획을 세우곤 한다. 우린 살아있는 사람이고, 선천적으로 끝없이 불안함이 샘솟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밤이 늦었는데도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다시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바깥에 있는 원탁 의자에 앉아 음료수 한 캔을 마셨다. 늦은 시간인데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대부분 잠든 이 시간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점의 바람과 잠시의 자유!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신뢰. 이 바람 중 두 가지 이상이 이루어질 때면 참 행복해진다. 하지만 한 가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내게서 멀어질 때면 슬퍼진다. 부디 내 앞날에 행운이 조금씩 머물러 주기를 빌었다. 뭐 그리 대단한 욕심도 아닌데...

며칠 전에는 서너 명의 공무원들이 병원 직원과 함께 병실로 들어왔다. 대개 이런 상황은 반가운 일보다는 우려스러운 일이 많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신경이 곤두서고 불안해진다.

"안정숙씨가 여기인가요?"

그들은 침상 머리맡에 붙은 이름표를 보고, 서류를 보면서 말을 걸어왔다.

"못 움직이시나요? 걷지도 못하고요?"

몇 달 전 시청에서도 장기 환자 퇴원을 위해 조사를 다녀갔는데 또 그런 종류인가 보다.

"예! 못 걷고 혼자는 생활을 못 합니다."

함께 온 세 사람은 자기들끼리 말을 하고, 한두 가지를 더 물어보고는 다른 환자를 확인하러 옆방으로 갔다. 이러고 나면 한참 동안 마음이 어수선해지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대한민국에서 복지 혜택이나 의료 급여를 받는다는 게 이렇게 속상할 때가 없다. 굴욕감 비슷한 어떤 분노. 이번에는 고통과 고통의 사이에 오는 힘이 아니고 반대로 작은 기쁨과 웃음 그 사이 사이로 오는 고통이다.

부모 노릇 제대로 못 하지만 막내딸이 내민 성적표에 감동

힘을 주는 막내 딸의 성적표.
 힘을 주는 막내 딸의 성적표.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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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거!"
"뭐야?"
"아빠 이런 거 좋아하잖아."

상장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막내딸이 학교에서 친 수학경시대회에서 2학년 전체 1등,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러더니 또 과학경시대회에서는 2학년 중 2등을 했다.

우리는 정말 딸에게 부모 역할을 잘 해주지 못했다. 학원 보내주고 과외 시켜주고 뭐 그런 거는 아예 꿈도 못 꾼다. 다행히 아이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기 입으로 말해주어 위로가 되지만. 기본적인 먹고 사는 생활도 같이 못 해주는 처지다.

"야, 넌 왜 학교 성적표를 안 주는 거야? 성적 가지고 뭐라고 안 할 테니 제발 좀 보자 응?"
"누가 공부 못해서 그러나? 성적이야 잘 나왔지! 괜히 부모님 기대치 올려놓고 시달리기 싫어서 그래. 히히!"
"진짜야? 그럼 앞으로도 기대는 안 할 테니 좀 줘 봐!"

대화인지 독촉인지 주고받으면서도 막내딸은 성적표를 늘 가방에 처박아 놓았다. 그렇게 주지 않으면서 구겨져 버린 성적표를 이번에는 건네받았다. 2학년 중간고사 결과였다. 42명인 반에서는 1등, 2학년 이과 전체에서는 189명 중 2등.

차를 운전하는 도중에 딸의 성적표를 건네 받았는데, 참 고마웠다. 감동을 참느라 애썼다. 등수도 기쁘지만 자기관리를 잘 해나가는 그 마음이 더 기뻤다. 마음 먹고 부모 탓을 하면서 일탈해도 우리는 입도 벙긋할 수 없는 죄가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졸업까지 컨테이너 방에서 고양이랑 둘이서 5년을 보내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병원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작년에는 여성가족부 주관, 청소년해외봉사단에 지원하더니 수백 명 지원자 중 18명을 뽑는 자리에서 1차, 2차, 3차 면접까지 통과해 베트남을 다녀왔다. 11박 12일 '사랑의 집짓기'로, 그러더니 올해는 아프리카 봉사단에 합류해 또 열흘 정도를 다녀오게 되었다. 늘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는 의사가 되었으면 하더니 기어이 가게 된 것이다.

이번에야 잡부나 식사, 설거지 등이라도 보태는 역할이겠지만, 꿈을 향해 가는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다음 걱정은 내 몫이 되었다. 작년 해외자원봉사단은 사회적 배려 선발 5명에 지원하여 합격했기에 비용을 걱정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일정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빚을 내서라도, 어떻게 하든지 망치지 않고 싶다.

늘 주위의 도움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던 딸은 이제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작년 여성가족부 선발 해외청소년봉사를 다녀온 딸은 한달 후 아프리카로 도 봉사를 떠난다. 현수막의 '사람' 글자 아래가 막내 딸.
▲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늘 주위의 도움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던 딸은 이제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작년 여성가족부 선발 해외청소년봉사를 다녀온 딸은 한달 후 아프리카로 도 봉사를 떠난다. 현수막의 '사람' 글자 아래가 막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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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어 오늘까지 이틀 연속 비가 내린다. 누구에게는 쉼과 필요한 비일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픔과 고통을 더하는 빗줄기일 수도 있다. 우리 막내딸 또래의 자녀를 잃어 버린 분들에게는 얼마나 외롭고 쓰라린 빗소리일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고통과 고통, 그 사이 사이로 또 남은 가족들이 있고 작은 기쁨과 웃음 지을 일도 있을 것이다. 없다면 이웃인 사람들이 만들어서라도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생은 오늘뿐이다. 그 귀한 하루, 오늘이 행복해지도록.

창문 두드리며 내리는 비

밤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 창문에 맺힌 빗방울들이 그렁그렁합니다.
간혹은 내 속에 쌓인 게 있어도 울지 못할 때 / 이렇게 바깥에서 울어주면 위로가 됩니다.
그저 바라만보면서 / 후두둑 빗소리에 마음을 맡기면 편해집니다.
그러다 아주 부드럽게 / 소리 없이 같이 울어지기도 합니다.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같이...

덧붙이는 글 | 2014년 5월 후반기 간병일기입니다.



태그:#강연100도씨, #다발성경화증, #희귀난치병,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3시간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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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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