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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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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은 비록 걸식을 해서 아이들을 먹이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까, 그것이 늘 걱정이었다. 아무리 살기가 힘들어도 애들을 잘 키우고 싶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은 못해주지만 사람답게 키워야 하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사람이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남의 것을 훔쳐서는 안 된다. 머지않아 우리도 우리 집을 가지고 궁색하지 않게 살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소선이 밥을 주면서 말을 하면 6살 된 태일이는 엄마 말을 알아듣는지 고개를 끄덕거린다. 말을 알아듣는 정도가 아니라 태일이는 엄마 말이라 면 꼭 지켰다.

참외 하나 놓고 티격태격... 사연 들어보니

어느 날 이소선이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니 태삼이가 참외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태일이와 태삼이는 그 참외를 가지고 티격태격 다투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태일이는 태삼이 손에 있는 참외를 뺏으려고 한다. 태일이는 엄마를 붙들고 저 참외는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소선은 태일이한테서 태삼이가 참외를 갖게 된 사연을 들었다.

태일이와 태삼이는 골목이 집이었으니 늘 길에서 놀았다. 그런데 근처에 있던 참외장수가 조는 바람에 그만 참외가 하나 굴러 떨어졌다. 어린 것들이 얼마나 참외가 먹고 싶었겠는가. 겨우 4살밖에 안된 태삼이는 평소에 엄마가 타일렀던 가르침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 리 없었을 것이다. 태삼이는 주저하지 않고 참외를 주워온 것이다.

이소선은 두 아들이 다투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했지만 가슴속이 쓰라려왔다.

'어린것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굴러 떨어진 참외를 주워왔을까.'

"태삼아,형 말을 들어야지. 아무리 참외가 먹고 싶어도 남의 것은 함부로 가져서는 안 되는거야. 굴러 떨어진 참외는 당연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지, 주인이 얼마나 이 참외를 찾겠냐."

태삼이는 참외를 내놓지 않으려고 했다. 이소선은 이들을 찬찬히 타이르고 나서 참외를 가지고 골목으로 갔다. 두 아들을 앞세우고 참외장수에게 가서 사정 얘기를 했다. 참외장수가 이소선의 애기를 듣더니 아이들을 불렀다.

"허! 그 녀석들 착하기도 하지, 옛다! 이것은 아저씨가 선물로 주는 거다. 착한 아이들은 선물을 받는 법이란다."

참외장수 아저씨는 참외를 깎아서 두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태삼이는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었지만 태일이는 한사코 안 먹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태일아, 남의 것을 훔치거나 주워 먹어서는 안 되지만 이것은 아저씨가 주는 것이니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 먹어야지."

이소선은 태일이의 손아귀에 참외를 쥐어주며 말했다.

"만약에 내가 이것을 먹으면 나중에 태삼이가 또 이렇게 할 것 아니야. 돈 주고 산 게 아니면 나는 안 먹겠어요."

태일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태삼이가 들고 있는 참외까지 빼앗아 가지고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마구 발로 밟는 것이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참외를 먹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태일이가 참외를 밟아버리는 것을 보니 가슴이 저미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아이가 자존심이 있는 것에 대해 흐뭇해했다.

"그래,아무리 배가 고파 먹고 싶어도 남의 것을 훔치거나 주워 먹어서는 안 된다."

도와주지 못해 안쓰러워하는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

이소선의 식구들은 남의 집 대문 앞이나 골목길에서 하늘을 지붕 삼아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갔다. 다행히 그들이 머무는 집 앞의 집주인은 동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집주인이 보기에 이들이 사는 것이 어딘가 남다른 데가 있는 것으로 보았나 보다. 이들이 그 곳에서 산 지도 꽤 되었는데 주인집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이들을 도와주려고 했다.

그 집에는 주인아저씨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태일이와 태삼이에게 참으로 잘 대해주었다. 잠잘 시간이 되면 이이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재워주기도 했다. 학생이 학교에 가고 난 뒤에는 태일이와 태삼이가 그 방에 있을 수 없었지만 학생이 집에 돌아오면 친동생같이 아이들에게 정답게 대해 주었다.

때로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기도 했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인데도 마음 씀씀이가 퍽 착한 학생이었다. 어느덧 학생과도 친하게 되었다. 학생은 이소선한테 어찌하여 이런 처지가 되었는지 몇 번이나 물었다.

"어쩌다 사업에 실패하고 보니 이렇게 어려운 형편이 되었어, 돈 한 푼 없이 친척들을 찾아가서 신세 지기는 싫고 어떻게 해서든지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여 떳떳하게 살려고 해."

이소선은 자세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가 않았다. 사실을 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부모가 걸인이나 다름없다는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소선은 아이들만큼은 억척스럽게 키워나갔다. 삶의 어려움이 심하면 심할수록 배고픔의 아픔이 쓰리면 쓰릴수록 자식들은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다 잡았다.

하루는 집주인 아저씨가 이소선을 보자는 것이었다. 여느 걸식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보았는지 홀대하지 않고 예의를 갖추어서 이소선을 찾아왔다.

"우리 아들이 서울대학 시험을 치려고 하는 날이었지요. 그때 날이 가물어 논에 있는 모들이 말라버렸습니다. 그런데 마침 단비가 내려 우리 논 위쪽에는 물이 가득 찼는데 우리 논에는 물이 차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아주머니가 나타나더니 물고를 파는 것이었습니다. 메말라 형편없던 논이 아주머니 덕택에 물이 찰랑찰랑 넘치는 거예요. 아주 좋은 꿈을 꿨습니다. 아마 금년에 우리 아들이 대학 입학시험에 꼭 합격할 꿈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아주머니 생각은 어떠세요? 만약 우리 아들이 합격한다면 아주머니 덕분입니다."

주인집 아저씨는 자기 집 앞에서 얻어먹고 살아가는 이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표정이었다. 자기 집 앞에서 거지같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데도 귀찮아하지 않고 도와주지 못해 안쓰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태그:#이소선,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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