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첫 방송된 JTBC 월화드라마 <유나의 거리>의 유나(김옥빈 분).

19일 첫 방송된 JTBC 월화드라마 <유나의 거리>의 유나(김옥빈 분). ⓒ JTBC


<서울의 달>이 방영된 건 1994년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2014년의 <서울의 달>'이라는 부제를 걸고, 다시 김운경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JTBC <유나의 거리>가 19일 첫 방송됐다. 무려 2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1990년대 그 시절이나 21세기의 오늘이나 밑바닥 인생들이 사는 삶은 그리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서울 어느 하늘 아래 몸 부대끼며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들의 삶을 질펀하게 그려내는 작가들이 있었다. 특히 <바보 같은 사랑> <내가 사는 이유> <화려한 시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까지의 노희경 작가는 가난이라는 단어에 한 발을 담그고 사는 이웃들의 얼크러진 인생을 영상화시키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언제부터인가 노희경 드라마에서 그 밑바닥 인생의 리얼리티는 점점 그 비중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이제 그의 드라마는 화려하거나 세련된 주택을 배경으로 삼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작가의 삶도 달라졌으니,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달라진 걸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누군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가는 중에도 여전히 그곳에서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에 천착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우리가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김운경이 바로 그 사람이다.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사람들, 20년 지나도 여전해

 JTBC 월화드라마 <유나의 거리>가 19일 첫 방송됐다.

JTBC 월화드라마 <유나의 거리>가 19일 첫 방송됐다. ⓒ JTBC


굳이 예고편에서 <서울의 달>의 홍식(한석규 분)과 <유나의 거리>의 유나(김옥빈 분)가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극 중 배경인 유나가 사는 다세대 주택이 등장하자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 예전 흥식이 살던, 아니 언제나 김운경 작가의 작품에 익숙하게 등장하곤 했던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 동네가 말이다.

김운경 작가의 세계에서는 늘 집주인이 갑이다. 서울 하늘 아래 겨우 방 한 칸 얻어 사는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그들이 김운경의 세계에선 재벌 회장님만큼 유세가 대단하다. <유나의 거리>에서도 다르지 않다. 유나의 집주인 한만복(이문식 분)과 그의 아내는 이층 방에 세 들어 살던 여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황에서도 집주인의 이해관계를 내세우며 그녀가 염치가 없다고 투덜거린다. 이런 식이다.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을 아랫사람 부리 듯하며, 갑으로 행세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뭐 그리 나아보이지도 않는다. 당장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를 슬쩍하는 소매치기들을 소매치기 하는 유나가 드라마의 처음을 이끌듯, <유나의 거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조폭 출신에 피눈물도 없어 보이는 집주인의 한만복에서 부터 형사 출신에 하도 돈을 밝혀 '걸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봉달호(안내상 분)까지 저마다 한 구석에 구린 냄새를 풍기며 그 세계를 이뤄간다.

물론 구린 냄새만이 그들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냉큼 죽은 여자의 노트북을 챙겼으면서도, 안타까운 죽음을 한 그녀를 위해 향을 피워주고 술을 따라주는 홍계팔(조희봉 분)처럼 푸근한 사람 냄새 또한 그들의 또 다른 면이다. 일찍이 <서울의 달>의 제비족 박선생(김용건 분)과 미술 선생(백윤식 분)처럼 말이다.

서울 하늘 아래 발붙이고 살기 위해, 눈앞의 이익을 위해 파렴치하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또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을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이 김운경 작가가 1990년대에도, 그리고 2014년에도 그려내고자 하는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이다.

사실 <유나의 거리>는 새롭지 않다.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구도는 <서울의 달>의 그것과 흡사하고, 주인공 유나의 설정은 이미 작가가 <도둑의 딸>을 통해 써먹었다. 등장인물들은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지고 등장하지만, 작가 전작들의 그 누군가가 느껴진다. 남자 주인공 김창만(이희준 분)에게서는 <서울의 달>의 춘섭(최민식 분)이 떠오르고, 유나는 그 시절 홍식 같기도 하다.

아니, 창만과 유나의 관계는 <서울의 달>의 홍식과 영숙(채시라 분)의 관계가 역전된 듯하다. 어찌 보면 자기 복제 같은데, 그 자기 복제를 모처럼 보니 새삼스레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유나의 거리>의 첫 회를 보면서 2014년에도 여전한 그 세계가, 아니 여전히 그 세계의 이야기를 뚝심 있게 전해주는 김운경 작가가 어쩐지 반갑다. 늘 넉넉하고 화려한 드라마 속 인물들에 길들여지다 보니, '아직도 저런 세계가 있었지'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조차 느껴진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 삶의 언저리의 저 이야기들을 과연 상류사회의 에스컬레이팅을 시도하던 사람들의 농염한 사랑 이야기 <밀회>를 즐기던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도 해보게 된다. 늘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던 입맛으로 모처럼 시장통의 순댓국을 맛보게 되는 느낌이랄까, 부디 <유나의 거리>가 푸근한 옛 맛의 향수를 넘어 이 시대의 소문난 맛집으로 등극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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