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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독특한 무속 신앙이 살아 있는 신화의 보고이다.
▲ 바닷가에서 마주친 작은 신당 제주는 독특한 무속 신앙이 살아 있는 신화의 보고이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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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제주는 나에게 미지의 섬이었다. 오래전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신화를 전공하기로 결심했었다.

"우리나라 신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무속신화입니다. 무당들이 부르는 신화란 말이죠. 그리고 신화가 가장 잘 살아 있는 곳이 제주도입니다."

제주도가 고향인 한 선배는 제주의 각 동네마다 당집이 있고, 모시는 신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주에서 모시는 신들의 숫자는 무려 1만8천여 명이었다. 심방이라 불리는 무당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난생 처음 제주말로 쓰여진 무가 구송집을 보니, 이건 완전히 제2외국어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심방은 아주 낮선 말로, 제주인들의 삶을, 소원을 노래한다.

옛날에 당집을 짓언 (옛날에 당집을 지어서)
할마님을 모샀는디 (할머니를 모셨는데)
영천 이목사 시절에 (경상북도 영천의 이형상 목사 시절에)
불지더부난 (불태워 버리니까)
그 죄로 사삼사건도 (그 죄로 4·3사건도)
터지였수다 (터졌습니다.)

제주시 외도동의 본향당 본풀이다. 신의 내력을 풀어내는 본풀이는 제주도 신화의 근간을 이루는 무속 서사시이다. 제주의 풍속을 꼼꼼이 그려놓고 기록한 조선시대의 청백리 목사 이형상도 제주인에게는 달갑지 않은 인물이었다. "음사(陰祠)"라는 이름 아래 당집들을 부숴버리고 불태워버렸기 때문이다.

그 죄로 4·3이 일어났다고 하는 심방의 노래가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이렇게 본풀이를 가진 당집들이 제주에 수없이 많다는 사실은 제주를 다시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번 여행에서 꼭 제주의 당집들을 가보겠노라고 말이다.

풍속이 별나고, 음사를 숭상한다

제주 특유의 무덤인 산담. 삶과 죽음의 평안을 위해 모시던 제주의 수 많은 신들을 떠올리게 한다.
▲ 보리밭 너머 보이는 산담의 그림같은 풍경. 제주 특유의 무덤인 산담. 삶과 죽음의 평안을 위해 모시던 제주의 수 많은 신들을 떠올리게 한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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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이 음사를 숭상하여 산 숲이나 내 못이나 높은 언덕이나 낮은 언덕이나 나무 돌에 모두 신의 제사를 베푼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자못 못마땅하다는 듯한 옛 기록이 눈길을 끈다. 이는 고려 때부터 관리들의 불만사항이었다. 고려 문종 12년 문하성은 "탐라는 풍속이 야만스럽고 거리가 멀어 다스리기 어렵기로 소문이 났다"고 보고한다. 신화 연구자들에게는 이런 야만적인 풍속이 곧 별천지가 된다. 거룩하고 신성한 존재가 국가를 이룩하고, 대를 물려 자손을 번창시키는 그런 뭍의 신화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원시적인 것 같으면서도 진솔하고 날 것 그대로인 제주의 신화가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제주도 신화가 나는 좋았다.

옛날에 송씨 한집의 딸이 (옛날 송씨 대왕의 딸이)
빨래를 하여서 (빨래를 하여서)
따듬이를 하다가 (다듬이질을 하다가)
어멍이 딸을  막개로 따려 (어머니가 딸을 방망이로 때려)
죽으난 (죽으니)
어멍은 또시 (어머니가 다시)
그 막개로 자살을 하니 (그 방망이로 자살을 하니)
동닛 사름들이 (동네 사람들이)
열녀라 하여 (열녀라 하여)
본향으로 모시게 됩니다. (본향으로 모시게 됩니다.)

도대체 어머니가 왜 딸을 죽였는지 자세한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그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불화 끝에 불의의 사고로 딸이 죽게 되고, 그 죄책감에 어머니는 자살을 한다. 동네 사람들이 그 불행한 죽음을 위로하고자 죽은 어머니를 열녀라 하고 당에 모셔 신으로 받든다. 커다란 불행과 커다란 아픔을 겪은 이들이 남은 사람들을 감싸준다는, 무섭고도 서글픈 그런 이야기가 제주에는 있었다. 마라도 당에 얽힌 본풀이는 더더욱 한스럽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탑기원 신앙의 한 형태인 제주 방사탑. 관광자원의 역할도 하고 있다.
▲ 제주의 방사탑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탑기원 신앙의 한 형태인 제주 방사탑. 관광자원의 역할도 하고 있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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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 애기 열늬에 (허씨 얘기 열네살에)
알드르 이칫 애기 업개로 가 (알뜨르 이씨집 애기 업저지로 가서)
거기 잠수 서이 (거기서 해녀 셋이)
마라도에 물질을 갔다가 (마라도에 물질을 갔다가)
오월 장마가 되어서 (오월 장마가 되어서)
사흘을 거기 무인지경에 (사흘을 마라도 무인지경에)
천막을 쳐서 눅게 되었는디 (천막 치고 묵게 되었는데)

알뜨르는 일제의 비행기 격납고가 있던 바로 그곳이 아니었던가. 마라도 본향당의 주인공 허씨 애기는 바로 거기서 가까운 모슬포항의 배를 타고 마라도로 물질을 하러 갔을 것이다. 그 먼 곳까지, 업저지를 하면서도 물질을 해야 했던 그녀의 삶이 서글프다. 그러나 험한 날씨 속에 세 명의 해녀는 마라도에 갇히고 말았다.

언제 바람이 잦아질지 불안하던 차에, 허씨 애기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해녀는 꿈을 꾸었다. 웬 산신대왕이라는 자가 꿈에 나타나 열네 살짜리 여자 아이를 섬에 두고 가면 나머지 사람들을 살려주겠다 한 것이다. 두 명의 해녀는 일을 꾸민다. 다음 날 풍랑이 조금 잦아들자 배를 띄우면서 허씨 애기에게는 빨래하여 널어둔 기저귀를 가지고 오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자기들끼리 도망갔다. 혼자 남겨진 허씨 애기는 열나흘을 버티다가 굶어 죽었고, 나중에 가보니 뼈만 남아 있었다. 그 후로 허씨 애기의 영혼은 아미선관 신도본향으로 좌정했고, 마을사람들이 이 당을 잘 위하니 일신이 편안했다고 한다.

가난하고 어린 해녀가 비극적으로 죽었다. 자신이 어찌 해볼 수 없는 죽음이었다. 그런 그녀를 위로하고자 사람들은 또 당을 세웠다. 이런 처절한 삶, 민중의 설움이 절절히 배어 있는 신화가 바로 제주도 신화였다.

예로부터 제주인들은 바다를 의지하고 살았다. 지금까지도.
▲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삶 예로부터 제주인들은 바다를 의지하고 살았다. 지금까지도.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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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신들은 어디에 있나

"신당? 예전에 있었지. 지금은 그냥 일반 가정집에서 해요. 신당 해봤자 잘 안되고 하니까 그냥 가정집에서 한다던데. 왜, 점이라도 보시게?"

장염이 났다. 제주에 온 첫날부터 아랫배가 쌀쌀하더니만, 기어코 탈이 나고 만 것이다. 제주도 오겹살에 '한라산' 소주 파란 병을 반드시 마시겠노라고 다짐하고 왔건만, 술은 근처에도 못 가고 동네 병원을 거쳐 약국에서 약을 짓는 신세가 되었다. 약국 아주머니에게 슬쩍 신당을 물어보았다. 동네에 하나씩 있다니까 어디 있는지 알기만 하면 찾아갈 생각이었다.

"요즘에 신당 가는 사람은… 글쎄. 나도 젊었을 때는 어른들 따라 다녔는데 지금은 안 가요. 새해 첫날에 심방한테 가면 이래저래 한 해 운수도 말해주고 그랬는데, 그게 다 매년 똑같은 말이고. 별로 신통하질 않아요. 그래도 가는 사람들은 아직도 가더라고. 지금은 많이 없어졌어요. 여기 같은 시골에는 쪼그만 교회들이 많이 생겼지. 난 며느리 따라 천주교회 다녀요."

당집을 쉬이 찾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대답에 기운이 빠졌다. 일만 팔천 신이 좌정한다는 제주의 당집들도 혹시 옛날 상황인 건 아닌가? 제주의 신화들도 학자들만 중요하다 여기는 그런 화석이 된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끓었지만, 다랑쉬 오름 앞에서 다리쉼을 하고 있는 동네 할머니를 만났을 때는 마음속으로 '옳다구나' 했다. 좀 더 나이 든 이들에게 당집을 물으면 틀림없이 알려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소박하고 조촐한 송당리 본향당. 금백주 할망, 영원히 제주를 지켜줍서.
▲ 감동의 공간, 송당리 본향당. 그저 소박하고 조촐한 송당리 본향당. 금백주 할망, 영원히 제주를 지켜줍서.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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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 나는 그냥 경로당 다니는데?"

귀가 너무 어두워 당최 말을 알아듣지 못하시는 분이라 대화가 불가능했다. 기왕이면 동네 사람들이 드나드는 일상 속의 신당을 가보고 싶던 내 계획이 잘 되지 않고 있었다. 제주말을 쓰는 심방을 만나 본풀이 한 자락이라도 얻어 들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도 있었건만.

"난 반대야. 무슨 당집이냐고. 애 데리고 꼭 그런 델 가야겠어?"

신랑이 팔짱을 끼고 냉랭히 말한다. 그 말이 왜 안 나오나 했다. 제주도 신화의 그 엄청난 학술적 가치와 문화적 의미도 다 필요없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당집이나 당본풀이는 소름 돋는 귀신 이야기이거나 가까이 하기 싫은 미신일 뿐이었다. 연구를 해도 하필 그런 이상한 것만 연구한다고 허구헌 날 타박을 놓던 친정 엄마와 무속신화 연구하다가 혹시라도 귀신이 씌면 어쩔 거냐고 걱정하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연구자들의 거창한 의미부여와는 달리, 실제 무당들의 삶은 신산함 그 자체이고, 굿이라는 것도 가서 보면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하니 그러한 반응도 무리는 아닐 터였다.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큰 무당들이 예술의전당 같은 곳에서 하는 "공연"은 볼 만하지만, 이름 없는 무당들의 동네 굿판은 왠지 피하고 싶은 미신일 뿐이다. 생활고에 지쳐 돈만 밝히는 무당들도 적지 않고, 대부분의 무당들은 그저 작은 푸닥거리나 할 뿐 큰 굿을 할 엄두도 못 내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나도 물러서기는 힘들었다. 제주에 와서 일주일이나 있는데 당집을 안 가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랑과 실랑이 끝에 표선면 토산리에 있는 여드렛당을 가기로 했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무속신화인 칠성본풀이의 본향인 곳이다. 이른바 제주 뱀신앙이라고 하는, 정말 독특한 제주 여성들의 신앙이 얽혀 있는 곳이었다. 비록 처음 계획과는 무관한 곳이지만, 뭐 어떠랴. 새삼 열정 넘치는 연구자 시절로 돌아가는 듯 싶었다.

제주도 신화는 제주 여성의 이야기이다. 제주도 신화에는 유독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 제주 해녀 할머니의 건강한 모습 제주도 신화는 제주 여성의 이야기이다. 제주도 신화에는 유독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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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주 여행은 4월 20일부터 26일까지 했습니다.



태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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