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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저기 위에 있는 희미씨한테 좀 전해주세요."

1000만 관객이 보았다는 영화 <해운대>의 한 장면이다. 해양구조대원 최형식이, 연인 김희미를 괴롭혔던 건달을 구조하다가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이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전해주며 부탁한 말이다.

최형식은 건달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연결한 자일을 스스로 끊고 바다 속으로 떨어져 죽는다. 영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일이 그 지경에 이른 배경은 간단하다. 철부지 삼수생인 김희미와 그 친구가 건달의 꼬임에 넘어가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시망스러운' 짓을 했던 게 발단이었다.

우리말 중에 '시망스럽다'라는 말이 있다. '아주 짓궂은 점이 있다'는 뜻이다. '짓궂은'의 '짓궂다'는 '남을 일부러 괴롭히고 귀찮게 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 '일부러'라는 말 속에는 또 '악의가 아닌 선의의'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생각이나 의도가 전혀 없는' 혹은 '누군가와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와 같은 뜻이 들어 있다.

그런 일을 일삼는 이들한테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짓궂다'는 말을 갖다 붙인다. '짓궂다'와 '시망스럽다'는 뜻이 크게 다르다. 몸에 해롭거나 위험하니까 해서는 안 된다는데도 굳이 그런 일만 골라서 하는 걸 시망스럽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짓'하는 걸 가리켜 시망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당신이 흔히 볼 수 있는 경고문

어느 바닷가에서 발견한 경고문
 어느 바닷가에서 발견한 경고문
ⓒ 송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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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은 등산로가 없어서 위험하다고, 그러니까 절대로 가지 말라는 표지판까지 세워놨는데도 기어이 들어갔다가 구조 헬기까지 출동시키면서 난리법석을 떨게 만드는 이들이 딱 그런 예다. 위 사진처럼 난간을 넘어가는 (누가 그렸는지 모르지만, 영락없이 낮술 몇 잔에 거나하게 취한 얼굴인) 남자 또한 철부지 어린애처럼 시망스러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추락할 위험이 있사오니 난간을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분명히 적어서 군데군데 표지판을 세워놨는데도 난간을 기어이 타고 넘어가서 종국에는 크고 작은 분란을 일으키는, 그야말로 시망스럽기 짝없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지를 상상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이들한테 이런 경고문이 무슨 소용이 있을가. 사실 이런 경고문은 전국 어디를 가든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이곳은 수심이 깊어 익사할 위험이 크므로 수영을 금합니다
낙석주의 구간
위험! 멧돼지 출몰지역!
바닥이 미끄러우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청소년에게 유해한 게임입니다….

그런 경고문에는 인근 자체단체의 장이나 시설물 안전관리 책임자의 직책이나 이름이 직간접적으로 명시돼 있는데, 거기에는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그림과 같은 '시망스러운' 이들일수록 '시망스러운 짓'을 벌였다가 막상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물어 소송 따위를 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일에 대비해서 '보험'에 가입해 두자는 뜻 아닐까.

'본 시설의 보호 빛 안전관리를 위하여'라니요

어느 저수지에서 발견한 인명구조함
 어느 저수지에서 발견한 인명구조함
ⓒ 송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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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는 고충(?)을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인명구조함'이라고 적혀 있다. 구체적으로는 인명을 구조하는 데 사용하는 어떤 장비가 들어 있는 함이라는 뜻일 것이다. '물에 빠지면 사용하세요'라는 말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앞서 말한 대로 좀 '시망스러운' 짓을 벌이다가 실수로 물에 빠진 사람은 이 인명구조함에 든 장비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그를 구할 때 사용하라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사용하세요'라고 했으니 그 아래에는 구체적인 '사용법'을 적어야 할 것 아닌가 해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웬걸…. '본 시설의 보호 및 안전관리를 위하여 다음 행위를 금함'이다.

'인명구조'는 본질이 아니라는 증거다. 하지 말라는 것만 장황하게 늘어놨다. 본질은 거기 적힌 대로 '시설의 보호'와 '시설의 안전관리'지 '인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구조함에 들어 있는 뭔가는 제대로 작동이나 될지도 의문이다.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여객선에서 단 한 명의 '인명구조'도 못한 까닭이 무엇인지를 바로 이 '인명구조함'에서 찾았다면 좀 지나친 걸까.

그토록 허무하게 부모 곁을 떠나고 만 그 아이들이 대단히 시망스러워서 어른들의 잘못된 안내방송을 무시하고 배 안에서 우르르 뛰쳐나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아이들이 고분고분 착했던 것까지 통탄스럽다.


태그:#세월호, #인명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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