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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인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류희인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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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구제역 대란'이 전국을 강타했을 때, 류희인 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겸 위기관리센터장은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재난 컨트롤 타워의 부재' 문제(관련 기사 : "컨트롤 타워 기능 없인 국가위기관리 제대로 못해")를 강조했었다.

3년 전 이 글에서 '구제역 대란'을 '세월호 사건'으로 바꾸면 현재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침몰사고 대응 실패와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 

예비역 공군 소장 출신인 그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 NSC 창설 때 정책조정담당관으로 청와대에 들어와 2년 뒤인 2000년에 위기판단관으로 위기관리업무를 시작했고,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 NSC 위기관리센터장과 위기관리비서관, NSC 사무차장을 지낸 그는 '범정부차원의 위기관리 지침을 최초로 체계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책임 내가... 모든 수단 투입' 지시 대통령밖에 못 해"

"행정 사회에서 국무총리실은 호치키스 조직이라고 한다. 부처에서 가져온 자료들을 호치키스로 찍어서 종합한다는 의미다.… 재난 상황은 군대로 말하면 전쟁 상황이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모든 부처의, 모든 수단을 투입하시오'라는 지시는 대통령만이 할 수 있다."

지난 8일 서울 시내에서 만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재난대응 컨트롤 타워로 국무총리 산하 국가안전처(가칭) 신설' 방침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다음은 류희인 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겸 위기관리센터장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

-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부 대응은 '구조자 0'으로 집약된다. 셀 수 없이 많은 잘못이 종합돼서 이런 참담한 결과를 낳았는데, 그중 핵심 원인을 딱 하나만 꼽는다면?
"제가 대응에 직접 참여한 것이 아니고 언론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했기 때문에 어떤 평가를 한다는 게 조심스럽다. 그런 점을 전제하고 본다면, 상황인식-판단-조치로 이어지는 현장 대응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선내 진입시도나 탈출지시 방송과 같은 최소 조치가 긴급하게 이뤄져야 했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는 것 아닌가. 1차적으로 상황 인식이 잘못됐고, 그랬기 때문에 조치가 없었다. 조치의 적절성 여부는 그다음 문제다. 왜 최초 상황 인식에 실패했느냐는, 해양경찰의 역량 문제, 재난대응 전문성 문제, 컨트롤 타워 부재 등이 그 배경이 될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재난대응 컨트롤 타워로 국무총리 산하 국가안전처(가칭)를 만들겠다"고 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저는 평소에 부처 차원의 재난안전문제를 포함해 국가 위기관리를 전담하는 조직이나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바람직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정부의 최종조치를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발표된대로 국무총리실 산하의 국가안전처가 정부의 최종적인 컨트롤 타워까지 수행하는 것이라면, 참여정부 이후 국가위기 사안 대응에서 표출되었던 콘트롤타워 관련 문제점들이 그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현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맡은 안행부는 재난문제에 대한 전문성이 약하다.일상적 업무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재난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가안전처가 만들어지면 이런 문제는 나아지겠지만, 컨트롤 타워로서의 기능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국가안전처보다 포괄안보개념의 비상관리처 맞아"

류희인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류희인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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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인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행정 사회에서 국무총리실이 일해 온 형태로는 재난 조정을 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국무총리실에서 제대로 조정권을 행사해온 예가 거의 없다. 제가 지켜봐 온 것으로 이해찬 총리 때가 유일한 것 같다. 대부분 종합을 할 뿐인데, '종합'과 '조정'은 다르다. 행정 사회에서 국무총리실은 호치키스 조직이라고 한다. 부처에서 가져온 자료들을 호치키스로 찍어서 종합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다. 중대 재난은 비상 상황이다. 일상적인 국정운영 차원의 상황이 아니다. 시간을 갖고 조율하는 그런 과정이 아니라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국가적 비상 상황에 대해 신속하고 정확한 상황 판단과 책임 있는 의사 결정이 필요하단 소리다. 군대로 말하면 전쟁 상황인데, 국무총리 실에서 이를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2005년 4월에 강원도 고성 비무장지대(DMZ)에서 산불이 발생한 적이 있다. 그 특성상 DMZ에서 산불은 속수무책이었다. DMZ에서 일어난 불이 급속히 확대되면 남이든 북이든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지만, 군 병력을 철책 남쪽에 배치한 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 NSC 사무처가 나서서, 통일부와 국방부가 북한 당국에 전통문을 보내 소방헬기 투입 의사를 전하고 협조를 요청하라고 지시했다. 동시에 산림청과 해당 지역 군부대는 소방헬기 투입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고, 기대한 시간보다도 이른 시간에 북측으로부터 소방헬기의 DMZ 진입을 수용하겠다는 응답이 왔다. 통일부, 국방부, 군, 그리고 각 행정부처에 바로 이런 지시를 내리는 건 청와대, 결국 대통령 차원에서 할 수밖에 없다."

- 중대본이나 국가안전처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와의 관계 설정 문제인데?
"현재 청와대는 자신들이 재난업무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한다. 재난대응 컨트롤 타워로 국가안전처를 만든다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그런데 재난 분야에 대한 최종적인 컨트롤 타워 기능은 전통적인 안보 분야처럼 대통령이 맡아야 한다.

국가안전처는 부처 차원 업무를 종합하고, 일상 업무로써 재난과 안전 문제에 대한 상황 관리를 전문적으로 맡아서 하는 것이지,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위기상황을 지휘하고 조정하는 것은 역시 청와대 외에 다른 데서는 못 한다. 이번 세월호 사건처럼 국방부 전력 투입하고, 특공대 투입하고 각 지방자치단체 역량 투입해야 하는 신속한 상황 판단과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모든 부처의 모든 수단을 투입하시오'라는 지시는 대통령만이 할 수 있다. 국무총리는 비상상황에서 국방부 전력을 투입하라고 지시 못 한다.

때문에 국가 재난 사태 때 대통령의 의사결정을 지원해줄 조직이 청와대 내에 있어야 한다. 현재 청와대가 하는 얘기를 보면, 지금 청와대에는 그런 조직이 없고 앞으로도 안 갖겠다는 것이다. 위중한 사태의 경우 결국 최종적인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하는데, 아무 지원을 안 받겠다는 것은 전혀 상황 판단도 안 하고 개입도 않겠다는 의미다. 그러면 대통령 비서실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겠나. 비서실은 대통령을 돕는 스태프 조직인데, 재난안전문제에 대해서는 왜 그런 조직을 안 갖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머리, 비상관리처-몸통, 행정부처 등-손발 구조"


- 총체적으로 국가재난안전관리체계는 어떻게 구성해야 한다고 보나.
"우선 국무총리실에다 부처를 총괄하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안전처보다는 국가포괄안보개념하에 국가비상관리처(가칭) 같은 이름이 맞다고 생각한다. 재난업무만이 아니라 전통적 안보에 (에너지·통신·금융·수도 등) 국가기반체계 관련 사항, 을지훈련 등 전쟁대비 훈련, 국가비상기획위원회 업무들을 포괄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젠 전쟁대비 업무 따로. 재난업무 따로 가면 안 된다. 두 분야에 대해 포괄적으로 업무를 하다가 혹시 전시가 되면 자연스럽게 전이돼야 한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보면, 청와대 위기관리센터가 머리, 비상관리처가 몸통이 되고, 중앙과 지역의 관련 행정부처와 소방방재청(육상), 해경(해상), 각 단위 지역자치단체가 손발이 되는 체계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 현장 책임자와 국가안전처, 청와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돼야 하나.
"해수부 산하에 해경이 있고 그 밑으로 지역조직이 있는데, 참여정부 시절에는 지역 단위 해경이 1차로 상급 해경으로 상황보고(상급해경은 해수부로 보고)를 하면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로도 2중 보고를 하게 했다. 현장 책임자가 중대상황이라고 판단하면 2중 보고를 하도록 했는데, 물론 상급조직에서도 청와대로 보고할 수 있다.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이 보고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해당 업무가 가동된다. 당시 지하벙커에는 10개의 전자상황판을 띄울 수 있었다. 이 10개 화면에는 군 작전을 비롯해 산불, 화재, 행사 사고 등등 총 27개 상황을 담아낸 것이다."

- 지금 말한 총체적인 구상대로 조직이 만들어진다면 '구조자 0' 이런 상황은 안 됐을까.
"글쎄, 그렇게 단정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렵고…. 이번에 초기에 언론을 통해서 '전원 구조'라는 말이 나온 게 구조에 큰 교란 요인이 된 것이 사실다. 다만 과거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활동을 반추해보면 대통령에게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몇 번 확인했을 것이다. 관련 매뉴얼을 펼쳐보고, 관련 부처들이 이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지 체크하는 것인데, 청와대에서 이렇게 하면 말단 기관들이 굉장히 빠르게 움직인다. 이런 상황에서 걸러지는 게 많다.

물론 장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데, 세월호도 단순히 상황을 보고받고 끝내는 게 아니고, 점검할 거 하고 필요한 조치 취해지는지 의심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뭔가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해당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지방자치단체가 초기 대응을 맡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모든 위기는 '지역'에서 벌어진다. 서울시 우면산 산사태도 중앙정부가 아니라 서울시가 1차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위기상황에 대한 1차 현장 컨트롤은 지자체가 맡는 게 맞다. 다만 지역 행정기관이 전적으로 맡을 수 있는 사건이 있고, 이번처럼 특수한 경우가 있다. 재난 유형과 상황에 따라 주무 부처가 있는데, 이번 경우는 목포해경이다. 목포해경이 긴급구조에 대한 현장 컨트롤 타워 기능을 맡고, 지자체는 거기에 투입되는 행정 역량을 지원하고 관리해야 한다. 민간 잠수사, 관련 어선 동원 등의 종합적 업무는 지자체가 맡아줘야 한다."

- "국가안전처는 평소 다양한 전문가 집단을 관리하고 있다가 재난 발생시 사고 유형에 부합하는 임무수행팀을 구성해서 한 시간 이내에 현지에 파견해야 하고, 이 팀이 현장 컨트롤 타워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위기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되는 경우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위기는 돌발적이고, 대응할 시간이 짧고, 지속 시간도 짧다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6·25전쟁은 3년이었는데, 그 전 기간이 위기상황이 아니다. 전쟁 직전과 직후가 위기 상황인 것이고, 나머지는 전쟁이 일상인 시기다. 그걸 위기관리라고 하면 안 된다. 이런 속성을 보자면 중앙정부에서 구성해서 현지에 파견할 때쯤이면 이미 긴급상황이 끝나 버린 경우가 대부분일 거다."

☞ 바로가기 : 인터뷰 ②번 기사로 이어집니다


태그:#류희인, #국가위기관리시스템, #세월호 침몰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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