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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에 앞서 알아 두어야 할 것들. 어떻게든 되는 시골 생활은 없다.
▲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표지 귀촌에 앞서 알아 두어야 할 것들. 어떻게든 되는 시골 생활은 없다.
ⓒ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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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도대체 시골이란 곳을 얼마나 깊이 파악하고, 숨겨진 정보를 얼마큼 얻고 나서 그렇게 대담하고 유치한 결단에 이른 것인가요?"

이것은 '충고'가 아니라 '경고'에 가깝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는 마루야마 겐지가 시골에서 과감하게 인생의 2막을 시작한 대가로 감수하거나 혹은 맞받아쳐야 할 시골 생활 생존 노하우를 일러주는 책이다.

저자는 '로망 가득한 전원생활? 웃기는 소리~!'라고 대놓고 야유하며,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시골살이의 민낯을 까발린다. 때문에 이 책은 그 어떤 귀농귀촌 안내서보다 더 현실적이고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 있다.

귀촌을 고민하고 있는 도시 사람이 이 책을 본다면 망상에서 깨어나듯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반대로 나같은 시골 사람이 이 책을 본다면 무릎을 치고 낄낄 거리며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시골살이, 내 삶을 위협하는 것들

"여하튼 나이만 먹어 가는 후반 인생을 시골에서 보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거의 야생동물의 최후 같은 죽음을, 말하자면 길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결의는 가져야 할 것입니다." (44쪽)

시골에서 살고 싶으면 목숨을 걸라니. 이쯤 되면 경고를 넘어선 협박 수준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말에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나는 귀농 6년차다. 미세먼지 걱정없는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층간소음 때문에 이웃과 멱살잡이를 할 필요가 없는 환경은 도시보단 확실히 자연친화적이고 인간적이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전원의 고즈넉함이나 즐기며 유유자적 살기에는 적지 않는 시련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도시에서 살 때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불임 클리닉 문턱까지 갔었는데 시골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고대하던 아이가 바로 생겼다. 주위에서는 구동성으로 깨끗한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임신을 하게 되면 정기적인 진료를 받아야 하고 산달이 다가올수록 혹시 닥칠지 모르는 여러 응급상황에 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사는 이 시골에는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었다. 읍내에 산부인과가 세 군데 있기는 하지만 전부 분만은 가능하지 않았다. 당연히 출산을 하려면 다른 곳으로 나가야 했다.

아이 셋을 낳는 동안 어쩔 수 없는 '출산 난민' 신세가 됐다. 마을에는 병원은 고사하고 약국도 하나 없어서 급하게 약이 필요할 경우 차를 몰고 읍내까지 나가야 한다. 하물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처지는 말해 무엇하랴. 마루야마 겐지는 병원이 너무 멀리 있어 혹여 쓰러지기라도 하면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지는 곳이 시골이라고 했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의 시골 농촌이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시골에서는  간단한 생필품 하나를 사려고 해도 읍내까지 하루 온종일 걸리는 걸음을 해야 한다. 하루에 서너 차례밖에 운행하지 않는 버스를 기다려 읍에까지 나가는데 반 나절, 필요한 물건을 사서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데 반 나절이다. 마을에 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골 마을의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구매 난민'의 신세로 전락한다. 

시골은 정말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당신은 도대체 시골이라는 곳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있게 알고 있느냐고 반문한다. 거듭되는 인구유출과 고령화로 황폐화 된 농촌 마을은 의료, 교육, 문화, 교통, 복지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도시에 비해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시골은 정말 '그런 것이 아니다.'

극단적인 양극화와 불평등이 지배하는 곳. 공공성은 고사하고 시장이 제공하는 흔한 서비스마저도 접하기 어려운 곳. 단순한 생활의 불편함을 넘어서 당장의 생존조차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곳. 도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사회적 인프라. 전원 생활의 로망 대신 생존의 치열한 사투가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이 시골 마을의 가슴 아픈 현실이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떠나는' 마을이 아니라 '돌아오는' 마을로 시골이 대안적 삶의 진정한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하다. 마을의 역사와 생태, 문화와 호혜적인 관계망 복원 같은 것은 안중에 없는 그렇고 그런 개발 공약만이 난무한 상황에서 가슴 따뜻한 로망이 되살아나는 시골을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내 아이가 살아갈 터전으로서의 마을 미래를 내다보며, 오늘의 시골 생활에 남다른 각오를 다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인 이유

이미 엎질러진 시골 생활 되돌이킬 수 없다면 이 생활에 최적화 된 마음가짐과 체력을 길러야 한다. 6년째 시골살이지만 아직도 나는 도시와 시골의 삶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어정쩡한 '경계인'일지도 모른다.

존재는 시골 마을의 구성원으로 흙을 밟고 있지만 삶의 방식은 여전히 도시적 라이프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바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읍내의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익숙하고 자동차가 없이는 감히 어디를 갈 엄두를 못낸다. 작은 텃밭을 일구고 있지만 밭을 메고 작물을 가꾸는 노동은 여전히 몸에 베지 않았고 때를 놓쳐 농사를 망치기도 한다.

"시골에서는 내 일은 내 힘으로 한다는 강한 마음가짐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이주하고 나서 도시의 편리함과 비교하며 불평을 해 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스스로 해내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굳이 불편한 곳에서 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불편함이, 너무 편리한 도시 생활로 흐늘흐늘해진 당신 심신을 단련시켜 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뇌를 계속 지배해 온 싸구려 이미지를 말끔히 제거하고 가혹한 현실과 대치하는 묘미를 알게 해 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정신을 본래로 돌려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모습을 본래로 돌려줍니다.

이렇게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시골 생활은 단념하는 편이 좋습니다. 나무리 오기로 버텨 보려 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185~186쪽)

마을공동체가 붕괴되었다고는 하지만 시골은 여전히 시골만의 정취와 문화가 남아있다. 여전히 좌충우돌하고 어설프지만 이제는 마을의 누구를 만나도 거리낌없이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데 스스럼이 없다. 손바닥 만한 텃밭 농사의 흥망성쇄를 겪으면서 자연의 이치와 농사의 가치, 농부의 존귀함을 깨닫는다. 새벽부터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놀라 문을 열었을 때, 시금치며 마늘이며 각종 제철 채소를 한 아름 가져와 안겨주시는 옆집 할머니의 환한 웃음에서 소박한 행복을 느낀다.

마루야마 겐지는 어디를 가든 삶은 따라온다고 강조한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일으킬 의지와 능력이다. 삶의 소박함과 불편함이 주는 '역설적인 행복'이야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 바다출판사 / 마루야마 겐지 /1만3000원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바다출판사(2014)


태그:#시골, #농촌, #마을, #귀농, #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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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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