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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음모

無爲刀
▲ 무위도 無爲刀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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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금의위와 은화사 간의 모호한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이다.

어느 선까지 협력하고 어디까지 견제해야 할지, 관(官)이라는 같은 녹(祿)을 먹으면서도 금의위와 동창은 늘 서로 으르렁거렸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영락대제 이후 금의위가 동창한테 일방적으로 물어뜯겼다는 게 정답이다.

다만 현 황상이 즉위한 이후부터 힘의 추가 동창에서 금의위 쪽으로 조금씩 이동해 겨우 균형을 맞추었다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금의위의 위신이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다. 동창의 비밀 무력조직 은화사가 이번 일에 개입한다는 건 신중히 처리해야 하는 걸 뜻했다. 자칫하면 금의위와 동창 간의 세력다툼으로 번질 수도 있다. 

"좋아, 은화사에 협조할 건 협조하면서 그 진행 상황을 나한테 알려주게. 나도 이제 황궁에 다시 돌아갈 때가 되지 않았겠나. 이번 황상께서는 선제 헌종대왕과 달리 동창을 견제하기 위해 총애하는 모빈 대감을 특별히 금의위 지휘사로 모셨다고 했네.

동창에서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몰라도 은화사가 추적하는 인물을 우리 금의위에서도 예의주시하면서 만약 우리가 먼저 공을 세울 수만 있다면 금의위의 위상이 한결 높아질 것이네."

풍천의가 말했다.

풍천의에게 허리 숙인 조복

동창이 하는 일을 가로채 모빈 장군에게 공을 돌린다면 당신은 황궁으로 복직할 뿐만 아니라 장차 더욱 탄탄해질 입지를 다지려는 개인적인 욕심 아니오. 조복은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번 일에 관해선 본관도 적극 나설 터이니 조영반도 최선을 다해 주기 바라오."

조복은 저 혼자서 움직이는 게 훨씬 낫습니다, 라는 말이 입안에 맴돌았지만 내뱉을 순 없었다.

"장반께서 적극 나서준다면 저로선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습니다."

조복은 입속에서 따로 노는 혀를 지그시 깨물며 풍천의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런데 이번 은화사에서 요청한 방은 수락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조복이 숙인 허리를 펴며 말했다.

"왜 그렇지?"
"저자거리에 방을 공고하면 오히려 일이 어렵게 됩니다. 포청에서 설쳐대고 강호의 잡배까지 들쑤시게 되면 은밀한 임무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서생과 계집의 행방은 우리 금의위에서 놓치지 않을 테니,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그들의 행방을 알려주는 선에서 은화사와 타협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게."
"은화사가 겉으로 내세우기는 이번에 수배령을 내린 남녀가 염호와 결탁한 국사범이라고 했지만, 제가 보기엔 다른 이면이 있습니다. 소금상들이 매점매석해서 폭리를 취하는 정도 가지고 은화사가 나선다는 건 누가 봐도 어불성설입니다."

"소금상들의 거동이야 나라의 요주의 감시 대상이 아닌가. 대당(大唐)이 무너진 것도 황소(黃巢)라는 소금 밀매업자의 농간에서 시작됐다가 나중에 반란으로까지 번졌지 않나."

풍천의가 말을 가로챘다.   

"소금상들의 동향이야 항시 관이 주목하고 있지만, 그건 도찰원이나 포청이 해야 할 일입니다. 동창이 언제부터 국사범을 챙겼습니까. 아닌 말로 자기네들의 권력과 관계된 것이 아니면 설사 오랑캐가 쳐들어온다 해도 콧방귀도 안 뀌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금릉에서부터 줄곧 추적을 하는 것도 그렇고. 드러내지 않고 쉬쉬하는 게 뭔가 다른 곡절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들의 진짜 목적이 무언지 알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입장에서도 소리 소문 없이 추격하는 게 낫습니다. 방을 붙여 지방 관아의 포졸들까지 들쑤시게 되면 저희들이 선수치는 게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책임지고 남녀의 행방을 알려주겠다면 모르긴 몰라도 은화사 역시 흔쾌히 동의할 것입니다."

풍천의는 시선을 잠시 허공에 두더니 이윽고 답을 했다.

"좋아, 조영반 의견을 받아들이지. 단, 은화사에서도 이를 수락하는 조건이야. 그리고 은화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될 때까지 적극 지원할 터이니 조영반도 우리 정주지부의 대원들과 행동을 같이 해주기 바라네."

풍천의가 결론을 내리듯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받들겠습니다. 풍 장반님."

조복이 허리를 굽히자 풍천의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

조복은 청사를 나오면서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주 지부와 같이 움직이는 게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는 것이고 다만 은화사에서 요청한 수배령 해제요청을 한 것만큼은 잘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황하 나루에서 동쪽으로 십리를 가면 작은 선착장이 나온다. 뒤도 안 돌아보고 힘차게 달려온 황하에게 한숨 돌리라는 듯 강폭이 갑자기 넓어지며 벌판이 펼쳐진다. 성질 급한 물결은 너른 습지의 유혹에 못 이겨 한 차례 휘돌다가 쉬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모든 걸 털린 노름꾼처럼 허청허청 다시 동쪽으로 흐른다. 강속이 느린 대신 강심이 깊지 않아 큰 배는 대지 못하고 그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나룻배만 오가는 곳이다.

정주 평지현 강촌나루. 삭일(朔日) 유시(酉時) 정(正).

며칠 전 받은 전서구에 적힌 내용이다. 까마귀인지 솔개인지 모를 새의 음영이 엄지손톱만 하게 그려져 있다. 특이한 것은 새의 발이 세 개다. 의미야 어떻든 그림이 있는 문서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오월의 유시 정은 해가 서산 너머로 뉘엿이 넘어가는 시간이다.

조복은 석양에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강심을 바라보았다. 한줄기 바람이 스쳐가자 상투를 맨 끈이 나불거리며 귓불을 간질였다. 무연히 바라보는 조복의 시야에 노를 저어오는 나룻배 하나가 보였다. 배는 천천히 조복이 있는 곳으로 접근했다.

나룻배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미동도 않고 앉아 있고, 고물 쪽에는 궁기가 가득 밴 늙수그레한 뱃사공이 노를 젓고 있다. 배는 조복 앞에 섰다. 그가 건너올 수 있도록 사공이 널빤지를 꺼내려는데 조복은 펄쩍 뛰어 이물에 사뿐히 내려섰다. 나룻배가 흔들 했지만 그건 황하의 파도 탓이지 조복의 경공 때문은 아니었다.

조복과 검은 옷의 사내는 아무런 인사도 나누지 않고 서로 눈빛만 주고받았다. 검은옷의 사내가 왼손을 들자 사공은 배를 돌려 저어갔다. 일각이 흐를 동안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배가 강심에 이르자 사내가 오른손을 들었다. 사공은 노 젓기를 중단하고 등을 돌린 채 섰다. 그리고는 배가 강변 쪽으로 흐를 것 같으면 슬그머니 노좆을 잡고 두어 번의 노질로 강심을 벗어나지 않게 하고 있다.

조복이 사공의 등을 손으로 가리키자, "염려할 것 없네.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이니까"라고 무영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얼굴을 보지 않았습니까?"

사공이 농인(聾人)이라는 걸 알게 되자 조복이 입을 열었다.

"가족들에게 보상은 후히 할 터이네."

무영객이 퉁명스레 답했다.

"은화사에서 서생과 낭자의 수배령을 금의위에 요청했지만 내가 차단했소."
 "……."
 "아무래도 이번 일은 조용히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이오."
"……."

무영객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서생놈과 계집의 행방이 박주에서 회하를 건넌 후 오리무중이지만, 내 생각엔 개봉이나 정주, 이 둘 중의 하나에 있을 것이오. 조만간에 우리가 알아낼 것이오."

무영객이 가타부타 말이 없자 조복이 화제를 돌렸다.

"그들은 정주 비룡표국으로 갔네."

무영객이 입을 열었다.

"비룡표국이라면 태허진인의 넷째 제자 준목규운 담곤이 있는 곳 아니오? 오호, 이제야 감이 잡히는 군. 그러니까. 담곤이 모충연의 사제이니 그들에게는 사숙뻘, 그곳에 가서 의지하겠다, 이런 속셈인가?"

조복은 자신이 정보를 제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무영객으로부터 남녀의 행방을 알게된 것이 미안한 듯 말이 많아졌다.

"나도 우연히 그 소식을 알게 된 것이니 개의치 마시오."
"……."

이번에는 조복이 말이 없었다.  

"서생과 계집이 비룡표국으로 가리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소. 이렇게 되면 은화사와 금의위 모두가 비룡표국으로 모이지 싶소. 그대는 비룡표국 안에서의 정황을 탐지해 주시오."

무영객이 말했다.

"남녀의 소재와 행방만 탐지하면 되는 것이오, 아니면 그밖에 다른 것까지 알아봐야 하는 것이오?"
"일단은 남녀의 소재부터 확인해 주시오. 그들이 어디에 묵고 있고, 담곤과 면담은 언제 했는지 등도 알아봐주면 좋겠소. 그밖에 다른 일은 상황에 따라서 따로 연락하겠소."

"만약 비룡표국 안에서 남녀가 묵고 있는 위치를 알아낸다면, 귀하의 침투로를 만들어 놓겠소이다,"

"그럴 필요는 없소, 나는 나대로 잠입할 터이니. 다만 남녀가 비룡표국을 벗어난다면 끝까지 추적해서 그들의 행방만 정확히 알려주면 되오." 

그들은 말이 없이 잠시 동안 침묵에 잠겼다. 서로 간에 용건이 끝났다는 것이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의미다.

무영객, 조복에게 일만 냥 건네고...

무영객이 품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 조복에게 건네 주었다.

"일만 냥이오. 나머지는 일이 끝나면 주겠소."

조복은 주머니를 받자 무게를 가늠하듯 아래위로 살살 흔들었다. 곧이어 주머니끈을 풀어 은자 몇 개를 손바닥 안에 쏟았다. 그 중에서 노란 빛이 나는 금화를 집어 입에 가져가려는 순간 무영객이 말했다.

"구할오푼이 넘지 않으면 두 배로 보상할 터이니 순도는 의심치 마시오."

그 말을 듣자 조복은 주머니끈을 동여 품 안에 넣었다.

무영객이 뱃전을 두드리자 사공이 뒤돌아서서 노를 저었다. 조복이 탔던 곳에 이르자 다시 훌쩍 뛰어 나루 위로 올라섰다. 이번에는 뱃사공이 널빤지를 꺼내지도 않았다.

조복이 강둑에 이르러 돌아보니 나룻배는 맞은편 선착장으로 가지 않고 하류 쪽으로 비스듬히 흘러가고 있다. 배가 물풀 사이로 들어가자, 간난아이 똥만큼 남은 해가 발악하듯 토하는 핏빛 노을 속에서 무언가 반짝하고 빛을 발했다. 이어 작은 음영이 물속으로 떨어졌다. 조복의 귀에는 풍덩,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 월, 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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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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