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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운데), 최경환 원내대표가 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웃음짓고 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운데), 최경환 원내대표가 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웃음짓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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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철회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공개 발언에 나선 심재철 최고위원이 "안철수 대표가 만든 'V3'는 바이러스를 잡았지만, 정작 본인은 말 바꾸기로 약속 위반 바이러스를 계속 만들어냈으니 이제 그만 다운될 시간"이라고 비꼬았을 때였다. 

황우여 대표, 최경환 원내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는 물론 당직자들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날 회의에서 새누리당은 안 대표의 무공천 회군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냈다. "새정치는 끝났다"며 안 대표의 정계 은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안철수 죽이기'를 위한 마지막 총공격에 나선 모양새였다.

새누리당, 안철수 대표 비난할 자격 없다 

물론 말 바꾸기 논란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 명분이 기초선거 무공천이었고, 안철수 대표는 '약속의 정치'를 자신의 정치 브랜드로 내세워 왔다. 기초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하지 않는 게 "새정치의 핵심 가치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계속 있었음에도 안 대표는 자신의 소신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무공천 견해를 바꿨다. 안 대표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과정이나 이유가 어떠했든 저희들마저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국민께 사과 드린다"고 고개를 숙이는 건 불가피했다. 이제 새정치연합과 안철수 대표의 선택을 국민들이 어떻게 판단할지는 지방선거 결과에 반영돼 나타날 것이다. 

문제는 새누리당이다. 유권자들이라면 몰라도 새누리당은 안 대표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먼저 말을 바꾸고 약속을 뒤집은 건 새누리당이다.

기초선거 공천 폐지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대선공약이었다. 대선 직후 치러진 지난해 4·24 재보선 당시만 해도 새누리당은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고수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약속을 깨고 공천을 강행한 민주당을 비난하기 바빴다.

물론 새누리당이 당시 공천을 포기한 의도를 두고도 의심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재보선 지역인 경기 가평, 경남 함양 등에서는 공천하지 않아도 새누리당 성향 후보 당선이 무난했기 때문이다.  

여당의 공세에 밀린 민주당은 결국 지난해 7월 당원 투표까지 거친 끝에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선택했다. 그런데 전국에서 승부를 펼쳐야 하는 이번 6.4지방선거가 다가오자 새누리당은 돌변했다. 이 때문에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포함한 지방선거 룰을 결정해야 할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공전을 거듭했다. 선거를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까지도 여당은 후보를 공천하고 야당은 후보를 공천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뻔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이 보여준 태도는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선거 파행 가능성에 엄중한 책임을 느끼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했지만 제 얼굴에 침 뱉기 바빴다. 자신들의 '원죄'에는 눈감고 새정치연합에 "말 바꾸기" "약속 뒤집기" 공세를 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야당을 자중지란에 빠지게 해 지방선거에서 어부지리를 얻겠다는 비겁한 선거 전략이었거나 지독한 기억상실증에 걸렸거나 둘 중 하나다.

게다가 기초선거 공약 파기에 새누리당이 유감을 표시한 건 단 한 차례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을 고개 숙여 사과 드린다"(최경환 원내대표)가 전부였다.

공약을 한 당사자이자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박 대통령은 지방선거 파행 가능성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여당 원내대표의 '대리 사과' 뒤에 숨어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았다. 대선 공약 파기에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정치적인 문제'는 여야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회피하는 '편의적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새누리당, 지금 웃음이 나오나

기초선거 공천 폐지가 과연 올바른 방향의 정치 개혁이냐는 논란과는 별개로 분명한 것은 이번 공천 논란에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져야 할 책임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집권 2년차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돈 드는 기초연금 같은 공약도, 돈이 들지 않는 공천 폐지 공약도 지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당이 그럭저럭 지지율을 보전했던 것은 우호적인 여론 환경과 무공천 논란에 발목잡혀 지리멸렬했던 야당 덕이지 실력 때문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6.4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공약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돈 안드는 공약마저 지키지 않는 새누리당의 지방선거 공약을 그대로 믿어줄 국민은 많지 않다. 새누리당이 야당 말바꾸기를 지적하면서 웃고 있을 때가 아니다.


태그:#새누리당, #안철수, #무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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