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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세상네트워크 빈곤층건강권사업단에서는 <오마이뉴스>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건강권에 대한 실태를 살펴보는 '가난한 사람들도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라는 주제로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편집자말]
[사례①] 강아무개씨가 처음 결핵을 앓은 것은 20여 년 전. 결핵을 앓기 전 강씨는 구두공장에서 일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직장에서 결핵을 옮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20년의 세월이 말해주듯, 강씨는 대부분의 결핵약에 내성을 지니게 된 심한 상태였고 치료를 위해 폐 절제 수술도 받은 적이 있다. 강씨는 우여곡절 끝에 쉽지 않은 치료를 마치고 지난해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 강씨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염증으로 망가진 폐, 그로 인한 결핵 후유증이 심각했다. 가족이 있었지만, 의지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결국 강씨는 아직까지 요양병원을 옮겨다니며 생활하고 있다. 마음 한구석에는 '직장을 구하고 다시 사회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마음이 있지만, 세상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강씨는 처음 결핵을 진단받고 보건소에서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2014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종종 자신을 탓해 보기도 한다. 결핵이 재발하고 난 뒤 결핵약 먹는 걸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사이 그의 몸에 살던 결핵균은 점점 더 강한 균으로 변해갔다. 그와 그를 둘러싼 세상은 현재의 상황을 너무 쉽게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례②] 변아무개씨는 지난해 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영등포 인근의 쪽방에서 2주일 동안 술만 마셨다는 게 담당의사가 전해 들은 사실의 전부다. 이미 변씨의 폐에 결핵균이 퍼져 있었고, 염증이 가득했다. 변씨는 인근 주민의 도움으로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게 됐는데, 입원 1주일 만에 생을 마감했다.

변씨의 사인은 결핵. 하지만, 그가 앓던 결핵은 약제내성결핵(일반적으로 가장 효과 좋은 1차 결핵 치료제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에 내성이 생긴 결핵균에 의한 질병)도 아니었다. 적절한 시기에 치료만 이뤄졌어도 살 수 있었다. 이렇게 죽음을 마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제입원명령의 그림자... '생활 지원'은 어디 갔나

결핵균의 전자현미경 사진(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s Public Health Image Library, PHIL)
 결핵균의 전자현미경 사진(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s Public Health Image Library, PHIL)
ⓒ PH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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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은 치료할 수 있는 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에서 결핵은 공포의 질병으로 다뤄진다. 다시 강조하고 싶다. 결핵은 치료 가능한 병이다. 다만, 특정한 조건이 성립되는 상황에서 결핵은 개인과 사회에 큰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문제는 이 '특정한 조건'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높은 결핵 발생률과 사망률 자료는 거의 모든 결핵 관련 기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언론 보도에서 '원인은 결핵균이요, 예방은 기침예절, 조기발견, 강제격리조치이며, 치료는 항생제'라는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언론과 학계, 심지어 시민사회에서조차 다뤄지지 않는 결핵을 둘러싼 '특정한 조건'은 과연 무엇일까.

1965년 한국. 20명 중 1명이 결핵을 앓고 있었다. 2013년에는 그 수가 1000명당 1명으로 감소했다. 전 국민이 가난하던 시절, 결핵은 우리들의 삶에서 멀리 있는 질병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 국민이 잘 살게 됐다는 지금, 결핵은 우리들의 삶에서 잊히는 질병이다. 그런데도 결핵은 여전히 국내에서 법정전염병 중 가장 높은 발생률과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다. 1000명 중 1명에 포함되는 그 혹은 그녀가 누구인지 더욱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관련 연구가 극히 드물지만, 몇몇 연구에서 작은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2011년에 나온 보고서 '건강검진 자료를 이용한 폐결핵 발생률 조사'에 따르면 건강보험료가 낮은 이들에게서 결핵 유병률이 높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거리 홈리스(노숙인)와 주거취약계층이 높은 결핵 유병률을 기록한단다.

해외 문헌을 찾아보면 그 실마리는 더 분명해진다. 결핵은 이미 오래 전 선진국에서부터 '빈곤의 질병'으로 인식됐고(Weber, H. On prevention of tuberculosis, 1899), 지금도 선진국의 빈곤층에서의 발생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Farmer, P. Social scientists and the new tuberculosis, 1997). 또한 저개발국가에서 높은 유병률을 기록하고 있음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 역시 이와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2011년 결핵예방법의 개정과 함께, 결핵 환자 부양가족에 대한 생활 지원도 시작됐다.

다만, 여기서의 '지원'은 강제입원명령을 받은 환자에게만 국한된다. 그리고 강제입원명령이 해제된 이후에는 생활 지원도 함께 중단된다. 정책의 무게 중심이 생활 지원에 있는지 강제입원명령에 있는지 헷갈리는 대목이다.

'공포의 질병'만 부각하는 언론... '가난'은 관심 밖?

결핵환자에게 입원을 명할 수 있는 결핵예방법 15조
 결핵환자에게 입원을 명할 수 있는 결핵예방법 15조
ⓒ 법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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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자. 2014년 대한민국의 결핵 문제는 특정한 조건인 '가난'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결핵환자들을 격리하는 조건으로 일정 시기 동안 부양가족을 지원하는 것만이 전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입원 명령이 최선의 정책인지에 대한 반성이 시민사회에서조차 이뤄진 적이 없다는 점이다.

가난이 결핵의 한 원인이라면, 결핵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투병 이후의 삶은 어떨까. 강씨와 변씨의 사례를 통해 결핵 발생 환자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한 명은 여전히 병원에서 생활한다. 사회 복귀가 요원하다. 다른 한 명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는 강씨의 부적절한 치료 행태와 변씨의 뒤늦은 치료를 개인 탓으로 돌리고 있다.

세상의 편견은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3월 27일 결핵의 날을 맞이해 최근 쏟아졌던 결핵 관련 기사의 제목을 살펴보자.

"정부, 모든 결핵환자 접촉·복약 조사한다"
"한해 1300억 원 진료비로 쓰는 '결핵'... 후진국 병이라고요?"
"카이스트 '결핵 공포'... 21명 확진"
"7월부터 '의료기관 격리치료 명령제' 시행"

결핵은 공포의 질병이거나, 후진국 질병이라는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조사를 진행한 뒤 결핵 환자를 관리하거나 격리 명령을 내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결핵을 앓고 있는, 그리고 완치 후에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의 삶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결핵 환자 모두가 '가난'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가난한 결핵환자'의 삶은 다른 이들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결핵 완치 후 결핵 병력이 있는 이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오랜 기간 치료로 인한 경력의 단절 역시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그들은 다시 빈곤의 굴레에 갇힐 수밖에 없다. 결핵 환자가 겪는 삶의 고통에 있어서 우리는 모두 편견을 양산하고 방관한 가해자일 수 있다.

가난은 질병을... 질병은 가난을 혹은 죽음을

가난이 결핵을 만들고 결핵이 다시 가난의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정부는 결핵에 국한된 정책만으로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가난이 결핵을 만들고 결핵이 다시 가난의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정부는 결핵에 국한된 정책만으로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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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 환자들의 삶에 기반을 둔 결핵 정책이 필요하다. 관리와 격리가 필요하다면, 결핵 환자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환자를 적절한 치료의 공간으로 유도할 수 있어야 하고, 의료진은 직접 설득의 주체가 돼야 하며, 가족과 주변 공동체도 완치의 희망을 강조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0년 강제격리정책을 두고 "다른 시행 가능한 대안이 없을 때 극히 제한적으로 시행돼야 한다"라는 평을 내놨다(결핵 예방, 주의 그리고 통제에 관한 지도). 하지만, 한국 사회는 다른 시행 가능한 대안을 얼마나 시험해봤는지 자문하지 않는다.

가난이 결핵을 만들고 결핵이 다시 가난의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정부는 결핵에 국한된 정책만으로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질병관리본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복지정책 때문에 결핵 예산이 삭감됐다 혹은 불용예산이 있어 삭감됐다고 운운할 때가 아니다. 더 넓고 깊은 복지 정책을 구상하고 실천해야 한다. 장기간의 치료는 물론 완치 이후 생활에도 문제가 없고, 직장으로의 복귀에도 문제가 없다면 결핵환자들의 치료 중단 혹은 지연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태그:#건강세상네트워크, #빈곤, #결핵, #건강권,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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