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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세상네트워크 빈곤층건강권사업단에서는 <오마이뉴스>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건강권에 대한 실태를 살펴보는 '가난한 사람들도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라는 주제로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편집자말]
2012년 12월 24일 오전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관악구 난향동의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상배(61)씨 집을 찾아 도시락을 전달하고 복지 정책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집을 나서고 있다.
 2012년 12월 24일 오전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관악구 난향동의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상배(61)씨 집을 찾아 도시락을 전달하고 복지 정책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집을 나서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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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의 한 지하 월세방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 70만 원이 담긴 하얀 종이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소식을 듣고 많은 국민은 우리 사회의 열악한 복지체계와 허술한 사회 안전망이 세 모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며 이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렇게 질병과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가난한 이들의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가난한 이들의 계속되는 죽음

아픈 70대 어머니를 돌보던 40대 딸이 질병과 생활고로 모녀가 함께 자살한 사건, 만성신부전증을 치료해 오던 50대 아버지가 부양자인 딸에게 소득이 발생해 기초생활수급 자격이 박탈되어 월 100만 원이 넘는 치료비를 감당 못해 자살한 사건, 장애아들을 둔 일용직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아들이 의료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되자 사회복지사에게 자신의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 등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운 이들이 스스로 가난한 삶을 마감하고 있다.

한국은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돼 빈곤층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에는 복지체계가 너무 허술하고,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는 '복지사각지대'가 거대하게 존재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유일한 복지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지만 까다로운 자격기준과 빈곤층 모두 포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결국 그 제도는 가난한 이들에게 최후의 안전망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급여제도도 마찬가지다. 이 제도는 빈곤층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질병으로 인한 가계 파탄을 막고 빈곤과 질병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주는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의료급여는 빈곤층의 의료보장이라는 기본 취지에 걸맞지 않게 빈곤층을 포괄하지 못한다. 오히려 정부는 의료급여의 재정 안정화라는 이유로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본인부담을 부과하거나 이들에게 의료 이용을 제한하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벌여왔다.

건강보험제도와 의료급여로 가난한 이들이 혜택을 받고 있는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 세 모녀의 사건에서 보듯이 질병으로 인한 높은 본인부담과 제도의 사각지대 탓에 가난한 이들은 병원 문턱 앞에서 발길을 돌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만성질환자가 있는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20% 정도다. 하지만 이를 기초생활수급 가구와 차상위 가구에 적용하면 이 비율은 각각 63%, 58%로 크게 늘어난다. 빈곤하지 않은 가구에 비해 두 배가 훌쩍 넘는 수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서울 관악구 난향동의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상배(61)씨 집을 찾아 도시락을 전달한 뒤 복지 정책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서울 관악구 난향동의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상배(61)씨 집을 찾아 도시락을 전달한 뒤 복지 정책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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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들 빈곤층 중에는 진료비 부담 때문에 치료를 중도에 포기한 경험이 있다는 가구가 응답자의 72.6%에 달했다. 10가구 중 7가구의 사람이 돈 때문에 병원 치료를 포기한 셈이다. 얼마나 무자비한 사회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병원비 걱정 없는 복지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당연히 복지수요가 높은 빈곤층과 취약계층의 많은 사람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당선 이후 첫 일정으로 저소득층이 밀집된 쪽방촌을 찾았다. 직접 빈곤층의 목소리를 듣고 민생을 챙기겠다는 뜻이 반영된 행보였다.

세 모녀 사건이 알려지기 하루 전 박근혜 정부는 취임 1주년을 맞아 "국민이 행복한 새 시대를 열겠다"며 '경제계획 3개년'을 발표했다. 그러나 거기에 아프고 가난한 국민을 위한 복지 정책은 없었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에게는 더 야만적이고 냉혹했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이야기하며, 그 1호 과제로 각 부처 합동으로 '복지 부정 신고센터'를 운영해왔다. 복지부도 '클린복지'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벌여 대대적인 '부정 수급권자' 색출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들이 수급에서 탈락하고 있다. 이번 부정 수급권자 색출로 인해 얼마나 더 많은 죽음 소식이 전해질지 두렵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질병과 삶의 고통 속에서 혼자 슬픔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가난한 이들에게는 죽어서야 끝나는 일일 수도 있다. 이들이 삶의 낭떠러지에서 삶을 포기하기 전에, 정부가 너무 늦지 않게 세심하게 이들을 살피길 바란다.

가난한 사람이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래야 박근혜 정부가 이야기하는 상식이 통하는 정상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정숙 기자는 건강세상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태그:#건강, #의료,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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