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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발(發)은 소리부인 발(?)과 의미부인 궁(弓)이 합쳐진 형성자로, 활과 같은 막대로 풀숲을 헤치며 발을 어지럽게 내딛어 앞으로 ‘나아가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 發 필 발(發)은 소리부인 발(?)과 의미부인 궁(弓)이 합쳐진 형성자로, 활과 같은 막대로 풀숲을 헤치며 발을 어지럽게 내딛어 앞으로 ‘나아가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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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8(八, bā)'이다. 돈을 벌다는 의미인 '발(發, fā)'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올해 초 자동차번호 경매에서 '粤B8888R' 이라는 번호가 172만 위안(약 3억원), 웬만한 찻값보다 훨씬 비싸게 낙찰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8년 8월 8일 저녁 8시에 열린 베이징올림픽도 같은 이유다.

중국인들은 새해인사로 우리처럼 복 많이 받으라는 두루뭉술한 말 대신 "돈 많이 버세요(恭喜發財)"라는 직접화법을 즐긴다. 자본주의보다 더 '돈'을 밝히는 중국인들에게 돈을 벌다는 의미의 '發'은 시간이 갈수록 더 간절한 소망이 깃든 말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병자호란(1636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최종병기 활>에는 주인공이 아버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활에 "전추태산, 발여호미(前推泰山, 發如虎尾)"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활을 잡은 손은 앞으로 태산을 밀듯 힘차게 버티고, 화살을 잡은 손은 호랑이의 꼬리처럼 날렵하게 감아 발사하라"는 의미이다. 충분한 기백으로 활을 제어하여 힘을 모으되 마지막 순간은 바람처럼 부드럽게 발사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필 발(發, fā)은 소리부인 발(癹)과 의미부인 궁(弓)이 합쳐진 형성자로, 윗부분에 발(止)이 서로 반대 모양으로 놓인 등질 발(癶)과 아래 활 궁(弓)과 칠 복(攴)이 합쳐진 글자다. 활과 같은 막대로 풀숲을 헤치며 발을 어지럽게 내딛어 앞으로 '나아가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여기서 활을 멀리 나가게 하니 '쏘다, 발생하다, 돈을 벌다' 등의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공자는 <논어>에서 "알고자 분발하지 않으면 가르쳐주지 않고, 알고자 애태우지 않으면 깨우쳐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고 하였는데 여기서 '계발(啓發)'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개발(開發)'이 물질적인 것을 개척하는데 반해, '계발'은 태생적으로 정신적인 일깨움의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강태공(姜太公)이 주무왕(周武王)을 보좌하여 주(紂)나라를 토벌할 때 거침없이 돌진하던 기세를 상징하는 말인 '발양도력(發揚蹈歷)'도 주(周)나라 때 두 팔을 힘 있게 흔들고 두 발을 힘차게 구르는 무용 동작을 가리키다가 후대에 와서 정신적으로 분발하여 투지가 드높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무언가 움직임이나 나아감이 생기려면 먼저 정신적인 의지나 깨달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갑골문에는 막대기를 발 사이 옆으로 밀어 넣어 움직이게 하는 모양을 확인할 수 있는데 걸어가는 사람을 인위적인 도구로 넘어뜨리는 동작에서 '급작스런 움직임'이 생겨남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안주나 답보의 상태를 무너뜨려 새롭게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발(發)'의 의미인 셈이다. 즉 현재에 머물지 않고 새로움의 과녁을 향해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라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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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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