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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속여제' 이상화가 2월 11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빙속여제' 이상화가 2월 11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상화가 좋다. 그가 소치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서 좋다. 메달 색깔이 금인 것도 좋다. 여자 500m 1·2차 합계 74초 70으로 올림픽신기록을 세워서 좋다. 밴쿠버에 이어 올림픽 2연패인 것이 좋다. 4년 동안 고난하고 지난했을 훈련과정을 거쳤을 그가 값진 보상을 받아서 더 좋다.

올림픽 스피트스케이트 사상 아시아 선수 최초 2회 연속 금메달이란 타이틀이 이상화의 것이라 좋다. 이상화가 미국의 보니 블레어, 르메이돈에 이은 역대 세 번째 여자 500m 올림픽 2연패 선수여서 좋다.

쇼트트랙 김기훈과 전이경, 최은경에 이어 동계올림픽 2연패의 전통을 잇는 선수가 '여성'이라 더 좋다. 전통적으로 강한 쇼트트랙이 아닌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인 점도 좋다. 한국이 따낸 역대 24번째 금메달이 이상화의 목에 걸려서 좋다.  

"안녕하세요"를 잊지 않던 정갈하고 공손한 그의 승리 소감이 좋다. "밴쿠버 때도 그렇고, 힘들었던 순간이 스쳐 지나며 눈물이 났다"는 여린 면도 좋다. "친구들이 메달을 따줄 줄 알았는데 속상했고 눈물이 많이 나더라"던 동료애도 좋다. "올림픽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월드컵이라고 생각하고 임했다"는 자세도 좋다. "1000m 또 남았으니까, 많이 응원해 주세요"라며 짓던 멋쩍은 웃음이 좋다.

소치올림픽 공식 사이트가 이상화의 별명을 'Ggul Beok Ji'(꿀벅지)로 소개한 것도 좋다. 그의 허벅지 둘레가 마른 여성 허리둘레라는 23인치라도 좋다. 물집 투성이인 황금빛 발바닥도 좋다. 소치행 전에 이상화가 찍은 화보도 좋다. 그 화보의 포토그래퍼가 "현장에서 정말 이뻤다"며 매너를 칭찬한 것도 좋다. 취미가 '손톱 가꾸기'(?)와 '레고 놀이'(?)인 것도 좋다. SNS로 셀카를 올리는 '청춘' 이상화가 좋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이상화 선수에게 '좋아요'만 연발하기도 모자를 시간에 이를 훼방 놓는 이들이 무척 많다. 좋지 않다. 관심도 참으로 갖가지요, 언론들도, 장삼이사들도 너나없이 달려든다. 빼어난 실력을 자랑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대한 관심은 물론 자연스럽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과함이 화를 부르는 법이다.

이상화의 금메달이 불붙인 '국뽕'이란 이름의 등수놀이

 소치올림픽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이상화 선수의 프로필

소치올림픽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이상화 선수의 프로필 ⓒ 소치올림픽 조직위원회


스포츠 경기를 '경쟁'의 전쟁터로 만들어야 직성에 풀리는 이들이 관행이란 이름하에 '셀프 주사' 맞는 것이 바로 '국뽕'(과도한 국가주의)일 것이다.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을 따자마자, 방송사들이고 매체들이고 일부 시청자들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졌던 것이 무엇일까. 보나마나 빤한 얘기, 한국의 소치올림픽 종합 등수였다.

다수 매체들이 일제히 '종합 9위'를 헤드라인에 올렸고, 메달 집계가 금메달 순인지, 메달 종합 순위인지부터 체크했다. 개막 이후 등장하지 않던 메달 집계 순위에 대한 주목이 이상화의 금메달 하나로 일제히 점화된 것이다.

헌데, IOC 국제 올림픽 위원회는 메달 순위를 따로 집계해 발표하지 않는다. 개별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메달을 집계하는데, 그나마도 금메달 순인지 매달 종합 순위인지는 개최국마다 다르다. 이번 소치올림픽은 금메달 합계로 순위를 매긴다.

어차피 순위 경쟁을 하는 올림픽에서 종합 순위에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무슨 문제랴. 그간 '노메달'에 전전긍긍했을 국가대표팀에 이상화가 한줄기 빛을 선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두고두고 지적돼 왔던 국내 언론과 (이에 길들여진 일부 혹은 다수)국민들의 금메달과 등수 경쟁에 대한 과도한 집착. 이를 이상화 선수를 비롯한 대표팀 선수들은 과연 반기기만 할까.

대다수는 이 등수놀이가 그 자체로 차별과 배제, 그리고 경쟁의 시선을 확산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천하장사' 출신 방송인 강호동이 KBS 중계 말미에 던진 "이상화 선수와 함께 출전하는 김현영, 박승주, 이보라 선수 모두 수고했다"는 멘트는 선수 출신이 먼저 할 수 있는 배려의 일종이었으리라. 이 메달 집착에 대해 한 SNS 사용자의 일침도 분명 곱씹을 만하다.

"포털 메인 한켠에 상시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올림픽 종합 순위와 메달 개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언론 자유도, 삶의 만족도와 행복지수, 민주주의 척도, 인권 순위, 노동 여건, 복지 수준 순위 등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thXXXXX)

<중앙>이 찍은 이상화 '허벅지' 종지부

 12일자 <중앙일보> 인터넷판 메인 화면.

12일자 <중앙일보> 인터넷판 메인 화면. ⓒ 중앙일보인터넷판


이상화 선수가 2연패를 달성한 만큼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관심 분야가 실로 전방위적이다. 여기에선 진보와 보수, 일간지와 경제지, 연예매체까지 국공합작에 비견될 만장일치를 이뤄낸다. 2014년에도 올림픽이란 블랙홀이 정치와 사회와 경제 문제를 집어삼키는 일이 일정정도 유효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김용판 무죄 판결을 덮기 위해 소치올림픽을 준비해 왔다고?"란 음모론이 인터넷 상에 농담처럼 떠돌아다닐까.

올림픽 2연패 이상화, 금메달 연금 얼마나 받나? <조선일보>
금메달 연금 얼마길래? 이상화, 매달 100만 원씩.. <SBS CNBC>
이상화, 연금·포상금 얼마나 될까…최소 1억2750만 원에 연금 100만 원 <경향신문>
'올림픽 2연패' 이상화, 연금은 얼마나 받을까 <일간스포츠>

그 맨 앞줄에 호명되는 것이 돈과 육체다. 물신화된 자본주의에서 가장 손쉽고 재빠르며 친숙하게 다가서는 토픽이다. 프로스포츠가 도입된 이후 프로선수들의 연봉과 국가대표 선수들의 연금이 비교됐고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십 개 매체 중 호명된 저 언론들이 억울할 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금 기사들이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졌다 해도 그 기사를 몇 시간에 걸쳐 수차례 내보내며 '클릭 장사'에 열광하는 <조선>의 행태는 천박해 보이지 않는가.

한편으로 운동선수들의 몸에 대한 호기심이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러울 수 있다. 훈련과정에서의 육체적인 고통과 기술의 향상을 몸으로 담보해내고, 서구와 비교해 신체적인 열세를 극복해야 하는 우리 선수들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허나, 이상화 선수의 몸을 향한 찬사가 '젊은 여성'에 치중되는 것도 '연금 기사'만큼이나 확고한 관행이라 여겨야 할까.  

'금빛 신화' 이상화... 그의 몸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이투데이>
비비안 리 허리보다 아름다운 이상화의 '꿀벅지' <한겨레>
[소치] 이상화의 비밀, 꿀벅지만이 아니다 <스포츠조선>
'빙속 여제' 이상화, 과거 섹시 화보도 화제…몸매도 금메달이네 <서울신문>

일부 여자 아이돌에게 붙이던 '꿀벅지'란 기이한 신조어는 벤쿠버 이후 급상승한 이상화의 인기를 반영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중앙일보> 인터넷판은 '흰 셔츠만 걸친 이상화, 허벅지 과감히 드러내더니...'란 제목의 기사를 12일 오전 메인화면에 버젓이 게재했다. '이상화 팔이'와 '허벅지'가 만나 탄생시킬 수 있는 자극적이고 상상력을 북돋우는 기사 경쟁의 금메달은 <중앙일보>가 딴 셈이 됐다. 

그리고 이상화 만큼이나 값진 안현수의 동메달 

 동메달을 따고 여자친구와 기뻐하는 사진을 본인의 SNS에 올린 안현수 선수.

동메달을 따고 여자친구와 기뻐하는 사진을 본인의 SNS에 올린 안현수 선수. ⓒ 안현수 인스타그램


올림픽 기간 '국뽕'의 마력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또다른 '금메달'리스트가 빨리 탄생해야 한다. 이상화 선수 하나만으론 부족하다. 은메달로도, 동메달로도 부족하다. 소치올림픽 이후 국민(이라 쓰고 국가라고 부르는 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스타가 필요하다. 우리가 만족할 만한 등수놀이에, '국뽕'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가치가 없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도 크게 달라진 것 없는 현실이다.  

사실, 이상화 선수만큼이나 '좋아요'를 연호하고픈 이는 따로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이 "빅토르의 동메달에 배아픈 한국"이란 기사를 통해 소개한 빅토르 '안', 안현수 선수다. 과도한 경쟁과 파벌로 얼룩졌던 국내 빙상계와 국가대표 시스템의 희생자이면서 왕따에 폭행사건까지 치러야 했던 안현수의 동메달 획득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개인적으론, 귀화까지 하며 계속해서 운동을 선택했던 그의 동메달이 이상화의 금메달만큼이나 값져 보였다.

비록, 'TV조선'이 방송에서 소개한 "우리나라는 동메달이었으면 죄송하다고 했을 것"이란 댓글 속 비아냥이 한국에서 분명히, 다수 존재하지만, 그의 귀화와 선전을 축하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알아줬으면 한다. 한국의 안현수가 아닌 러시아의 빅트로 안 선수는 더이상 맞지도, 왕따 당하지 않고 오래오래 스케이트를 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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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소치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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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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