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전 직후 상대선수 타카야 츠쿠다와 나란히 선 윤형빈.

데뷔전 직후 상대선수 타카야 츠쿠다와 나란히 선 윤형빈. ⓒ 로드FC


이 사진 속 두 남자의 환한 미소를 접했을 때, 윤형빈의 도전이 헛되지 않았음이 새삼 전달됐다. 선수들에겐 길지만 관객들에겐 짧게 느껴졌던 4분여의 승리만큼이나 짜릿한 스포츠정신이라는 이름의 교감. 이 가치를 개그맨 '왕비호'이자 <남자의 자격>으로 친숙한 방송인 윤형빈이 알려줄 줄이야.

이 한 장의 가치는 남달랐다. '한일전'이란 흥행 포인트에 낚여, 과거 임수정 선수가 일본 방송에서 곤욕을 치른 장면을 소환하며 득달 같이 '일본 까기'에 달려드는 이들에게는 특히 그랬다. 격투기 역시 관객들과 시청자들의 대리 전투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 강조 또 강조되는 또 하나의 스포츠일 뿐임을 깨닫게 하는.  

10일 밤 11시 소치올림픽을 제치고 스포츠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윤형빈의 로드FC 데뷔전. 이종격투기 선수로 첫 발을 내디딘 윤형빈의 경기는 분명 드라마틱했다. 1회 TKO승이라는 결과 자체도 그랬지만, 그 이면에 자리한 열광의 무의식을 단번에 비웃기라도 하는 윤형빈과 상대선수 타카야 츠쿠다와의 '인증샷'이 존재하기에 더욱 그랬다.

감격스러운 윤형빈의 데뷔전 TKO 승리와 한일 매치

 경기 승리 후 포효하는 윤형빈.

경기 승리 후 포효하는 윤형빈. ⓒ 수퍼액션


"ROAD FC 014 Back Stage. 윤형빈, 타카야 선수 경기 후… 두 선수에게 아낌없는 박수 부탁드립니다."

10일 밤 경기 직후 사진과 함께 로드FC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다. 분명 감동스러운 사진이지만 발 빠른 로드FC의 마케팅은 명불허전급이었다. 임수정이란 키워드와 엮어 로드FC가 윤형빈을 마케팅에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존재했다.

로드FC가 그랬다손 치더라도, 그만큼 윤형빈과 이번 한일전은 방송인의 격투기 데뷔와 반일감정이란 휘발성 강한 이슈를 묶어 마케팅으로 활용하기에 더없이 좋은 '떡밥'이었다. 아마추어 선수의 데뷔전을 메인 매치급으로 격상시킨 발 빠른 대응도 그랬다. 실제로 이러한 마케팅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케이블 채널 수퍼액션을 통해 생중계된 이날 < ROAD FC 014 >는 케이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리며 'ROAD FC'사상 역대 최고의 수치를 달성했다. "누가 보면 윤형빈이 아베를 때려 눕힌 줄 알겠네"라던 어느 SNS 사용자의 일성이 누군가에게는 진심이 담긴 응원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윤형빈의 심리까지 읽는 '관심법'이 동원된. 

"어제 벌어진 윤형빈 경기 정말 통쾌한 승리였다. 아마 윤형빈 상대선수가 아베총리 놈이라고 생각하고서 KO 펀치를 날렸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기에 벌어질 수 있는 KO승이 나온 것이다." (@chXXXXXXXX)

로드FC의 반일 마케팅과 반일 감정의 환상적인 싱크로  

 로드FC 홍보 영상에 출연한 타카야 츠쿠다 선수.

로드FC 홍보 영상에 출연한 타카야 츠쿠다 선수. ⓒ 로드FC


윤형빈 경기 직후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임수정 사건'이 다시금 회자되는 것이 납득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언제나 과한 것이 문제 아니겠는가. '미녀 선수'로 인기를 얻었던 임수정은 2011년 7월 일본 TBS 예능프로그램에 출연, 일본 남성 개그맨 3명과 경기를 벌인 뒤 전치 8주의 부상을 입었다.

체급이 월등히 높고 격투기에 입문한 경험이 있는 남성들, 그것도 일본인에게 맞서 임수정이 분투하는 영상은 한국 누리꾼들의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예능 프로그램인줄 알고 출연했다"는 임수정 측과 "사전에 충분히 설명했다"는 일본 방송 측 주장이 맞서기도 했다. 그 당시 공분한 이들 중엔 누리꾼과 격투기 관련인들 뿐 아니라 윤형빈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 자신의 트위터에 "비열한 경기였다, 같은 개그맨끼리 3대3으로 제대로 붙어보자"던 윤형빈의 데뷔는 XTM 격투 서바이벌 <주먹이 운다> 시즌3 런칭과 함께 일부 누리꾼들이 '임수정 사건'을 자연스레 소환시키게 했다. 데뷔 이후 윤형빈은 "임수정 선수가 출연한 일본 방송은 분명 잘못 됐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윤형빈 임수정'이란 연관검색어가 따라다녔던 이유도 그래서다.

로드FC는 더욱이 타카야 츠쿠다 선수의 티저 동영상으로 반일 마케팅을 부추겼다. 일장기를 두른 채, "개그맨이냐, 게이냐"라고 도발하는 이 영상은 일부 누리꾼들에게 '타카야 반한'으로 받아들여지는 오해를 샀다. 상대 선수에 대한 개성적인 도발이 격투기 경기와 중계의 한 요소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드FC와 방송 관계자들이 이제 20대 초반인 격투기인 타카야 선수에게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무리수를 두게 한 것은 실로 어이없다. 물론 이러한 영상과 소위 '언플'에 낚여 윤형빈의 데뷔전이 마치 (그래서도 안 될 일이지만)국가대항전이나 되는 듯 '아베'마저 소환하며 부화뇌동하고 있는 일부 격투기 팬들과 누리꾼들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상업주의와 애국주의에 덧칠되기엔 아까운 윤형빈의 분투 

 격투기 데뷔 이후 KBS 프로그램에 출연한 윤형빈.

격투기 데뷔 이후 KBS 프로그램에 출연한 윤형빈. ⓒ KBS


실로, 윤형빈의 데뷔전은 마치 영화 <주먹이 운다>가 증명했듯, 몸으로 상대를 이겨하는 이들, 특히 격투기 선수들의 분투와 고통을 허구 없이 보여준 드라마였다. 그의 훈련 장면에서 비춰지는 진심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 <록키>가 고전으로 남는 것 또한 그러한 육체의 분투에서 오는 본능적인 감동 때문 아니겠는가. 여기에 상업적으로 소환된 반일 마케팅이 낄 자리는 없다. 여기에 편승해 일본 선수 개인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 일도 꼴사납다.

대학을 졸업하고 격투기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23살 신인 선수가 프로 무대의 냉혹한 (상업적인)룰을 따른 것이 그리 잘못일까. 더욱이 경기 전 타카야 츠쿠다 선수는 도발 영상에 대해 "반한 감정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임수정 선수 역시 당시 방송으로 언급되는 걸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로드FC의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상업적인 마케팅에 격투기 신인 윤형빈의 노력과 분투마저 덧칠되어선 곤란할 것이다. '민족주의'와 '애국'과 '반일'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타카야 선수와의 사진 속 윤형빈의 미소가 이를 웅변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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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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