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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아이를 낳는다는 뜻으로  엄마가 되는 것을 말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대부분이 그렇지만 당시에는 멋모르고 감행한다. 특히 첫 아이 때는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남들 다하는데'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다독이게 된다. 하지만 막상 혼자가 되어 분만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그런 과정을 겪으며 나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무사히 치러낸 내가 대견스럽고 기특하기까지 하다.

만삭의 몸, 가죽 냄새가 그리웠다

특이하게 나는 아기를 임신하고 나서 먹는 것보다는 냄새에 민감했다. 다른 무엇보다 가죽 냄새를 맡아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은근히 걱정하기도 하고, 놀리기도 했었다.
 특이하게 나는 아기를 임신하고 나서 먹는 것보다는 냄새에 민감했다. 다른 무엇보다 가죽 냄새를 맡아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은근히 걱정하기도 하고, 놀리기도 했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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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 여름. 나는 만삭의 몸으로 남편과 함께 시내 구두 가게에서 신발을 구경하고 있었다. 말이 신발 구경이지 실은 가죽 구두 냄새를 맡기 위해서였다. 특이하게 나는 아기를 임신하고 나서 먹는 것보다는 냄새에 민감했다. 다른 무엇보다 가죽 냄새를 맡아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은근히 걱정하기도 하고, 놀리기도 했었다.

"음, 가끔 임신부들 중에 냄새에 민감한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구두 가죽 냄새는 저도 처음이군요.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죽 냄새가 독한 것도 아니고, 아마 임신부에게 특별한 기억이 가죽 구두 냄새로 표현된 걸 수도 있어요. 즉, 어느 기억을 통해 임신으로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거죠."

한 번은 병원에 정기검진을 하러 갔는데 남편이 의사 선생님께 내 증상을 상담했다. 의사 선생님의 괜찮다는 말에 남편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아버지 때문인 것 같아요. 아버지한테서 늘 가죽 냄새가 났었거든요. 나도 모르게 불안해지면 아버지를 찾게 되나 봐. 그게 가죽 구두 냄새가 대신 하는 거고…."

내 말에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아버지, 한평생 작은 구둣방에서 구두를 만드셨던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는 거인 같은 존재였다. 구두를 만드느라 거칠어진 손만큼이나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막내였던 나를 유난히 귀여워해 주셨다.

본을 떠서 가죽을 잘라 풀로 붙이고 망치질하는 아버지 곁에서 나는 자투리 가죽으로 소꿉장난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가끔씩 아버지를 졸라 하얀 눈깔사탕을 사먹기도 했다. 그렇게 한평생 구두 만드는 일밖에 모르시던 아버지는 가끔씩 저녁 나절이면 내 손을 잡고 가게 가까운 공원에 가시곤 했었다. 구두가 망가진다고 벗어 놓고 놀고 있으면 아버지는 구두 속에 나뭇잎을 가득 담아 놓거나 때로는 자갈을 가득 담아 놓으셨다. 나는 그것들을 가지고 돌아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곤 했었다.

지금도 내 마음 속에 아버지는 힘들고 어려웠던 모습보다는 내 구두 속에 사랑을 가득 담아주셨던 따뜻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 후로 남편은 새 가죽 구두를 한 켤레 사서 침대 옆에 놓아 주었다.

"자, 이 구두는 당신이 아기를 낳을 때까지 마음껏 냄새를 맡아. 그리고 아기를 낳은 후에는 내가 신을 테니까."

내 곁을 지켜준 아버지, 감사합니다

남편 말처럼 나는 아기를 낳을 때까지, 그러니까 분만대기실에서도 그 가죽 구두를 옆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이 심해지자 옆에 있던 커튼을 입에 물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에는 그 가죽 구두를 입에 물고… 그렇게 반나절을 꼬박 보냈다.

"축하해요. 예쁜 공주님이에요."

어슴푸레 들려오는 간호사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딸을 낳아서 서운해서도 아니고, 온 몸의 뼈가 벌어지는 듯한 아픔 때문도 아니고, 아마도 엄마가 되었다는, 나를 낳아준 엄마의 자리를 출산을 통해 물려받았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꼬물거리는 아기를 보며 탄생의 기쁨으로, 태어난 아기가 눈, 코, 입 모두 정상이라는 안도감으로, 아이와 함께 할 내일에 대한 행복으로….

"정말 수고했어. 정말이지 밖에서 당신 비명 소리에 죽는 줄 알았어. 정말 고마워. 당신도, 아기도 건강해서…. 그리고 아버님께 감사드려. 당신 곁에서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회복실에 누워 있는 나를 찾아온 남편은 몇 번이나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리고 내가 누워 있는 한쪽에는 여전히 구두 한 켤레가 놓여져 있었다. 그런데 구두는 여기저기에 지난 새벽 고통을 참느라 물었던 내 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구두 못 신겠다. 여기 잇자국이 남아 있어서."
"아, 괜찮아. 이 구두 신지 말고 잘 간직했다가 나중에 아기가 자라서 말썽 부리면 보여주는 거야. 엄마가 너 낳을 때 이렇게 힘들었다고."
"우리 아기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당신하고 나를 닮아서. 그리고 아버지가 힘이 되어 주셔서…."

남편은 대답 대신 환하게 웃었다.

남편 말처럼 그 구두는 둘째 아이를 낳기 전까지 잘 모셔 두었다가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낳을 때도 내 곁을 지켜 주었다.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평소에는 냄새를 맡기는커녕 아예 모르고 지나치다가 임신을 하면 자꾸 그 가죽 냄새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 가죽 구두 냄새를 통해 아버지를 찾는 내가 막내는 막내인 것 같다. 갑자기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가죽 구두만큼 투박한 사랑도.

덧붙이는 글 | 출산, 그 아름다운 이야기 공모



태그:#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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