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하면 안 돼" "늘 겸손해야지" 등등. 꼭 어느 위인이 한 말이 아니더라도 나의 부모, 나의 친구, 나의 누이, 내 지인들이 나에게 던진 작은 메시지 하나가 내 삶에 큰 교훈 혹은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꼭 화려한 스타들의 삶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나만의 숨은 사람, 그들을 <오마이스타>와 함께 찾아가 보아요. <편집자말>

 안중경 화가가 9일 오후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자신의 화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대 하고 나서 그림을 안 그린 날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림은 항상 열심히 그렸어요. 실기실에 한 번은 들려서 붓을 잡고는 갔습니다. 그림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2012년 가을, 서울대 미대 출신이 조직한 앙가주망 전시회에서 안중경 작가의 그림을 처음 봤어요. 2013년 9월 앙가주망 전시회에서도 그분의 그림을 봤죠. 개인적으로 피카소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안 작가의 그림을 보는 순간 피카소가 떠올랐습니다. 강렬한 색깔은 야수파 같았고, 입체파의 그림처럼 신체의 부분이 각기 다른 관점에서 표현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기존의 회화에서 보지 못했던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미래가 기대되는 작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올리스트 김남중)

비올리스트 김남중(관련 기사: 25년간 활을 놓지 않았던 김남중...이젠 카네기홀이다!)이 12번째 숨은 사람으로 화가 안중경(42)을 추천했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안중경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 있을 때면 늘 스케치를 했다고.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미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됐다. 방과 후에는 춘천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풍경 수채화를 그렸다. 이젤을 비롯해 간단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를 챙겨 들고 나섰다고.

안중경은 춘천 소양초등학교와 소양중학교를 거쳐 봉의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때 사생대회에 나가서 상도 많이 탔고, 지역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애'로 소문났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공부를 좀 했던 그를 두고 "사법 고시를 봐라.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고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했다.

"고등학교 때 사춘기도 왔고, 카뮈. 사르트르 등의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산다는 게 뭔가'라는 고민이 많았어요. 직장에 출퇴근하면서 사는 것과 저와는 안 어울릴 것 같기도 했고, 세상이 싫었고, 하고 싶은 게 없어졌어요. 그래도 '그림만큼은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안중경 화가가 9일 오후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자신의 화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중경 화가가 9일 오후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자신의 화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중학교 때부터 미술 쪽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안중경. 넉넉하지 않은 환경이었기 때문에 계속 그림 공부를 할 수 있을지 막막했던 시절.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안중경을 위해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에게도 그의 재능을 알렸고, 그는 고등학교에서도 자연스럽게 미술을 할 수 있게 됐다.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 학원도 소개해주고 장학생으로 다닐 수 있게 해주셨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춘천에 있는 미술 학원을 계속 다녔습니다. 근데 막상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어요. 입시 미술의 틀이 정해져 있었고, 그 틀 안에서 가르치시니까 답답했어요. 그래서 혼자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안중경은 고3 때 서울대학교에 지원했지만 낙방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고3 때 내가 잘 났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열심히 안 했다"면서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오후에는 근처 대학교 연못가 벤치에 누워서 책을 봤다. 수업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서 열심히 파고들지 않고 대강 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는 서울대 입시를 치르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는 친구를 보게 됐다. 스스로 "오만했다"고 인정한 그는 한해 더 열심히 노력하기로 했다. 

"아쉬움이 크게 남아서 재수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하셨어요. '미술로 재수하려면 네가 알아서 하라'고 했죠. 막막했는데, 당시 서울대 미대 시험을 함께 본 조소과 선배를 알게 됐고, 그 선배가 '서울에 아는 미술학원에 장학생으로 가자'고 해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가출한 셈이죠."

그는 서울에 와서 선배와 함께 머무는 집의 관리인 아들의 과외를 시작했다. 재수생 시절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연이어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면서 마음고생을 했던 그는 아르바이트하면 딱 물감 살 돈밖에 없어서 보라매 도서관을 다니면서 공부했다.

 안중경 화가가 9일 오후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자신의 화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학원 다닐 때 '중앙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어요. 그 당시 작품 제목은 '생생한 얼룩' 이었고요." ⓒ 이정민


"여름방학이 지나고 9월께 아버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3개월 동안 보태주겠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열심히 해보라'고 하셨어요. 다행히 92학번으로 서울대 서양화과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당시 합격생은 남녀 각각 13명. 재수하던 해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군대에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는 안중경. 그는 그렇게 서울대 92학번이 됐다. 

대학생이 되면 뭔가가 다 해결될 것 같고, 엄청나게 자유로울 것 같지만 막상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당시만 해도 시위가 많았다. 그는 대학교를 "회색빛"에 비유했다.

"답답한 게 대학 오면 해결될 줄 알았지만 아니었고, 뭔가 사회 구조적인 원인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서클에서 책도 읽고 토론도 많이 했죠. 그림보다 오히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시위를 많이 나가게 됐어요. 대학 시절에 도서관 가서 공부하는 파와 데모하는 파, 뭔가 자유를 꿈꾸는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파, 이렇게 세 부류가 있었습니다. 저는 '데모 같은 거 하는 거 아니지?'라는 부모님의 걱정에 특별한 조직에 들어가지는 못했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면서도 답답해하는 제3의 부류였습니다."

당시 안중경은 시대적인 분위기 때문에 화실에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가끔 데모하러 나가고 술을 마시면서, 틈틈이 닥치는 대로 책을 봤다고.

그는 서양화과 학생이었지만 '어떤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막연하게 "온 세상을 떠돌면서 그림을 그리고 자유롭게 살아야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대학교 1,2학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보헤미안처럼" 살았다는 그는 이대로 살다가는 술을 많이 마셔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부모님 생각, 고생하는 형 생각에 군대에 가기로 했다. 육군 포병으로 군대를 다녀온 후, 그는 3, 4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학교 앞 작업실 겸 집에서 그림만큼은 열심히 그렸다.

 안중경 화가가 9일 오후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자신의 화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온 세상을 떠돌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자유롭게 살아야겠다"는 꿈은 늘 꾸고 있었다. ⓒ 이정민


"제대하고 그림을 안 그린 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림은 항상 열심히 그렸어요. 실기실에 한 번은 들러 붓을 잡고 갔습니다. 그림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졸업을 하고 그림을 쌓아두던 그는 친구의 권유로 2001년 2월 동기 중에서는 제일 먼저 인사동 한 갤러리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문학 동아리 선배들이 그림을 할부로 사주었고, 그는 전시한 그림을 판 돈 1000만 원가량을 가지고 프랑스로 떠나 1년 정도 머물면서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귀국해서 지인의 권유로 대학원에 진학하고부터는 매일 같이 실기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대학원에 다닐 때 중앙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어요. 작품 제목은 '생생한 얼룩'이었어요.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대전, 대한민국미술대전 등이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큰 규모의 미술 대전입니다. 중앙미술대전에서 상을 받으니까 단체전 제의도, 개인전 제의도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있고 신기했어요."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꿈꿨던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안중경. 그는 개인적인 작품 활동과 전시 활동 외에도 서울예술고등학교 강사로 9년 동안 일하고 있다.  

 안중경 화가가 9일 오후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자신의 화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안중경 화가가 9일 오후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자신의 화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정민


화가 안중경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어떤 것일까.

"처음에는 황량한 들판 같은 것을 많이 그렸어요. 그러다가 재료를 다루는 자체가 재미있어서 재료 탐구를 많이 했어요. '천이나 종이 등 다른 재료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 연금술 같은 느낌으로요. 재료를 다루는 게 재밌어서 이것저것 시도했습니다. 한때는 측백나무에 꽂혀서 불타오르는 모양을 많이 그렸어요.

'언젠가 사람을 그려야지' 했는데 측백나무를 그만 그려야겠다 싶더라고요. '사람을 그릴 때가 됐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는 사람만 그리게 됐습니다. 우선 해부학책 같은 것을 보고 개와 고양이를 먼저 그렸어요. 스케치북 같은 데 드로잉을 좀 하다가, 어느 정도 됐다 싶어서 유화로 사람을 그리고 있어요. 피부를 중심으로 얼굴을 그리고 있습니다."

안중경은 서울대 서양화과 동문이 주축을 이루는 '앙가주망' 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앙가주망은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인 전시회를 연다.

"장욱진 선생님의 그림을 되게 좋아하는데 앙가주망의 회원이셨어요. 기존 회원의 추천을 받으면 포트폴리오를 보고 의견을 나눈 뒤 회원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룹으로서는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단체입니다. '앙가주망'은 불어로 '참여'라는 뜻이에요. 그림으로 사회 참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죠."

  안중경 화가가 9일 오후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자신의 화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선 사람을 계속 그릴 것 같고 제가 느끼고 파악한 제 방식대로 표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림 그리는 거 자체가 재미있고 좋아서 하는 건데 그게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다행이고 고맙지만, 평가는 저의 몫은 아닌 것 같다" ⓒ 이정민


안중경 화가는 "우선 사람을 계속 그릴 것 같다"면서 "내가 느끼고 파악한 방식대로 표현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그는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재미있고 좋아서 하는 것"이라면서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다행이고 고맙지만, 평가는 내 몫이 아닌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안중경 화가는 마지막으로 그림을 보는 방법 한 가지를 덧붙였다. 

"느끼는 대로 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배경 지식이 필요한 작품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느끼는 대로 당당하게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숨은사람찾기⑬] 김정한 작가를 추천합니다.


화가 안중경은 다음 숨은 사람으로 서울대 서양학과 동기인 김정한 작가를 추천했다.

"지금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일합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봤는데 항상 진지하고 열심입니다. 저보다 한 살 많아서 형이라고 부르는데, 형의 전시 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게 타워 크레인 기사를 주제로 한 작품이었어요. 타워 크레인 기사가 생활하는 공간 자체를 갤러리에 그대로 만들어 놓고, 타워 크레인에서 생활하는 것을 영상으로 찍었거든요. 시도 자체가 좋았습니다. 김정한 작가는 진지하고 좋은 작가예요. 지금도 계속 실험적인 영상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안중경 서울대 서양화과 앙가주망 장욱진 숨은사람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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