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드 르윈> 포스터. 1월 29일 개봉.

영화 <인사이드 르윈> 포스터. 1월 29일 개봉. ⓒ (주)블루미지

* 영화 내용의 일부가 담겨있습니다

최근 국내 개봉을 앞둔 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1960년대 초반 미국의 포크 음악계(정확히 얘기하면 밥 딜런 데뷔 이전)를 배경으로 무명 음악인의 현실, 좌절을 가감없이 그려 해외 평단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사실 1960년대는 록큰롤의 시대였다.  비틀즈를 비롯한 일련의 밴드들이 미국 시장을 휩쓸었던 반면, 수많은 포크 음악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음반들을 내놓았지만 정작 시장에서 환영 받은 이는 몇 안된다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했다.

록큰롤 시대에 사라진 '포크'

LP 시대의 끝자락이던 1990년대 초반, 미국 포크 명문 레이블 뱅가드(존 바에즈의 초기 소속사) 음반이 라이센스로 국내 시장에 발매된 적이 있었다. 이들 음반들은 과연 얼마나 팔렸을까. 안타깝지만 차마 판매고를 논하기 어려울 지경이었고, 대부분의 출시 음반들은 반품 처리,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모습은 모던 포크의 중심, 미국 시장도 딱히 다를 바 없었다. 

킹스턴 트리오, 밥 딜런, 피터 폴 앤 메리, 존 바에즈, 사이먼 앤 가펑클, 조니 미첼, 주디 콜린스 등은 인기 차트를 휩쓸었고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제임스 테일러, 존 덴버, 닐 다이아몬드, 잭슨 브라운, 칼리 사이먼 등 일련의 싱어송라이터 군단들은 1970년대 팝·록 음악계의 한 획을 그은 바 있다.

 <인사이드 르윈>의 실제 모델, 데이브 반 롱크.

<인사이드 르윈>의 실제 모델, 데이브 반 롱크. ⓒ Universal Music

하지만 정통 포크 음악만을 고집했던 음악인들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미국 모던 포크의 아버지이자 밥 딜런의 음악적 스승이었던 우디 거스리는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뒀고, 저항적인 요소를 지닌 이른바 '프로테스트 포크' 음악을 들고 나왔던 필 옥스는 FBI, CIA 등 정보 기관의 탄압과 감시 속에 힘겹게 활동을 이어가다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인사이드 르윈>의 실제 모델인 데이브 반 롱크도 굳이 분류하자면 후자에 가깝다. 대중들에겐 그저 빌보드 핫 100 인기곡 배출한 적 없는 무명의 싱어송라이터였을 뿐이니까 말이다.  

밥 딜런처럼 일렉트릭 악기를 대폭 수용한 '포크 록' 성향으로 변모한 이들(러빙스푼풀, 버즈,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 앤 영 등의 밴드를 포함)과 대중적 취향의 팝 음악 요소를 대거 포함시킨 뮤지션들을 제외하면 결국 록큰롤 시대를 순탄하게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1960년대 포크 음악에 대한 코엔 형제의 오마주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 분)는 무능력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는 인물이다. 당장 빈털털이 신세인 터라 녹음 세션에 참여한 자신의 저작권도 포기하고 급전을 마련해야 했고, 전 여자친구의 임신으로 인한 중절 수술도 별 생각없이 진행시킨다. 오디션 기회를 얻기위해 떠난 시카고로의 여정 역시 무계획 무대책으로 시작된 일.

이렇듯 르윈 데이비스는 자신의 앞에 놓인 험난한 상황에 딱히 능동적으로 대응하던 인물은 아니었다. 여타의 영화였다면 개과천선 후 성공, 주인공의 변화 혹은 인생역전을 그려내는 흐름으로 진행되었겠지만, <인사이드 르윈>이 선택한 방식은 달랐다.

 영화 <인사이드 르윈>의 한 장면.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 분, 왼쪽)와 짐 버키(저스틴 팀버레이크 분).

영화 <인사이드 르윈>의 한 장면.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 분, 왼쪽)와 짐 버키(저스틴 팀버레이크 분). ⓒ (주)블루미지


르윈의 마지막 무대일지도 모르는 카페 공연 후 빈 자리를 채운 건 하모니카와 통기타를 멘 청년 밥 딜런이다. 이미 알려진대로 밥 딜런의 등장은 당시 음악계 판도를 바꾸는 대사건이 되었다. 반면 르윈 데이비스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코엔 형제는 관객의 상상에 맡겼다.

극 중 선원 조합에서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아버지처럼 선원이 되었을까? 아니면 데이브 반 롱크 마냥 계속 무명 음악인의 길을 걸었을지도. 물론 르윈이 저작인접권을 포기했던 '플리즈 미스터 케네디'(Please Mr. Kennedy)의 히트를 예상한 영화 속 포크 음악팬의 대사를 생각하면 여전히 그는 큰 돈을 만질 기회도 놓쳤을 공산이 크지만. 

<인사이드 르윈>은 데이브 반 롱크를 모델로 제작되었지만 그시절 포크 음악인에 대한 오마주를 잊지 않았다. 폭설 내리는 길을 거쳐 떠난 시카고로의 여행은 밥 딜런의 무명시절 뉴욕행을 사뭇 연상케한다.(실제로 지난 2005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만든 밥 딜런 다큐멘터리 영화 <노 디렉션 홈>을 보면 이와 유사한 그 시절 자료 영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르윈이 아버지가 입원한 요양병원을 찾아간 장면 역시 밥 딜런이 그의 우상이던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정신병원에 갔던 역사적 사실과 묘하게 교집합을 이룬다. 그의 노래 '페어웰'(Farewell)의 미공개 버전을 영화에 삽입한 것도 그런 의미의 연장선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

극의 초반 저스틴 팀버레이크, 캐리 멀리건, 스타크 샌즈가 혼성 3인조 구성으로 부르는 포크 고전 '파이브 헌드레드 마일스'(500 Miles)는 실제 이 곡을 히트시킨 피터, 폴 앤 메리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지난 2000년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이후 코엔 형제와 꾸준히 호흡을 맞춘 명 프로듀서 티-본 버넷의 뛰어난 선곡 능력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했다.

영화는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카페 무대를 전전하는 별볼일 없는 포크 가수 르윈 데이비스가 겪는 일련의 일들을 덤덤하게 그려낸다. 여기에 양념처럼 등장하는 코엔 형제 특유의 유머와 로드 무비 형식이 결합, 극 전개상 단조로움도 어느 정도 탈피했다. 특히 이야기의 전개상 중요한 '씬 스틸러' 역할을 한 고양이의 등장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영화 속 르윈 데이비스, 현실 세계의 데이브 반 롱크는 어떤 의미에선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인물들 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과연 인생의 실패자들이었을까. 코엔 형제는 "이런게 바로 진짜 인생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영화 음악 속 뒷 얘기

 영화 <인사이드 르윈>의 한 장면.

영화 <인사이드 르윈>의 한 장면. ⓒ (주)블루미지


(1) 극 중 르윈의 전 여자 친구, 진 역할을 맡은 캐리 멀리건은 실제로 포크 뮤지션의 부인이다. 최근 각광받는 영국 출신 포크 그룹 멈포드 앤 선즈의 리더, 마커스 멈포드가 바로 그녀의 남편. 영화 속 카페 공연 무대에서 4인조 구성으로 불린 아카펠라 곡 '올드 트라이앵글' (The Auld Triangle') 녹음에도 직접 참여했다. 

(2) 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밥 딜런의 노래 '페어월'(Farewell)은 그 무렵 딜런이 자주 클럽 무대에서 불렀던 곡으로 이후 1963년 처음 녹음되지만 정식 발표는 무려 37년이 지난 2010년이 되서야 그의 오피셜 부트렉 시리즈 9집 <위트마크 데모스 : 1962-1964>를 통해서 이뤄졌다.  영화에선 또다른 미공개 스튜디오 버전을 사용했다.

(3) 시카고 클럽 오디션에서 르윈이 부른 '더 데쓰 오브 퀸 제인'(The Death Of Queen Janes)은 실제론 영화 속 배경보다 10년 후인 1971년에 완성된 곡이다. 300년 넘게 구전된 가사를 토대로 아일랜드 포크 가수 대씨 스프라울이 새롭게 멜로디를 붙여 만들었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블로그(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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