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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예쁜 아기를 예뻐할 수 없는 병이라니...
 이렇게 예쁜 아기를 예뻐할 수 없는 병이라니...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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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끝 즈음에서 이제 막 태어난 나의 소중한 아이는 첫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 아이를 받아 든 남편의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맻혀 있었다. 분만실에 있던 모든 의료진들은 '축하한다', '수고 많았다'라며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약간 붕 뜬 듯한 기분의 나도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 지배적으로 깔려 있었다.

'어떡하지? 이제 정말 낳아버렸어….'

간절히 바란 아기였다. 임신 기간 내내 입덧으로 엄마를 힘들게 하지도, 주수 평균보다 덜 커서 혹은 더 커서 엄마를 걱정시키지도 않았다. 일을 다니며 저녁에는 대학원까지 가는 엄마를 이해하며 뱃속에서도 엄마를 도와준 정말 착한 아기였다. 그 아이를 품고 있는 하루하루는 나에게 벅찬 감동이었고 기쁨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불미스런 생각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나는 '어떡하지? 이제 정말 낳아버렸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감히 이렇게 소중한 새 생명 앞에서 나는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가족들의 축하인사와 직장 동료, 친구들의 축하 문자 앞에서도 나는 그저 덤덤했다. 아기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고, 밥맛이 돌지도 않았다. 임신 기간 내내 그토록 바란 '엎드려 자기'가 가능해졌음에도 그것이 전혀 반갑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신생아실 유리 건너 아기를 바라보며 남편 옆에서 억지 미소를 짓고 있는 순간 깨달았다.

'내게 지금 산후우울증이라는 것이 왔구나. 그것도 엄청 독하게. 이리도 빨리.'

보통 산후우울증은 아기를 낳고 1주 혹은 2주 내에 발생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출산 전에 책에서 배웠다. 간혹 나처럼 낳자마자, 혹은 낳기 전부터 앓는 사람도 있다고. 난 그게 진정 남의 일이라 생각해왔다. 매일매일 아기를 볼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출산 준비물을 준비하고 몇 가지는 직접 만들며 신나했다. 평소에 우울증을 앓고 있지 않았고, 그저 하루하루를 신나게 사는 게 목표였던 사람이었던지라 내가 산후우울증에 걸릴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산후조리원에 앉아 밥을 먹을 때, 혼자 조용히 잠들 때 특히 우울해졌다. 참다 참다 눈물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을 땐 TV 소리를 높이고 엉엉 울었다. 젖을 먹으러 내 방에 들어온 아가의 꼬물거림과 귀여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도 '덩아(태명) 미안해'라며 울먹거리곤 했다. 뭐가 미안한지도 모른 채. 산후조리원에 들어온 지 5일째에는 급기야 남편에게 나 좀 여기서 꺼내달라며, 답답해 죽을 것만 같다며 오열했다.

'내가 우울증에 걸릴 줄이야'... 남편 붙들고 오열했다

남편은 당황했고 그런 내 자신에게 나는 더 당황했다. 남편은 몸이 회복되는 대로 나가서 바람도 쐬고 기분전환을 하자며 달래고 또 달랬지만 내 울음은 쉽사리 그치지 않았다. 어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살면서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두려움에 얼이 빠지기도 했다.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는 건가? 내 나이 이제 스물아홉인데 난 이제 아무 꿈도 꾸지 못하고 실행해보지도 못하고 끝나는 걸까? 내가 직장에 복귀하면 잘 할 수 있을까? 일을 하며 아이는 어떻게 키우지? 내가 내 엄마처럼 내 아이를 사랑할 수는 있을까? 저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부어 있는 이 배는 들어가기는 할까? 얼굴도 못생겨지고 몸매는 망가지고 이리저리 다 아픈데 난 이제 그저 두리두리한 아줌마가 되어 장이나 보고 집안 청소나 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걸까?'

이런 생각이 급습하면 대체 내 자신을 어떻게 통제하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울고 소리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을 수밖에.

산후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들어간 친정집에서는 그럴 수조차 없었다. 친정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감정을 더 숨겨야 했다. 하지만 친정집에서 내 산후우울증은 더 폭발하고 있었다. 두 시간마다 먹을 것을 찾는 아기 때문에 깊은 잠을 못 잤고, 아기는 이유 없이 칭얼거리기도 하고 안아달라고 울어대곤 했다.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어린 아기였건만, 난 이상하게도 아기가 사랑스럽지도 예쁘지도 않았다.

아기는 객관적 미의 기준으로 봐도 귀엽고 잘생긴 편에 속했지만 나에겐 그저 늘 자기만 알고, 자기 것만 생각하는 '작은 악마'로만 느껴졌다. 친정엄마가 걱정할까봐 억지로 음식을 먹어야 했고 억지로 웃음을 지었던 탓일까? 내 우울증은 마음의 병을 넘어 몸의 병으로까지 번지고 있었다. 먹는 족족 화장실로 달려가 엄마 몰래 토악질을 했고, 먹는 것이 없으니 빈혈은 심해져 쿵쿵 쓰러지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더 좋은 먹을 것과 철분제 등을 권했다. 원인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는데….

아이를 낳은 지 4주 뒤, 산후검진일이 왔다. 함께 가자던 남편을 그냥 출근하라며 내보내고, 친정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 하루는 종일 엄마에게 아기를 부탁하겠다고 말했다. 그 하루만은 정말 아기도, 함께 아기를 봐주며 힘들어하는 친정엄마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하며 지내볼 생각이었다. 서울 광진구에 있는 집에서 중구에 있는 산부인과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늘 보던 일상적인 풍경을 접했다. 산후검진을 받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내 눈에 '신경정신과'라는 글씨가 들어왔다.

난 내가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 스스로 극복 가능할 거라고 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신력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던 그때, 난 당일진료 접수를 하고 조용히 순서를 기다렸다. 정신과 선생님과 상담을 했고 난 아주 전형적인 '산후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나에겐 일주일치의 항우울제가 처방됐다. 과연 이 약 몇 알이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걸까? 의심이 갔지만 약국에서 약을 받아 나오며 한 끼 복용량을 꿀꺽 삼켰다.

'미친 사람 취급 받을까봐' 두려움에 도움 외면하지는 말아야

그리고 종일 명동을 걸어보고, 명동성당에 들러 기도도 하고, 아가씨였던 언젠가처럼 책 한 권을 사 카페 창가에 앉아 책도 읽었다. 그리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에는 들어가 보지도 않았던 길거리 보세 옷가게를 돌아다니며 유치하기 짝이 없는 프린팅 티셔츠도 사보고, 어린 여학생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플라스틱 귀걸이도 샀다. 자주 가던 명동의 한 분식집에 들러 혼자 맛있는 걸 사먹고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까 먹은 음식이 더 이상 울렁거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항우울제 복용 3일째, 아기가 너무나 예뻐 보였다. 여느 엄마처럼 아기 몸을 마사지 해주면서 '우쭈쭈쭈' 아기를 웃겨보기도 하고, 품에 쏙 들어오는 그 녀석을 안고 창가로 가서 밖도 구경시켜주고 동요도 불러주며 종일 흥얼거리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대로, 아기를 보되 하루에 1시간 정도는 최대한 이기적으로 내 생각만 하며 지냈다. 엄마에게 아기를 부탁하고 동네를 산책하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도서관에 가면서...

그렇게 1주일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바뀌었다. 내 아이는 내 삶을 갉아먹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더 행복하게 해줄 소중한 존재이고, 비록 나는 그 힘들다는 '워킹맘'의 세상에 입성하게 되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난 지금도 충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며 꿈꾸고 그것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고. 그렇게 약 한 달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나는 아주 정상적인 예전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

가끔 회사에서, 혹은 여러 단체에서 만난 출산 후의 엄마들을 보며 '갑자기 사람이 왜 저렇게 됐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아기를 낳기 전보다 무기력하고, 다소 신경질적으로 변했으며, 말수가 적어진 사람들. 예전에는 그런 '신입 엄마'들을 보며 '아기 때문에 몸이 많이 힘들어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알 것 같다. 그분들은 몸은 회복시켰지만 마음을 회복시키지 못하고, 차마 주변에 '나 힘들다'말하지 못한 엄마들이었다는 것을.

아가씨 시절엔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엄마들을 볼 때면 '왜 갑자기 히스테리야?'라고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요새는 그런 이들을 만날 때면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거나 남편이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오후 시간에 함께 운동을 하자고 한다. 그분들이 나처럼 산후우울증을 극복하기를 바라면서...

산후우울증은 걸려보기 전에는 모르는 마음의 병이다. '예쁜 아기를 보며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는 주변의 질타를 들을까봐,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까봐,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런 병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극복 가능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하듯이, 한두달 지나면 자연스레 치유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스스로 정도가 심하다고 느껴지면, '미친 사람으로 취급 받을까봐'라는 두려움에 도움을 저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주변의 도움과 정신과의 간단한 상담과 처방으로 보다 빨리, 보다 효과적으로 치료 가능한 마음의 질병이니까. 그리고 나의 예쁘고 사랑스런 아기를 좀 더 빨리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길이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출산, 그 아름다운 이야기' 기사공모 응모글입니다.



태그:#출산, #산후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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