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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로 인해 전소된 서울 남대문로 숭례문 주변에 11일 오전 가림막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방화로 인해 전소된 서울 남대문로 숭례문 주변에 11일 오전 가림막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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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되었더라도 쓸 수 있는 고주(중심기둥)를 그대로 남기고 그 자리에 새 나무를 이어 붙였어요. 이곳엔 단청을 칠하지 않고 일부러 그을린 부분을 드러냈어요. 과거의 참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인 거죠."

지난 8월, 숭례문 문루관람 때 문화재 해설사가 복구과정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대형으로 출력한 고주 사진까지 준비한 것을 보면 문루관람 때마다 이를 소개했을 터다. 사실 고주는 지난 5월 복구완료 행사 즈음 문화재청 측이 대대적으로 홍보한 내용이기도 했다. 이는 숭례문 복구의 상징과도 같았다. 숭례문이 '전통'과 단절돼 있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문화재 부실관리의 '과'를 잊지 않고 보전하겠다는 포부를 알리려는 듯했다.

24일, 복구완료 후 해를 넘기기 전에 다시 찾은 숭례문. 그 위용은 여전히 위풍당당했지만 한편으로 초라했다. 단청, 목재, 기와까지... 숭례문은 갖은 논란에 시달려야만 했다. 부실복구 논란으로 문화재청과 문화재 해설사가 고주를 드러내며 보인 자신감은 어느새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전락했다.

그래서일까. 11월, 숭례문 문루관람이 돌연 중단됐다. 당시 문화재청은 "계단 결빙이 예상돼 안전사고 예방 차원에서 중단하는 것"이라 했으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존 운영계획 어디에도 동절기 문루관람 중단과 관련한 내용은 없다. 11월부터 관람이 중단되는데 이를 공지한 시점이 10월 22일이다. 단 10여일을 남기고 관람 중단을 알린 것은 뭔가 계획적이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숭례문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관람객의 시선이다. 숭례문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은 끊임이 없으나 숭례문을 바라보는 관광객의 감탄은 끊긴 지 오래다. 부실복구 논란 이후부터다. 취재하는 동안 착잡하고 안타까운 표정을 드러내는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완벽한 복구를 자랑하던 이 건축물이 부실복구의 상징으로 전락한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숭례문 문루관람 때문화재 해설사가 20분동안 숭례문의 특성과 복구과정을 소개하는 모습이다.
▲ 숭례문 문루관람(특별관람) 숭례문 문루관람 때문화재 해설사가 20분동안 숭례문의 특성과 복구과정을 소개하는 모습이다.
ⓒ 금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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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숭례문 복구 내내 전통기법 및 도구 사용을 강조했으나 이는 심하게 과장된 것이다. 단청을 구성하는 안료는 11개 종류 중 9개가 일본산인데다 일부는 인공안료인 것으로 드러났다. 기와는 전통방식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해 색이 변하는 후유증을 앓는 중이다. 전통 도구를 만들어 썼다는 것 또한 홍보와 달리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평소 사용하던 현대식 도구를 썼다.
▲ 숭례문 미디어데이 발표자료 문화재청은 숭례문 복구 내내 전통기법 및 도구 사용을 강조했으나 이는 심하게 과장된 것이다. 단청을 구성하는 안료는 11개 종류 중 9개가 일본산인데다 일부는 인공안료인 것으로 드러났다. 기와는 전통방식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해 색이 변하는 후유증을 앓는 중이다. 전통 도구를 만들어 썼다는 것 또한 홍보와 달리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평소 사용하던 현대식 도구를 썼다.
ⓒ 금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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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복구, 자신감에서 좌절감으로

숭례문 복구는 국가적 역량이 총동원된 공사였다. 공사 예산이 245억 원에 육박하고 연인원만 3만5000명이 투입됐다. 신응수(대목장), 이재순·이의상(석장), 홍창원(단청장) 한형준(제와장), 이근복(번와장), 신인영(대장장) 등 중요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들의 참여도 돋보였다. 공사자재 및 공사방식 면에서 철저히 전통을 고집했다고 자평했다. 특히, 보도자료를 통해 단청, 기와 등은 명맥이 끊긴 전통방식을 이번 기회에 되살려 공사를 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자신감을 드러낸 단청부터 벗겨지기 시작했다. 복구 준공식 후 5개월 만인 10월 8일, 단청 곳곳에서 박락(벗겨짐) 현상이 드러난 것이다. 처음 7곳의 박락 현상이 보도됐고 이후 1층에 20곳, 2층 61곳 등 단청의 대대적인 박락이 확인되며 부실복구 논란이 촉발됐다. 논란이 일자 문화재청은 지난 5월 26일 사태를 처음 파악했음을 시인했다. 복구 완료 후 채 한 달도 안 돼 단청이 벗겨진 것이다. 언론 보도 이전에 박락 현상을 인지했음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실을 숨겼다는 점 또한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논란은 단청 박락 원인분석 과정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른바 '일본산 안료' 논란이다. 문화재청은 숭례문 복구과정에서 전통안료를 사용했음을 강조했으나 실은 대부분이 일본산이었던 것이다. 11가지 종류의 안료 중 무려 9가지를 일본에서 수입했다. 갈색인 석간주와 흰색 가루 호분을 제외한 모든 색이 일본산인 셈이다.

접착제라 할 수 있는 아교 또한 일본산을 썼다. 물론 문화재청은 본래 천연안료로 복원하려 했으나 천연안료 복원이 쉽지 않아 천연안료를 사용 중인 일본의 것을 사용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 안료와 아교는 우리 건축에 단 한 번도 칠해진 적 없어 검증된 바 없다. 당연히 우리 건축에 맞는 적절한 배합비율과 농도, 칠하는 기술 및 칠의 정도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박락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숭례문 단청의 칠이 벗겨지는 박락현상은 80여 곳에서 발생 중이다. 지난 11월 긴급점검을 실시한 점검단 다수는 단청 칠을 모두 벗기고 다시 칠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 숭례문 단청 박락현상 숭례문 단청의 칠이 벗겨지는 박락현상은 80여 곳에서 발생 중이다. 지난 11월 긴급점검을 실시한 점검단 다수는 단청 칠을 모두 벗기고 다시 칠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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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 목재 기와까지... 숭례문 총체적 '부실복구'

일본산이라는 사실을 떠나 안료 자체의 부적절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우선 숭례문 복구 때 들여온 일본산 안료가 천연 안료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것. 천연 안료보다 값이 10배 정도 저렴한 화학재료가 첨가된 안료가 사용된 것이다. '일본산이지만 천연 안료'라는 문화재청의 해명이 무색해졌다.

이뿐이 아니다. 해당 일본산 안료가 부실해 박락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공사를 강행한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문화재청의 '숭례문 복원용 단청안료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숭례문 복구에 사용된 일본산 안료가 부실하다는 내용이 있다. 인공풍화 실험결과 붉은색 안료인 일본산 '진사'의 변색과 탈색이 심해 사용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논란은 단청에만 그치지 않고 목재로 옮겨 붙으며 총체적 부실이 됐다. 점검 과정에서 2층 누각의 기둥과 서까래가 흉하게 갈라지는 현상이 관측된 것. 이는 목재를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말리지 않은 탓으로 추측된다. 목재 간 결합 불량도 밝혀졌다. 못을 쓰지 않고 부재를 잇는 전통건축 특성 상 부재의 이음새가 중요한데 이음새 10여 곳의 결합 상태가 불량했다. 이 와중에 지난 11일 <시사저널> 보도를 통해 숭례문 복구 때 금강송이 아닌 러시아산 싸구려 소나무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현재 문화재청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당장 큰 문제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기와도 뜨거운 감자다. 숭례문 복구공사에 사용된 기와가 물 흡수율이 높아 동파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문화재 건축에 얹은 기와는 모두 공장기와다. 전통기와 제작의 맥이 끊긴 탓이다. 숭례문 복구 과정에서 전통기와를 부활시켰으나 이 역시 충분한 실험을 거치지도 않았고 전통기술을 완벽하게 익혔다고 보기도 어렵다.

숭례문 복구 공사에 사용된 전통기와의 물 흡수율은 10~14%로 공장기와의 흡수율 9%보다 높다. 이 때문에 겨울철 동파 가능성이 우려된다. 더욱이 전통기와를 굽는 적정온도를 유지하는 데 실패한 까닭에 벌써부터 기와의 색이 변하고 있다. 지난 11월 7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숭례문관리사무소가 작성한 7~9월 '관리일지'에는 "1층 기와, 시공 때보다 많이 퇴색되고 있음", "1, 2층 기와 색상 변색" 등의 기록이 있다고 한다.

문화재청 직원이 숭례문 2층 문루 위에서 기와 및 단청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 숭례문 점검중인 문화재청 직원 문화재청 직원이 숭례문 2층 문루 위에서 기와 및 단청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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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복구 및 복원을 행정적 성과와 분리해야

숭례문 복구 공사 예산 사용 내역을 보면 공사에 가장 중요한 부재인 목재와 관련한 예산은 전체 예산의 0.9%인 2억3400만 원에 불과하다. 반면 홍보에 사용된 예산은 꽤 많다. 각종 기념행사, 관련 영상물 제작, 숭례문 전시관 보조금과 같은 항목에 쓰인 예산만 24억 원에 육박한다. 자재비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중요한 본질보다 이를 포장하는 데 더 많은 예산을 들인 셈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숭례문 복구 자체가 목적이기보다 행정적 성과를 과시하는 수단이었음을 드러낸다.

5년 4개월이라는 짧은 공사기간 또한 마찬가지다. 일각에선 이명박 정부의 치적 쌓기용으로 공사를 성급하게 진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지난 11월 3일 JTBC와 한 인터뷰에서 "정치하는 사람이나 권력을 쥔 사람들이 '빨리빨리 정리해라, 빨리빨리 공사해라'…,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공사를 다 하라고 한 거예요"라고 비판했다.

결국 정치권력이 행정적 성과로 삼기 위해 '속도전'을 벌인 것이다. '속도전'은 단청, 기와, 목재 등 전반적인 부실복구의 원인이 됐다. 시간에 쫓겨 제대로 건조하지 못한 나무이기에 결국 갈라지고 뒤틀렸다.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전통안료 복원을 포기하고 일본산을 들여왔기에 단청이 곳곳에서 벗겨지고 있다. 완벽한 전통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채 만든 기와는 벌써 탈색됐고 동파될 우려까지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재인 금각사는 방화로 전소된 후 총 복원기간만 반세기가 걸렸다. 5년 4개월 만에 숭례문을 복구한 우리의 현실과 대조된다. 문화재 복구 및 복원을 정치권력의 치적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문화재 보전 자체를 목적으로 공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금각사로부터 배울 때다. 그렇지 않으면 제2, 제3의 숭례문 부실복구와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문화재청은 화마에 무너진 숭례문 문루를 5년 4개월에 걸쳐 복구했으나 단청, 목재, 기와 등 전방위적 부실복구 논란에 휩싸였다.
▲ 숭례문 모습 문화재청은 화마에 무너진 숭례문 문루를 5년 4개월에 걸쳐 복구했으나 단청, 목재, 기와 등 전방위적 부실복구 논란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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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숭례문, #부실복구, #단청, #기와, #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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