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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길'이 열린 걸까? '안녕들 하십니까', 일곱 글자가 사회적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로지 '경제 성장'만 부르짖는 사회에서 '사람의 성장'에 주목해온 문화학자 엄기호. 그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등의 저서를 통해 교육 불가능의 시대, 어떻게 사람의 성장이 가능할 것인가를 화두로 삼아 대학 강의와 글쓰기를 해온 소장학자다.

2013년 한해를 마무리 짓는 시점에서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엄기호 선생을 모시고 연속 2회 교육 특강을 진행했다. 서울시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진행된 두 차례의 강연 중 지난 13일에 열린 <무기력한 교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편이 10대들의 이야기였다면, 18일에 열린 <냉소하는 강의실, 계몽에서 말걸기로>편은 20대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두 번째 강연은 때마침 터진 '안녕 대자보' 현상과 맞물려 더욱 관심을 끌었다. 발화점이 되었던 첫 대자보에 관한 엄 선생의 분석이다.

'안녕' 대자보가 말하는 것

 고려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붙어있는 주현우(27,고려대) 학생의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학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
 고려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붙어있는 주현우(27,고려대) 학생의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학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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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언어다. 글을 잘 썼다는 게 아니라 서술방식이 지금까지의 방법과 전혀 달랐다. 기존 형식은 '내가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안녕 대자보'는 '저들이 안녕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안녕하지 못하다'는 식이다. '타인'으로 시작해 '나'를 거쳐 '우리'를 초대하는 구조다. 신자유주의의 윤리는 '남을 돌보지 마라'며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안녕 대자보'는 정확히 그 반대다. 말의 힘을 살렸다."

대학의 '냉소적 주체들'에 대해 엄기호 선생은 대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라 성과사회의 논리가 교육 현장으로 침입한 결과라고 말한다.

"성과사회는 경쟁을 내부화했다. 과거의 경쟁은 외부의 적과 싸우면 되었지만, 지금은 단기평가, 개별평가가 일반화되면서 '협업'이 아닌 '개인'의 성과가 강조되는 구조다. 따라서 탈락하는 동료의 삶을 연민하거나, 고통을 공감하기 시작하면 조직에서 버틸 수가 없다.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이다. '다른 존재들과의 연관 속에서나'를 사고하지 못하게 분절시켜놨다."

20대들의 냉소를 이해하는 코드다. 엄 선생에 따르면, 토론식이나 자기 이야기를 공유하자는 취지의 수업에 학생들은 더욱 냉소적이라고 한다. "말해봤자 해결된 게 없으니까", "어차피 지켜지지 않을 거니까"라며 입을 닫는다. 말을 한다는 게 허망하다 못해 귀찮은 일이 돼버렸다. 삶으로부터 말이 겉돈다. 말이 삶에 밀착되었을 때 비로소 힘을 가지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말의 힘을 잃어버린 사회는 망한다

"말이 '실현'은 안되더라도 '이행'은 되어야 한다. 아무도 말(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건 망한 사회다. 말이 이행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행되지 않은 말에 대한) 사과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 말의 힘을 믿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헌데 이행도 없고, 사과도 없는 현실이다 보니 말에 대해 냉소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말은 권력자의 것이었다. 힘 있는 자만이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평등하다. 그렇다면 모두가 말할 수 있는 사회에서 권력자들은 자신의 힘을 어떻게 과시하려할까?

"말을 '쌩까'는 방식이다. '그래, 떠들어봐. 다 떠들었어?' 그러고 무시하는 거다. 피지배자들을 떠들게 해놓고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안 듣는 것으로 권력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피지배자들의 말은 갈수록 허망해지는 것이다.

대신 소비자본주의는 말하는 자들을 '고객' 상태로 불러들인다. 이를테면 고객센터에서 분노를 터트리게 하는 방식. '감정노동'이 생겨난 이유다. 자신의 말을 쌩까는 권력자들에 대한 화풀이를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풀게 하는 것이다. 권력은 이런 말의 이중구조를 만들어 놓고 내빼버렸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물어보자. 어떻게 말의 힘을 복원할 것인가. 엄 선생은 '안녕 대자보' 현상에서 그 희망을 발견했다.

"지금 둘러보면 자기 고통에 대한 서술은 넘쳐난다. 모두가 피해자인 듯하다. 자기계발서, 힐링 열풍이나 정신과 치료가 보편화되는 것은 그런 흐름이다. 피해자로서 자기 고통을 서사화하는 것은 '말하기'다. 반면 '안녕 대자보'는 타인에게 '말걸기'다. 말이 이어지면 이야기가 된다. '말걸기'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식인 것이다. 말이 힘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사례를 우리는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다."

우려는 있다. '안녕 대자보' 흐름을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기특'해 하거나, 새로운 일로 포장해 '기획'하려는 태도다.

"물론 그 진심은 이해하지만, 자기 모교에 가서 응원메시지를 붙이는 방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 공간에서 진짜 말해야 하는 사람들을 팔꿈치로 밀어낼 수 있다. 자기 공간, 자기가 처한 삶의 현장에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물론 직장인이라면 회사에 대자보를 붙인다는 게 목숨 거는 일일 것이다(웃음). 고등학생들도 하고 있다. 아무도 보호해줄 수 없는 자기 삶의 공간에서 대자보를 붙이며 세상에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안녕 대자보'의 운명은 여기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희망 혹은 당부

 엄기호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이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 '교육 불가능의 시대 사람의 성장을 묻다'에서 '무기력한 교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엄기호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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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연장에는 13학번 대학생을 비롯해 현직 교사, 학부모 등이 참석해 열기를 더했다. 강연을 듣기 위해 충북 청주에서 올라왔다는 한 대학생의 질문이 피날레를 장식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정부를 보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 선생의 답변은 그리스 신화 '오디세우스와 세이렌'의 이야기로 출발했다. 세이렌은 바다를 건너는 선원들을 매혹적인 노래로 유혹해 빠져 죽게 만드는 바다의 요괴. 바다를 지나가야 했던 오디세우스는 아름다운 노래를 자기만 들으려고 선원들에게는 밀랍으로 만든 귀마개를 준다. 노래를 듣지 못한 선원들은 노를 저어 묵묵히 바다를 평온하게 지나간다는 이야기다. 이를 '2013 대한민국' 엄기호 버전으로 바꾸면 이렇다.

"오디세우스(권력자)가 정말 노래를 들었을까? 그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가 노래를 듣는 척 연기했다고 본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배가 무사히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노를 젓는 선원들이 세이렌의 노래에 귀를 막고 바다를 '쌩' 지나가길 원했다. 그렇다면 세이렌인 나는 누구를 위하여 노래를 불러야 할까?"

청중 중의 누군가 "선원이요"라고 답했다.

"맞다. 배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나 방향을 틀기 위해서는 노를 젓는 선원을 향해 노래를 불러야 한다. 오디세우스가 노래를 듣든, 말든 상관없다.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선원들이 귀마개를 스스로 빼내도록 하는 거다. 내 삶의 현장이 어디든, 세이렌의 노래를 부르자. 머릿속에서 오디세우스는 지우자. 우리가 어떤 노래를 불러도 '그 분'에게는 '종북'의 노래로 들릴 것이다. 대신 내 주변의 동료, 이웃이 들을 수 있도록 노래를 부르면 된다."

'말걸기'가 폐허가 된 사회를 재건하는 힘인 이유다.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로 이렇게 2013년 10만인클럽 특강은 마무리되었다.

☞<10만인클럽 특강>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10만인클럽 특강 동영상은 월1만원 후원 회원에 한해 볼 수 있지만, 2013년 마지막을 장식한 '엄기호 특강'(80회)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합니다. '말의 힘'이 붕괴된 한국 사회를 공부하는데 2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느껴지는 강연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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