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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이번에는 북한 장성택 타령이다. 국정원 발로 북한의 장성택이 숙청되었다는 소식이 나오는가 싶더니, 북한 방송에서 그의 처형을 공개하자 정부가 호들갑을 떨고 나섰다. 장성택의 처형은 북한 사회의 커다란 변화를 의미하니 다들 조용히 정부를 믿고 따라달라는 것이다. 정부는 당장 긴급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었고, 새누리당은 국가 안보가 불안한 시기인 만큼 국정원에 대한 개혁도 무리하게 강행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보수언론 역시 이런 정부의 움직임에 화답하고 나섰다. 신문은 장성택에 관한 기사들로 도배되었고, 종편들은 관련 뉴스를 하루 종일 내보냈다. 북한 관련 소식이 얼마나 많은지 남한의 <TV조선>을 보고 있는 건지, 북한의 <조선중앙TV>를 보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북한의 장성택 처형 소식이 알려진 지난 13일 오전 열릴 예정인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실 앞에 군 관계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장성택 처형 '충격'... 군 관계자 대응 분주 북한의 장성택 처형 소식이 알려진 지난 13일 오전 열릴 예정인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실 앞에 군 관계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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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말대로 장성택이 처형당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어쨌든 분단체제에서 북한의 변고는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혹자의 우려대로 북한이 전쟁을 도발할 수도 있고, 북한의 대남전략이 크게 수정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언론이 주목할 수밖에.

그러나 일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북한학을 전공했던 사람으로서 지금 일련의 보도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 가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북한의 정치구조 변화에 대해 너무도 무심했기 때문이다. 정녕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위 문제를 지금 보도하는 것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사실 장성택 숙청에 관한 소문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사IN> 남문희 기자 등이 2008년 병상에서 일어난 김정일 위원장이 취했던 조치부터 시작해서 올해 2~3월 장성택 가택연금 사태 등을 근거로 아주 오래 전부터 이미 장성택의 실각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당시 이와 같은 기사를 접하고도 정부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이는 지금의 태도로 미루어볼 때 이상할 수밖에 없다. 장성택의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도 중요시하는 지금의 정성이라면, 당시 장성택의 실각 가능성은 면밀하게 알아봐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 정부는 장성택의 실각이 마치 북한 체제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어쨌든 당시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침묵했고, 그 뒤로 몇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장성택을 거론하고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 정리했기 때문에 발표가 가능했을 공개처형 사진을 가지고 최근에 와서야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듯 장성택과 북한체제의 관계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 혹자의 주장처럼 대북정보와 관련하여 국정원이 무능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

코레일이 직위해제 휘두른 날, 널리 알려진 장성택 숙청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 장성택 숙청과 관련된 보도가 터진 시점이다. 보수 언론들이 1면에 하나같이 장성택의 사진을 실었던 바로 12월 10일. 그날은 철도파업에 맞서 코레일이 노조원 4356명을 직위해제 한 다음 날이었다. 수서발 KTX에서부터 비롯되는 철도 민영화를 막겠다고 나선 노조원들이 이례적으로 빨리 직위해제 당한 날.

아마도 정부는 북한 발 속보로 철도파업에 대한 뉴스를 가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국민들이 철도파업에 관심을 갖게 되면 이는 정부로서도 가장 골치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민영화는 MB정부 때부터 시작해서 현재 기득권이 가장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하나의 주술인데, 철도파업이 그 민영화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섰으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게다가 국민들에게 철도 민영화는 특히 예민한 부분 아니던가.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 언론들의 선정적 보도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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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최근 프랑스를 방문하여 외국자본에게도 철도시장을 열어줄 수 있다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려보자.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이 말을 듣고 당연이 100여 년 전 대한제국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발언은 열강의 침탈 속에서 철도부설권을 고스란히 뺏겼던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또한 2008년 촛불을 떠올려 보자. 당시 촛불이 시작된 것은 광우병의 미국 쇠고기 수입 금지 때문이었지만, 그 촛불이 계속해서 타오를 수 있었던 것은 대운하 반대와 수도, 전기, 의료 등의 민영화 반대 때문이었다. 민영화라는 이슈 자체가 국민들에게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순간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어떻게든 민영화 반대를 기치로 내건 철도총파업을 탄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민들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노조원들에 대한 이례적인 직위해제는 노조를 강하게 밀어붙여 이번 파업을 어떻게든 조기에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북한 발로 쏟아져 나오는 속보는 전체 뉴스에서 그 파업 소식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꼼수일 가능성이 높다.

종북몰이의 근거로서의 장성택 타령

정부와 보수언론의 장성택 타령은 철도파업의 관심 확산 방지 외에 또 하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정부가 계속해서 추진 중인 대세 '종북몰이'의 근거가 바로 그것이다.

우선 장성택 처형과 관련하여 언론에서 보도하는 북한이라는 나라를 보자. 정확한 이유 없이(북한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만 어차피 믿을 이가 많지는 않다) 고모부인 장성택을, 권력의 2인자라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끌어내려 순식간에 사형시키는 상식 이하의 김정은 왕조국가.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국가인가. 따라서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종북세력'들에 대한 탄압에 정당성을 갖고자 한다. 비록 적지 않은 이들이 '종북몰이'를 과도한 매카시즘이라고 비판하지만, 장성택 숙청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북한은 공존 자체가 불가능한 비정상적 국가이기 때문에 그들에 동조하는 종북세력들 역시 우리 사회에서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주장은 자연스레 국정원의 존재 가치와도 이어진다. 지난 대선개입 이후 존립의 근거마저 위협받고 있는 국정원을 보존하기 위한 결정적인 계기로서 장성택 사건을 이용하는 것이다. 장성택의 숙청을 가장 먼저 알렸다며, 이런 안보 위기 시기에는 국정원이 꼭 필요하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새누리당과 정부. 그러니 장성택 관련한 소식을 동네방네 호들갑 떨며 알릴 수밖에.

아마도 정부의 주장은 적지 않은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낼 것이다. 분단체제 속에서 아직도 많은 이들이 레드컴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이상, 정부의 논리는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빨갱이놈'들이 그러면 그렇지, 라는.

다만 문제는 그 강도이다. 심지어 천주교 신부마저 종북세력이라 일컫는 등 종북몰이가 남발됨에 따라 그 설득력의 범위와 강도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이석기 의원 구속 때만 하더라도 살벌했던 '종북'이라는 낙인의 위세가 이제는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더 이상 종북몰이가 효과적이기는커녕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신호다. 오죽하면 평범했던 대학생들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한 마디에 철도총파업과 결합하고 있겠는가.

북한 문제에 호들갑 떨지 말고, 민주주의 회복에 신경쓰길...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학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로 주목받게된 고려대 주현우씨와 이에 동참하는 참가자들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서 모여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는 '서울역나들이' 행진을 앞두고 집회를 열고 있다
▲ "우리 전부 안녕하지 못합니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학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로 주목받게된 고려대 주현우씨와 이에 동참하는 참가자들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서 모여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는 '서울역나들이' 행진을 앞두고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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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번 장성택 숙청의 보도가 박근혜 정부에게 마냥 유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야 이를 북한 정권의 야만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기회로 보고 있지만, 반대로 적지 않은 이들은 이번 사태를 보면서 오히려 북한이 아니라 남한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인혁당 사건을 생각해 보자. 1975년 박정희 정권은 무고한 8명이 정권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증거를 조작한 뒤 내란선동죄를 뒤집어 씌어, 대법원 판결 확정 후 18시간 만에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사형했다. 심지어 고문의 증거를 인명하기 위해 가족들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시체를 화장했다. 과연 이것이 현재 북한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현재 2013년 대한민국은 40년 전과 비교하여, 또한 작금의 북한과 비교하여 결코 낫다고 할 수 없다. 정부는 명명백백한 '부정선거'를 일으켜 놓고 사과는커녕 당신들의 조국은 어디냐며 오히려 국민을 협박하고 있으며, 최소 국민의 절반을 잠재적인 불온분자로 낙인찍은 뒤 민주주의의 기초를 직접 허물고 있는 중이다. 노동자가 정당한 파업을 해도 직위해제 해버리는 것이 현재 우리의 자화상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국가가 북한의 장성택 처형을 비난한다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라니. 오죽하면 지난 대선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이준석 전 비대의원마저 지금의 새누리당 의원들을 보며 독재자의 거수기만 존재하는 북한을 떠올렸다지 않은가.

정부와 보수언론들의 장성택 타령은 현재까지 실패한 듯 보인다. 그들의 치열한 물타기에도 불구하고, 한 학생의 대자보 한 장에 철도노조파업은 좀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관심은 점차 권력에게 '안녕들 하시냐'고 묻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70년대 박정희와 김일성은 남북냉전을 기반으로 각기 유신헌법과 사회주의헌법을 선포하며 내부 독재 체제를 공고히 했다. 말로는 서로를 비난했지만, 두 체제 모두 상대방을 절실히 필요로 하던 적대적 의존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세월이 바뀌었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북한을 보며 체제를 안정화시킬 수준은 아니지 않은가. 정부는 북한의 이번 사태에 호들갑 떨지 말고 부디 내부 문제부터 신경 쓰길 바란다. 현재 우리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회복이다.


태그:#장성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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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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