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3일 독일 상원(Bundesrat)은 민족민주당(Nation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이하 NPD)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NPD는 독일인 최고주의 및 외국인 혐오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극우정당으로 당의 강령이 옛 나치당과 매우 유사하다. 지난 총선에서 베를린 및 다른 독일 지역에서 난민 보금자리에 대한 반대시위를 주도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0명의 외국인이 10여 년간 연쇄 살해된 NSU살인사건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기도 하다.

관련기사:
"실업자도 많은데 왜 난민이 여기 들어와?"
"독일 뒤흔든 연쇄살인... 총리가 고개 숙인 이유"

NPD 해산심판이 다시 제기된 이유

5월 15일 NSU 재판 법정에 들어선 살인사건 피의자 베아테체페.
 5월 15일 NSU 재판 법정에 들어선 살인사건 피의자 베아테체페.
ⓒ EPA/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이러한 NPD 및 극우주의자들의 행보로 인해, 독일에서는 극우주의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최근 들어 다시 활발해졌다. 정치적으로는 나치역사를 청산하고, 하켄크로이츠(나치의 갈고리 십자가)와 같은 나치와 관련된 상징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금지한 독일이지만, 나치의 국가사회주의 철학은 현재까지도 극히 일부 독일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록 NPD의 당원은 현재 5900여 명 정도로 다른 정당에 비해 소수정당이긴 하지만, 독일의 낙후된 지역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회에는 5석, 작센 주의회에는 8석의 주의원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NSU살인사건 이후 NPD정당해산에 대한 논의는 상·하원 상관없이 뜨겁게 논의된 주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 정당해산심판 제소에서 특이한 점은 독일 상원이 주도하고, 하원(Bundestag)과 연방정부(Bundesregierung)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법 제43조 1항(§43 Abs. 1 BVerfGG)에 따라 상원, 하원 또는 연방정부 셋 중 한 기관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정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왜 상원만이 NPD정당해산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일까?

NSU살인사건과 그 외 이민자 차별 및 외국인 대상 범죄와 같은 극우주의자들의 행보로 인해 NPD정당해산에 대한 문제는 오래 전부터 상하원의 단골메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 상원이 정당해산에 대해 추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NPD 튀링엔주 전 부의장이자 대변인이었던 랄프 볼레벤(Ralf Wohlleben)이 2011년 11월 29일 NSU살인사건에 협력한 혐의로 체포됐기 때문이다.

그는 NSU살인사건의 용의자인 베아테 체페(Beate Zschäpe), 사망한 문드로스(Uwe Mundlos)와 우베 뵌하르트(Uwe Böhnhardt)와 돈독한 사이이자, 이들의 범죄에 금전적으로 지원해준 혐의를 받고 있어, 현재 재판 중에 있다.

NSU살인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이후 각 주의 내무장관들은 NPD정당해산에 대한 논의를 지난 2011년 12월 9일 시작했다. 2012년 12월 7일 로스토크에서 열린 내무장관회의에서는 이를 제1안건으로 상정해서 이에 구체적인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결의문의 핵심 내용은 첫째 상하원과 연방정부의 협조 하에 위헌정당해산심판 제소준비, 둘째로는 NPD해산 성공여부에 대한 사전평가, 세 번째는 NPD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원중지, 마지막으로 극우주의자들에 대한 감시를 바탕으로 한 안전의 확보였다. 주 내무장관의 경우 치안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극우주의자들의 범죄 및 동향에 대해 다른 장관들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내무장관회의 결의문은 주지사회의에도 결국 반영돼, NPD 정당해산심판 제소안은 독일 상원에 공식적으로 상정되었다. NPD정당해산에 대해 상원은 여야 상관없이 한 목소리로 적극 추진하자는 입장이 강했다. 굳이 차이점을 발견하자면, 현 보수여당인 기민련(CDU)과 기사련(CSU)은 주로 치안유지를 위한 입장에서, 야당인 사민당(SPD)의 경우에는 외국인에 대한 인권문제와 독일 기본법 제1조에 제시되어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에 뒀다는 점이다.

이처럼 상원이 적극적으로 정당해산심판 제소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반해, 하원과 연방정부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고, 상원의 제안을 존중한다는 입장만 나타냈다. 이는 독일이 연방제 국가라는 점과 연방 상·하원의 구조의 특수성 때문이다.  연방하원의 경우 비록 우리나라 총선과는 확연히 다르게 정당의 비례득표수와 그 외 변수 등을 바탕으로 의석을 배분하지만, 직접선거를 통해 의원을 선출한다는 점은 유사하다. 반면 연방상원의 경우는 선거로 선출된 의원들이 아닌 각 연방 주의 대표들이 의원이 되는 구조이다. 여기서 의석수는 주별 인구수에 따라 배분되고, 배분된 의석은 주지사와 해당 주의 일부 장관에게 주어진다.

즉 정당해산심판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되거나 혹은 2/3이상의 재판관이 정당해산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연방하원 및 연방정부를 대표하는 총리의 경우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반면 연방상원의 경우에는 정치적인 부담이 각 주별로 분산되는 탓에 부담이 덜한 편이다. 이러한 점이 상원만이 적극적으로 정당해산을 추진한 이유다. 이는 2000년 초반에 겪은 사례가 반면교사로 작용하고 있다.

2003년의 악몽과 교훈

인종차별적인 NPD 선거벽보
▲ NPD 선거벽보 인종차별적인 NPD 선거벽보
ⓒ 최서우

관련사진보기


NPD정당해산시도는 2000년에도 있었다. 당시에도 유대인과 외국인들에 대한 극우주의자들의 공격이 심각했던 시기였다. 특히 데사우(Dessau)에서 모잠비크인인 알베르토 아드리아노(Alberto Adriano)가 극우주의자들로부터 살해당한 사건은 진보운동가들이 극우주의 정당해산요구를 더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바이에른의 내무부 장관이었던 귄터 벡슈타인(Günther Beckstein)이 NPD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을 추진하라고 촉구한다.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총리는 상하원과 함께 적극적으로 NPD에 대한 위헌정당심판을 제소를 추진했다. 2001년 1월 30일에는 연방정부가, 2001년 3월 30일에는 연방 상하원 합의하에 연방헌법재판소에 위헌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바로 연방헌법보호청의 요원들이 NPD조직 수뇌부에 몰래 침투해 조사를 시작한 것이었다. 연방헌법보호청은 반연방행위 및 헌법에 위반되는 단체에 대해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연방 내무부의 산하기관이다(역할로 봤을 때는 우리나라의 국정원 국내파트와 비슷하다.). NPD가 극우주의자 범죄와 연결되었다는 심증은 있었지만,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정부에서 취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는 법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NPD입장에서 볼 때는 국가기관이 자신의 정당을 말살하기 위해 개입했다고 반발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당시 연방내무부 장관은 연방헌법보호청이 직접적으로 NPD에 개입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결국 연방헌법재판소은 2003년 3월 18일 NPD와 그 동안 일어났던 극우주의자들의 범죄가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증명할 증거가 없다는 점과 국가정보기관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들어 정당해산청구에 대해 기각판결을 내리게 된다.

연방헌법대법원의 기각판결로 인해 NPD당원은 일시적으로 7000명까지 증가했다. 또한 수사기관이 아닌 정보기관이 증거를 수집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졌다. 이는 슈뢰더 총리에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당시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이 경제문제라는 지적이 있기는 했지만, 연방헌법재판소의 기각판결도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메르켈 내각과 연방하원은 NPD 정당해산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NPD해산과 통합진보당 해산의 차이

하원과 연방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지만, 상원은 그 동안 주 수사기관에서 공개적으로 수집한 정보들을 통해 NPD의 정당 해산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현 NPD정당해산심판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NPD정당원 명부를 강제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데다 정당명부가 없으면, 극우주의자 범죄에 대한 명확한 연결고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증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는 경우 재판이 진행되지 않아, NPD의 입지를 더 강화시킬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통합진보당(진보당) 해산심판과 독일의 사례와 비교하자면, 독일의 경우 극우파를 해산시키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진보세력을 해산시킨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독일의 경우 극우주의자들의 명백한 범죄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독일의 경우 주 혹은 연방내무부에서 넘어온 제안을 바탕으로 여야가 오랫동안 논의를 거친다는 것도 큰 차이다. NSU살인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2011년 11월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치적 논의가 2년여에 걸쳐 장기적으로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한국의 진보당 해산심판의 경우에는 진보당 당원들의 명백한 범죄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또한 정부가 주장하는 내란음모에 대한 증거도 검찰과 경찰과 같은 수사기관이 아닌 정보기관인 국정원에서 제시했다. 게다가 해산심판과정도 정치권의 합의가 아닌 새누리당의 일방적인 처리로 이루어졌다.

독일에서 진행되는 NPD정당해산심판과 한국에서 벌어지는 진보당 정당해산심판에서 어떤 결론 내릴지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태그:#극우정당
댓글1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